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다녀오다가
오랜만에 한라수목원에 들렀다.
단풍은 태풍에 시달림을 당한 것들 중
일부가 금이 간 채로 색이 좀 들고
말오줌때 열매도 익어가는데
잎이 많이 떨어졌고 색감도 덜하다.
꽃은 털머위 말고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초본식물원에 가보니, 해국과 이 용담이 만개했다.
상강(霜降)을 넘긴 것이라 그런지 색이 진하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0~60cm 정도이며, 피침형의 잎이 마주난다.
8~10월에 자주색 꽃이 피고, 삭과를 맺는다.
뿌리는 말려서 건위제(健胃劑)로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동북부, 일본,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 龍膽용담 - 홍해리(洪海里)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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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의 꽃말
♧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 한영옥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흙담집 창호문 안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다 보는
가만한 웃음 당신을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보았다
눈발마다 묻어나는 그 웃음 따라가다
나는 그만 그 방에 들었다
그런데 마주친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당신 비슷하긴 했어도……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청보라빛 입술에 산그늘을 걸치고
가을 풀섶으로 몸을 다 가린 용담꽃을
흔들리던 하루가 잦아드는 어스름에
나는 그만 꺾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용담꽃 비슷하긴 했어도……
♧ 야생화 연작시 1. 용담꽃 - 강미
새벽으로 깨어나는
산모퉁이
시간이 비껴간
故死木고사목 그림자에
슬쩍
기대어 하품하듯
잎새를
쳐드는 용담꽃
작은 꽃술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진보랏빛 흰 빛
이슬방울
아침이
그만 멈추어선다.
♧ 두고 온 용담 - 서연정
산행 때마다 보게 되는 몸부림이 있다
예순 나이가 넘어도
뵈는 것이 예쁜 그만큼
몸서리치게 가지고 싶어서
욕심은 또 젊을 적 육욕처럼 거칠어서는
눈독들인 것마다 움켜쥐려는 저 갈퀴손
뿌리째 내 뜰에 옮겨오고 싶은 꽃이 왜 없으랴
고스란히 두고 온 용담
이윽하게 바라만보는 날
끌어안고 싶은 갈비뼈가 홀로 으스러진다
♧ 늦가을 용담 - 김귀녀
인고의 세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떠난 빈자리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청순한 새색시
꽃반지 끼워주며
언제 오마고, 약속하고 떠난 임
언제 올까
굽이굽이 굽은 산길 바라보며
목 빠지게 기다린다
달님이 지나가면
말없이 웃고
새벽이슬 내리면 눈물 흘리고
중천에 떠오르는
해님을 보며
쌓인 설움 토해내며 울먹거린다
돌아오는 소식마다
가슴만 후벼 파고
뭉친 가슴 쓸어안고 서성이다 해가 지는
한 맺힌 여인
속가슴엔
시퍼런 멍 자국 골이 패인다
♧ 세석평전 - 권경업
잔돌배기 밤하늘에
은하별이 쏟아지면
텐트에 개스등
불을 밝혀서
잊혀지는 산 이야기
아쉬워하며
은하수 기울도록
끝이 없는데
백무동 길목에서
헤어진 산친구
아쉬움과 그리움에
정을 더하여
님과의 산행길을
생각하다가
용담꽃 피는 밤을
나는 지샜다
.........................................................................
*세석평전: 지리산 주능선상에 잇는 넓은 고원. 해방 후 빨치산의 군사훈련장이 있었다.
♧ 초가을 산책길 - 김내식
붉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늘 푸를 줄만 알았던 마음이
해 그름 능선 길에서 만난
자주 빛 도라지 꽃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저녁 햇빛를 아쉬워 하다
마주 오는 나를 반기며
해설푸게 웃어준다
도라지꽃도 나와 함께
다가오는 순리에 머리 숙이고
들국화, 구절초, 용담과 같은
가을의 전령을 맞이하며
무더운 여름을 지나 온
삶의 시련과 이력을 볼 수 있게
긴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석양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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