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예쁘고 기품 있고
열매도 흑진주처럼 아름다운데
냄새가 이상한 걸 보면
이 세상에 한 가지 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강원도에 눈이 내렸다는데
어제 마을 사진 찍으러 다니다 보니까
아직도 꽃이 남아 있는 걸 보았다.
누리장나무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마편초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개나무, 노나무, 깨타리라고도 하며 냄새가 고약하여 구릿대나무라고도 한다. 산기슭이나 골짜기의 기름진 땅에서 자란다. 높이 약 2m이다. 나무껍질은 잿빛이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밑은 둥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며 양면에 털이 난다. 잎 길이 8∼20cm, 나비 5∼10cm로 겉에는 털이 없으나 뒷면에는 털이 나며 잎자루는 길이 3∼10cm이다.
꽃은 양성화로 8∼9월에 엷은 붉은색으로 핀다. 취산꽃차례로 새가지 끝에 달리며 강한 냄새가 난다. 꽃받침은 붉은빛을 띠고 5개로 깊게 갈라지며 그 조각은 달걀 모양 또는 긴 달걀 모양이다. 화관은 지름 약 3cm이고 5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핵과로 둥글며 10월에 짙은 파란빛으로 익는다.
♧ 만추(晩秋) - 권경업
야윌대로 야윈 오후 햇살
누런 떡갈나무 숲에서
울먹이다 떠나가고
밤마다
별이 되어버린 그리움들이
내 잠든 천막 위
세월 하얀
서릿발로 내려 앉았다.
소슬바람에
앙상한 이 계절이 아름답다는 것을
허튼 제 약속
허둥대며 쫓아 온 마흔 해
이제야 알았음이니
♧ 만추(晩秋) - 박후식
다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마치고 있을 때
저문 열차가 굽은 궤도를 돌아 수림 속으로 빠져들고
우수수 나뭇잎이 흩어지며 있을 때
아직도 들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다리며
긴 허공에 빠져 있을 때
간솔 냄새가 아궁이 속으로 타들어가고
밭두렁에서는 묵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을 때
가을이 성문 밖으로 사라지고
골목 끝 빈집 외등이 어둠으로 젖어 있을 때
긴 여행애서 돌아와 문밖에서 너를 보고 있을 때
그때 노래하리라, 사랑한다고
♧ 만추(晩秋) - 엄원용
춘천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북한산 밑을 지났다.
산의 계곡 아래쪽으로는
단풍이 다투어 제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등성이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뭇잎들은
이미 제 빛깔을 잃고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뭇잎들은 여름날의 찬란했던 그 빛깔들을
가볍게 내려놓고 아주 홀가분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작별이었다.
한 때 온 몸을 감싸고 있던 붉고 푸르던 빛깔들이
차츰 그 빛을 잃어 다해 갈 때쯤이면
우리도 떠나야 하는 단풍이겠거니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지나는 북한 산 길
노을이 지는 나무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만추(晩秋) - 임동윤
벽촌 가는 길은 흙먼지 자욱한 길입니다
산은 굽이굽이 물안개로 가려져 있습니다
또 몇 굽이 돌아드는 비탈길에서
쉭쉭 단내 풍기는 차를 잠시 쉬게 합니다
백두대간 넘어온 바람이
동해바다 짭짤한 소금기를 풀어놓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그러나 내겐 대수롭지 않습니다
당신 향한 그리움이 구절초로 피어나고
제 빛깔로 물드는 가을색만 또렷합니다
발왕산 가랑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
마른 억새를 베고 있을 때쯤,
당신은 무덤에서 나와 서 계실까요
비탈밭 화전 일구며 입추 지나 캐내던
황토빛 고구마 밑뿌리도 실한가요
산비탈 활활 태우던 마음 온전하다면
고랭지 채소밭 가꾸겠다던 당신 소망은
이제 땅 속에도 꽃을 피우겠지만
모두가 떠난 빈집엔 누가 사나요
산 숭숭 구멍 뚫린 마을은 그림처럼 남고
밭은 기침소리만 허공을 맴돌겠지요
당신에게로 가는 오직 한 길인 나전에서
여량, 임계, 낯익은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벽촌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흙먼지 풀풀 이는 비포장 길이지만
언제나 그 길은 푸르게 열려 있으니까요
♧ 만추 - 정군수
숨어있던 내 작은 뜰에도
낙엽들이 몰려와
가을은 어디에도 지천이다
남루를 걸친 사내가
가을을 껴안고 뒹굴다가
불려온 바람 속으로 침몰한다
잎 진 가지 사이로
하늘을 기대고 선 나무들이
인간보다도 고독하다
죽어 넘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는 차바퀴 아래로
또다시 몸을 던진다
쇳소리보다 날카로운 달이
여인의 냉소처럼 떠있는
도시의 건물 사이를 지나
장례식장으로 가는 불빛들이
가을 속으로 잠겨간다
♧ 만추의 풍광 - 반기룡
하늘은 쨍쨍하다
톡 건드리면 툭 터질 듯
투명한 유리처럼 비친다
뚝뚝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고막을 간지르고
얼음짱처럼 서늘한 기운은 살갗을 부풀리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낙엽 한 잎 거칠게 애무한다
산마다 수액이 어느덧 가뭄을 이루고
잎맥은 닫힌 채 머지않아 오실 손님 마중하듯
바스락거리며 이리저리 뒤척이고
바람 따라 자맥질을 반복한다
아직 계절에 순응 못한 뱀딸기가
붉은 젖가슴을 드러내고
희죽거리며 응시하고
저 멀리 가죽나무는 찬 바람을 이겨낼 태세로
온 몸에 가죽을 단단히 두르고 있는 듯 하다
만추의 풍광은
사라지는 것과 살아나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잣대인 듯하다
♧ 만추의 들녘 - 홍윤표
긴장된 상강의 들녘은 마냥
외로움이며 중년의 외침에 가을을
타작하며 돌아 눕는 겨울 추녀는
진한 낙숫물이다
님이여!
외로운 들녘을
뜨거운 가슴으로 채우자
차 한 잔에 추억을 심을
너와 나의 언약
서리꽃이 피었다
바람이 차갑다
흔들리는 바람에 나는 미루나무가 될까
서해의 일몰은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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