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태풍 ‘산바’ 때문에
어제 음력 8월 초하루 해마다 하는 문중 벌초를
못할까 노심초사 하였는데
비가 적당히 뿌리는 바람에 오전에
다 마칠 수 있어 종친회장으로서의
어깨가 다소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 많은 재물 차리는 거나
동원하는 일 때문에 힘든 것에 비하면
비가 와서 그런지 일을 멈추지 않고
벌초를 끝마치고 멀다고 천막집에서 와주지 않아
제물에 비가 안 맞도록 갑바를 들고서 제를 마치고
중간에 6대조 할아버지 무덤 벌초까지 끝냈다.
오후 집에 귀가한 뒤부터 지금까지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데
바람은 이미 불고 지나갔는지
나무만 조금 휘둘릴 뿐이다.
달개비는 닭의장풀이라고도 하는
외떡잎식물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1년생 풀이다.
산과 들, 길가 할 것 없이 무성하게 자라며,
줄기는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고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 밑에 있는
잎집의 가장자리에 긴 털이 있다.
식물 전체를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해열, 해독, 이뇨, 당뇨병 치료에 쓴다.
꽃은 연한 파란색이고 7~8월에 나비와 비슷한 모양으로 피는데,
6장의 꽃덮이조각 중 3장은 하얀색으로 꽃의 뒤쪽에 달리고,
안쪽에 달리는 3장 중 2장은 파란색으로
둥글고 서로 마주보고 달려 나비의 날개처럼 보이며,
나머지 1장은 하얀색이고 나비날개같이 생긴 2장의 아래쪽에 달린다.
수술은 6개이나 이중 4개는 꽃밥이 없고, 2개가 꽃밥이 달리는데,
나비의 더듬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평생 동안 흰꽃은 세 번 만났는데
지난 토요일 거슨세미에서 네 번째로 만났다.
그런데 지금 이 꽃은 흰색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흰색과 진한 하늘색이 교배된 건지
모를 일이다.
♧ 달개비 꽃 - 권오범
우듬지 붙잡고
몽환경에 취해 있어
바람이 무시로 집적거려도
미동조차 없던 푸른 나비들
점심 먹고 와 살펴보니
공작부인 되어
승천한 걸까
누더기만 걸쳐있다
뙤약볕이 몸살이 나도록
관절마다 주리를 틀어도
비밀을 지키려는 듯
입을 닫아버린 이파리들
아침이 오면
조가비 같은 꿍꿍이속 열고
푸른 나비들이
또다시 환생하겠지
♧ 달개비꽃 - 김종익
빛은 작은 꽃이 되네
작은 진주가 되기도 하네
작은 꽃 피우기 위해
나는 온 여름을
이웃 들풀과 비벼댔네
정답게 웃기도 하고
가끔 다투기도 하며
바람이 머리칼 매만질 때
나는 작은 멍울 하나 맺었네
그것은 고통의 눈물이었네
고된 삶의 희망이었네
살을 찢고 아프게 영그는
반짝이는 작은 진주였네
♧ 비는 자줏빛 달개비 꽃 빛을 지운다 - 남혜숙
자줏빛 물달개비 꽃잎위로
빗방울 하나가 뚝, 떨어진다
잠시 후, 내 겨드랑이에 울컥 슬픔이 고인다
몇 개의 몇 번의 빗방울이 떨어졌을까
그 통증이 지나간 자리에
꽃 빛이 흐리게 지워져가고
꿈을 꾸고있던 내 눈꺼풀을
스치고 지나간 빗방울
하나, 혹은 둘……
목마르게 기다리던 빗방울도 때로는
꽃잎에 상처를 낸다
♣ 거러지풀 - 김은결
1.
한때
목젖 서늘히 닦아주던 된장뚝배기 하나
구석방 노린재 키우며 살고 있다
멈춰버린 탈곡기, 자루 빠진 쇠스랑
헛간 안에 졸고 있다
끼 되면 애지중지 식솔들 불러 모아 젖은 눈빛
따사롭게 녹여주던 옻칠먹인 둥글레상
다 닳은 놋숟갈
삭은 툇마루장 들썩이며 울고 있다
장광창 드나들던 윗니파란 새앙쥐들
오간 데 없고
섬돌아래 벗어 놓은 집나간 신발 한 짝
이웃과 내통하던 기억들마저 지워진 채
길은 다 숲이 되었나 닭의장풀, 물여뀌
습지에나 발붙이던 잡풀들 모여 앉아
귀를 엮는 마당귀
놀라워라, 온몸 가득 날선 가시톱날 두르고
눈 먼 행려자처럼 기어든 저 거러지풀
덩굴손 더듬어 언제 지붕까지 닿았나
하늘 문 두드려 천둥 몰고 올 물길 열고 있다
봄 한 철 생목 꺾어 절벽 아래 던져버린
내 그리움 하나 저 물길에 닿으면
흰 구절초 구절구절 노둣돌 놓아 다시 일어설까
2.
그 애도 모를 겁니다
짙은 속눈썹에서 빠져나온
구슬 하나가
내 속눈썹 속에 박히어 옴을
때로는 달님 모양으로
때로는 별님 모양으로 반짝이던
시오리 하교 길
그러나
그 몹쓸 바람이
가시달린 모래 위를 걸어와서
오리나무 위 깔린 노을에 부려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가버린 것을
돌아오는 산모롱이
억새꽃 한 떨기 목놓아 울고
냇가에 홀로 나와 흘러 보낸 머루알이
몇 바지게나 되었던지
청보라빛 물결 넘쳐 바다를 이루었다는 것을
아마
그 앤 모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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