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리 금성리 봉성리 어음1,2리 납읍리
고향 여섯 마을을 방문할 일이 있어 가보니
지난 태풍 이후 지금까지 비가 안 와서 지역별로
제한 급수를 하는 등 농작물에 물주기에 여념이 없다.
양배추와 브로콜리 등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이 지역 특성상 오로지 그것에 승부를 걸고 있기에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사무소와 집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지나는 길, 외가에 들르려고
고등어와 조기 몇 마리 사들고 가보니
모두 밭에 가고 아무도 없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왔다.
금성리에서 봉성리로 가는 도중 오랜만에 조밭이 보인다.
금년엔 이상하게 조를 적게 심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을철엔 밭마다 거의 조이삭 천지였는데….
바람 때문인지 조가 실하지 못한 것을 보며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아렸다.
평생을 조밭 매다 가신 나의 어머니….
♧ 조밭 길을 걷다 - 송수권
어렸을 때 시렁 위에 걸린 조 모감지
누렁 개꼬리 같다는 생각
오늘 교외에 나와 개꼬리들이 가득한
조밭을 걸었다
비끼는 저녁노을에
등이 따숩다
키 큰 수수 모감지 몇 대가 솟아
기 중 큰 키 하나가 자꾸만 휘어진다
휘어진다, 말하는 사이
무엇에 놀랐는지,
서녘 하늘을 밝히는 참새 떼들
조약돌들처럼 불탄다.
♧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 김경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고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아이들과 꽃씨를 심었다
살가운 햇살은 아이들의 볼에 보송보송 땀방울로 맺히고
철없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호 하하 꽃이 피었다
마당귀 멍석만한 텃밭 모롱이 어머니의 꽃밭에서
마른 풀 걷어내고 녹슨 호미로 묵은 땅을 파며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꽃씨를 심는 동안
나는 자식을 꽃씨처럼 키워온 어머니의 세월을 생각했다
좁쌀만 한 이 씨앗들이 어서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이 오면
어머니의 뜰에도 향기 가득한 봄날이 올까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새우잠을 잔
그날 밤, 창밖의 별빛은 당산나무 가지마다 총총하고
십리 밖 파도소리도 밤새 쟁쟁하였다
♧ 무심차 - 박희진
도 닦는 마음으로 집안을 청소하고
도 닦는 마음으로 온몸을 씻고
도 닦는 마음으로 단좌하여
도 닦는 마음으로 창 열고 산을 본다
무심차 한 잔에 무심이 된다
무심차 두 잔에 산과 나는 하나
무심차 석 잔에 나는 오들오들
양지쪽에서도 떨고 섰는 산수유나무
아직 잎이라곤 하나도 피지 않은
알몸의 가지에 꽃만을 달고 있는
좁쌀알만한 꽃들이 모여 노랗게 흐느끼는
그 둘레의 공기는 녹아 투명도를 더해 주네
그 둘레의 공기는 녹아 따스함이 되고 있네
그 둘레의 공기는 녹아 새 봄을 알려 주네
♧ 카페에 앉아 K331을 듣다 - 신경림
어두운 찻집의 구석자리가 보인다
좁쌀 술을 파는 그 앞 선술집이 보인다
얽빼기 주모의 욕지거리가 들린다
콜록콜록 친구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술기운을 빌어 함께 찾아 들어간
질척이는 골목이 보인다
대낮에 30촉 전등을 켠 구석방이 보인다
우기가 아닌데도 눅눅한 이부자리가 보인다
두려워 떨던 시골 소녀가 보인다
위선의 검은 보자기를 뚫고 솟아오르던 내
억압된 욕망의 환성이 들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
지워 버리자고 도망치며
수없이 되뇌이던 혼잣말이 들린다
옛날의 그 모차르트의 선율을 따라가니
♧ 좁쌀죽 - 최범영
산서성 여양시, 벌벌거리는 과적 트럭이 내뿜는 연기와 발기한 굴뚝으로 시커멓게 사정하는 공장의 황금만능주의, 밤 동안 몸부림친 분노와 탈출의 진통도 새벽을 맞았다. 고통의 출산으로 온 아침, 몸조리하라고 좁쌀죽을 내왔다. 산서성 여양시 국제 호텔에서는 어제의 씨앗으로 밴 고통을 아침마다 낳는 이들이 콜록콜록 산후조리를 하였다. 나이 서른에 아이 낳고 시어머니에게 석 달 동안 미역국 대신 좁쌀죽을 얻어먹었다는 그녀도 콜록콜록 함께 좁쌀죽을 먹었다.
단 호박에 들큰한 좁쌀죽
그녀에겐
쌀이 없어 먹던 조당숙이 아니었다
내게도
몸조리하며 먹는 미역국이 되었다
♧ 대월산 5 - 김형효
-- 좁쌀밥
양말 한 켤레
검정 고무신
무릎 터진 옷
좁쌀 밥 꽁보리 밥
개구쟁이 시절
각진 모자에
검정 교복 다려 입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고
양간리
토치
누구네 아들들에 옷을 입고 다니던
중학생
초등학교 중학교도
좁쌀 같은 미소를 띠며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노랗게 익은 좁쌀밥 향기
수업시간마다 영양가 있게
교실 구석구석을 차지한 때문같다
♧ 편지 2 - 김점희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먹물 같은 밤
반짝이는 그리움들이 하나, 둘 피어납니다.
그대 또한 그러하듯이.
좁쌀보다 작은,
송곳 같은 불빛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그 어딘가에
그대, 머무르고 있겠지요.
나 또한 그러하듯이.
온 종일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였건만,
아직도 못다 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움 또한 그러하듯이.
그대 모습 오롯이
달이 되고, 별이 되어
파도처럼 일렁이다 쓸쓸히 가슴을 적십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제 어둠은 깊어지고
천지는 고요 속으로 잠들지만,
너무나 익숙한 이별의 고통에 무디어진 감정이건만
오늘도 여지없이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홀로 잠 못 드는 나,
버릇처럼 힘없이 끄적이는 낙서는
어느새 그대 향한 그리움으로 편지를 씁니다.
내일 또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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