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무릇꽃과 가을 시편

김창집 2012. 9. 10. 09:00

 

며칠 동안 가을비가 내린다.

요즘 컴에 앉는 시간이 많다보니

운동량이 부족했는지

좌골신경통인지 뭔지 몰라도

왼쪽 허벅지서부터 발목까지

걸을 때 당기는 것처럼 통증이 온다.

 

오래 컴을 하다보면

또 오른쪽 어깻죽지가 은근히 아파

글쓰기의 능률이 떨어진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이리라.  

 

 

무릇은 백합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들이나 밭에서 절로 자라고

파, 마늘과 비슷하게 보이며

7~9월에 이삭 모양의 담자색 꽃이 핀다.

어린잎과 비늘줄기를 식용으로 쓰는

구황(救荒) 식물의 하나로

아시아 동북부의 온대에서 아열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요즘 들에 나가면 이 꽃이 한창이다.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을 -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 가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가을 - 조병화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 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 가을 -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 해 지는 가을 들길에서 - 김용택

 

사랑의 온기가 더욱 더 그리워지는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 그늘도 묻히면

 

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

 

내 안에 그대처럼

꽃들은 쉼없이 살아나고

내 밖의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

춥지 않아도 되니

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한지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한없이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 두려운 사랑 - 김금용

 

가을은 독선이다

묻지도 않고

대답도 안 듣고

돌아서 가버리는 고집불통 산이다

갇힌 숲에 오솔길 하나 남겨놓고

아무 준비도 없는 내게

문득 나와라 해놓고

눈물 깊은 내 안에 물웅덩이 파놓고

감빛 핏빛 노을빛 치마 자락

넘치도록 어망 펼쳐놓고

주저앉은 내 등짝 때리며 재촉한다

물 그림자 파문 이는 살곶다리 아래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돌고있는 해오라기

더는 뒤돌아보지 말고

저며둔 그리움 따위 쏟아내라고

가을은 서두르며 돌아선

실패한 사랑이다

다신 다가설 수 없는 두려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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