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상강 넘긴 용담꽃

김창집 2012. 10. 25. 00:18

 

시골에 다녀오다가

오랜만에 한라수목원에 들렀다.

단풍은 태풍에 시달림을 당한 것들 중

일부가 금이 간 채로 색이 좀 들고

말오줌때 열매도 익어가는데

잎이 많이 떨어졌고 색감도 덜하다.

 

꽃은 털머위 말고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초본식물원에 가보니, 해국과 이 용담이 만개했다.

상강(霜降)을 넘긴 것이라 그런지 색이 진하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0~60cm 정도이며, 피침형의 잎이 마주난다.

8~10월에 자주색 꽃이 피고, 삭과를 맺는다.

뿌리는 말려서 건위제(健胃劑)로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동북부, 일본,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 龍膽용담 - 홍해리(洪海里)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

*용담의 꽃말   

 

 

♧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 한영옥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흙담집 창호문 안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다 보는

가만한 웃음 당신을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보았다

눈발마다 묻어나는 그 웃음 따라가다

나는 그만 그 방에 들었다

그런데 마주친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당신 비슷하긴 했어도……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청보라빛 입술에 산그늘을 걸치고

가을 풀섶으로 몸을 다 가린 용담꽃을

흔들리던 하루가 잦아드는 어스름에

나는 그만 꺾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용담꽃 비슷하긴 했어도……   

 

 

♧ 야생화 연작시 1. 용담꽃 - 강미

 

새벽으로 깨어나는

산모퉁이

 

시간이 비껴간

故死木고사목 그림자에

 

슬쩍

기대어 하품하듯

 

잎새를

쳐드는 용담꽃

 

작은 꽃술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진보랏빛 흰 빛

이슬방울

 

아침이

그만 멈추어선다.   

 

 

♧ 두고 온 용담 - 서연정

 

산행 때마다 보게 되는 몸부림이 있다

 

예순 나이가 넘어도

뵈는 것이 예쁜 그만큼

몸서리치게 가지고 싶어서

욕심은 또 젊을 적 육욕처럼 거칠어서는

눈독들인 것마다 움켜쥐려는 저 갈퀴손

 

뿌리째 내 뜰에 옮겨오고 싶은 꽃이 왜 없으랴

 

고스란히 두고 온 용담

이윽하게 바라만보는 날

끌어안고 싶은 갈비뼈가 홀로 으스러진다  

 

 

♧ 늦가을 용담 - 김귀녀

 

인고의 세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떠난 빈자리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청순한 새색시

 

꽃반지 끼워주며

언제 오마고, 약속하고 떠난 임

언제 올까

굽이굽이 굽은 산길 바라보며

목 빠지게 기다린다

 

달님이 지나가면

말없이 웃고

새벽이슬 내리면 눈물 흘리고

중천에 떠오르는

해님을 보며

쌓인 설움 토해내며 울먹거린다

 

돌아오는 소식마다

가슴만 후벼 파고

뭉친 가슴 쓸어안고 서성이다 해가 지는

한 맺힌 여인

속가슴엔

시퍼런 멍 자국 골이 패인다   

 

 

♧ 세석평전 - 권경업

 

잔돌배기 밤하늘에

은하별이 쏟아지면

텐트에 개스등

불을 밝혀서

잊혀지는 산 이야기

아쉬워하며

은하수 기울도록

끝이 없는데

백무동 길목에서

헤어진 산친구

아쉬움과 그리움에

정을 더하여

님과의 산행길을

생각하다가

용담꽃 피는 밤을

나는 지샜다

.........................................................................

*세석평전: 지리산 주능선상에 잇는 넓은 고원. 해방 후 빨치산의 군사훈련장이 있었다.

      

 

♧ 초가을 산책길 - 김내식

 

붉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늘 푸를 줄만 알았던 마음이

해 그름 능선 길에서 만난

자주 빛 도라지 꽃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저녁 햇빛를 아쉬워 하다

마주 오는 나를 반기며

해설푸게 웃어준다

 

도라지꽃도 나와 함께

다가오는 순리에 머리 숙이고

들국화, 구절초, 용담과 같은

가을의 전령을 맞이하며

 

무더운 여름을 지나 온

삶의 시련과 이력을 볼 수 있게

긴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석양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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