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서 주변의 나무들이 점차적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색으로부터, 등색, 노랑색, 갈색 등
색깔도 다양하다. 더러는 지난 태풍에 상처를 입어
직접 떨어졌거나 바이러스가 침투됨으로써 상처가 깊어져
칙칙하게 물들며 떨어지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어렵게 살아가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해를 입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몸이 허약해지면서 서서히
그 영향으로 병들어 고통을 당하게 된다.
건강검진 도중 위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느라
설사약을 먹고 장을 깨끗이 새척하는 과정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못 된다. 하기야 병들어 고통 받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정작 준비가 불편하다.
술을 좋아하고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성격이기에 좀 걱정이 되었으나 둘 다 생각보다
양호해서 날 듯한 기분이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에 속한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잎은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어긋나게 난다.
5월에 꽃이 피는데 수꽃은 가지 밑부분에,
암꽃은 윗부분에 달린다. 촌락 부근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나며 정자나무로 많이 심는다.
결이 좋아서 건축재, 가구재, 선박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 일본,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 11월의 느티나무 - 목필균
점점 체온을 잃어 가는
너를 위해
햇살 한 줌 뿌려본다
추워질수록 걸친 옷가지
훌훌 벗어 던지는
자학의 몸짓들
다 쓸려 사라져도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먼길을
뿌리로 서서
너는 시린 바람 안으로 채우며
한 해의 칼금을 긋고 있구나
♧ 느티나무 - 시리
그가 외롭다는 것을
늘 아담한 마을의 배경이 될 때는
정말 몰랐지만
석양노을이 그의 배경이 되었을 때
정작 알았다
남의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외로워야 하는 건가
바람 부는 날은
반짝이는 수많은 손을 흔들어
애써 감추고 있지만
저녁 무렵엔
그 큰 몸집도 진저리 쳐
작은 새 한 마리도
품지 못하고
마을 밖을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독한 기다림인가 보다
쓸쓸히 마을 어귀에서
축 늘어진 그의 어깨 위로
노을이 얹혀지는 것을 보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마다
마을을 가린 배경으로
그를 스쳐지나온 뒤
허전히 돌아섰을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자꾸만 밟힌다
한번도 팔 뻗어 안아주지 못했던
안 된 내 마음이
노을처럼 붉게 전신을 훑고 지나간 사이
나를 향해 떨구던
길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며
어둠 속으로 얼굴을 숨기는 것을 보면
한 바탕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나보다
♧ 느티나무 - 김영호
고향 보리미의 동구 밖, 느티나무는 늘 등이 굽었다.
눈빛은 언제나 반쯤 열린 한지문
구름이 비껴가는 이 나무 아래 나의 조부는
왕골밭 두꺼비에게 산해경 책장을 넘기게 하며
냇물 소리로 시를 쓰셨을 것이다.
머리가 반백인 느티나무
그의 귀밑머리 사이로
아버지를 태운 늙은 황소가
보리밭을 밟고 온다.
잎새마다엔 한오백년 가락이 출렁이고
건조장의 햇담배 익는 냄새를 좋아하며
밤화투 치는 오영감 사랑방으로 들어가
탁주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나와
느티나무 가지에 누워 코를 골던 달이
바람에 흰 백발을 날리네.
♧ 느티나무 - 나호열
다스리지 못한 마음을 생각한다
동구 밖을 생각한다
가보지 못한 길과
마을을 생각한다
그곳에 마을이,
사람이
모르는 마음이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쓰임새를 모르는
느티나무의 그늘이
한 겹씩의 주름을 일으키는
파도가 되어 걸어온다
저만큼 느티나무는
베어질 그날을 기다리며
기둥이 될지
돛대가 될지
숯이 될지
의자가 될지……
어느덧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 느티나무의 자세 - 고재종
식풍에 씻고 씻기는
몇몇 집의 등불이다
박새가 타전하는 건
누군가의 호곡 소리,
느티나무 가지 끝들은
별들을 형형 쏜다
삭풍이 일구어대는
수십만 평의 적막이여
여울 소리에 되묻는 건
잿빛 시간의 길
느티나무 가지들은
또 무얼 씽씽 후리는가
정글도록 가마솥에
메주콩을 삶아대며
삭풍과 맞겨루는
느티나무를 엿듣자니
산 능선 활활 그리며
청둥오리도 날아온다
♧ 느티나무 - 강정식
누런 잎새들 사이로
맥없이 떨어지는 햇살
아이들 재잘거림 속에 흩어지고
맨 가슴으로 황량하게
비어 간다
나도 한 그루 느티나무
시간을 생각하며, 내일을
사랑을 추억하며, 어제를
삭이고 말아야 하는 이별도 없이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희망도
늘 오한 같은 신열을 품고
텅 빈 마당처럼, 내일을
혼자 서 있는 나무들처럼, 어제를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내게 말해 보란다
바람은 세차게 나뭇잎 떨구고
바람은 옷깃으로 파고들고
아직은 가을
느티나무 단풍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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