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고로쇠나무 단풍

김창집 2012. 11. 11. 08:10

 

어제는 오름 강좌에 외래강사를 모시는 날이어서

마침 3기에 산행 공지할 사람이 바빠하길래

대신 공지를 내고 붉은오름에 올랐다.

모인 사람은 모두 8명,

비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서둘러 오름으로 향했다.

 

태풍 때문인지 단풍은 거의 져 버리고

오름 초입에서 마지막 잎을 달구고 있는

이 고로쇠나무를 만났다.

햇볕도 없이 그냥 셔터를 눌러대는데

일행들은 모두 다른 길로 가버린다.

빨리 쫓아가 길을 바로 인도해야겠기에

몇 컷 찍지도 못하고 서두르는 바람에

흔들린 것이 있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으로

활엽수이며 높이는 20m 정도이다. 잎은 대부분

다섯 갈래의 손바닥 모양으로 마주나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는 없다.

꽃은 잡성(雜性)으로 5월경에 담황색으로 핀다.

재목은 장식재나 가구재로 쓰이며, 수액(樹液)은

위장병이나 폐병을 다스리는 한방의 약재로 사용되거나

설탕의 원료로 쓰인다. 숲속에 나며 우리나라,

중국, 일본,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 지리산 고로쇠나무 - 박라연

 

1

오얏골에 봄이 오면

사람들의 죄 씻어주기 위하여

일제히 눈뜨고 팔 벌리는

늙은 고로쇠나무

아무런 생각 없이 예수가 되어

물관부의 오른쪽과 왼쪽에

칼을 꽂고 피 흘린다

우리 아픈 점액질은 밤마다

산을 물어뜯고

더 이상 흘릴 피가 없어서

한철 내내 속이 쓰린 나무들

전 생애의 옷을 벗는다

벗어버린 고로쇠나무 몇몇 씨앗들이

빛을 향해 뻗쳐오르고

오르던 푸른 팔들이

하늘 끝에 감전됐다 싸늘히

슬픈 눈빛으로 빛나던 수액들은 지금

흐르고 싶다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반야봉 맞은 기슭으로

 

  

 

2

 

시퍼렇게 잘려진 산맥 처리마다

깊어가는 죄만큼 슬픔만큼

발목에 붕대를 감고 서서 기다리는

지리산 고로쇠나무 달궁마을에서

산안개 내려와 투박한

그대 어깨를 주무를 때

눈물 흐른다 흐르는 눈물 밟으며

밤새워 걸어가면 만날 수 있을까

떠나온 산 안 잊히는 얼굴들을   

 

 

♧ 고로쇠나무 - 마경덕

 

  백운산에서 만난 고목 한 그루. 밑둥에 큼직한 물통 하나 차고 있었다. 물통을 반쯤 채우다 말고 물관 깊숙이 박힌 플라스틱 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둥치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받던 자리. 시름시름 잎이 지고. 발치의 어린 순들, 마른 잎을 끌어다 푸른 발등을 덮고 있었다.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변기에 앉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식놈에게 부끄러워 얼른 무릎을 붙이는, 옆구리에 두 개의 플라스틱 주머니와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 호스를 통해 세 개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어머니의 붉은 육즙肉汁. 오십 년 간 수액을 건네준 저 고로쇠나무.

 

 

 

♧ 고로쇠나무 밑에서 만나리 - 문효치

 

고로쇠나무 밑에서 만나리.

그대 이마에 해가 올 때

갈잎 더미 위에 눕혀 놓고 보리.

네 아름다움에 눈이 저릴 때

하늘에 나무들 그림자 드리우고

그림자에서 떨어져온 잎 몇 개

붉은 얼굴이 되어, 그대의 배 위

내 자리에 오른다 해도 오늘만은 웃어 넘기리.

제 몸을 태우는 숲 손 잡고

나 잠시 눈감아 있으리.

그대 빛남으로 눈부심이

이 해 가을을 적시는 날

고로쇠나무 밑에서 만나리.   

 

 

♧ 고로쇠 - 배두순

 

나무의 물길은 처음부터 하늘 쪽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겨우내 지친 갈증을 이끌고 와서야

고로쇠, 봄의 나무 앞에서 강 하나를 본다

바람의 줄기들 뚝뚝 잘려나간

그 자리에서 물의 전설은 시작되는 것이다

고로쇠의 고향은

어차피 길 잃은 강들이 생사를 묻는 곳

바로 이쯤이 좋으리라

나 한번쯤은 게으른 세월을 수직으로 일깨워

이곳까지 걸어 왔을지도 모른다

누가 감히 마을 저쪽의 안일을 떨치고

이 궁벽한 곳에 이르러 무수한 강물을 흘리겠는가

제 안은 마른강이 되는 줄도 모르고

수직의 사막 수직의 홍수를 범하며

자신, 물 한 모금 허비하는 일이 없다

해마다 나는 고무호스 두어 개를 들고서

그 앞을 찾는다

그곳에 이를 쯤 이면 내 몸엔

사철 말라붙기 십상인 정신이 있고

마음의 욕심을 덜어 낼 옆구리 한번 내 준 적 없이

그 앞을 서성이는 것이다

 

그 곳에 가면 잘 생긴 강하나 심어져 있다   

 

 

♧ 고로쇠나무 - 김내식

 

나는 지리산 비탈

십자가에 못으로 박혀있는 살아있는 예수다

너희들은 포도주로 죄 씻음 보다

나를 마시며 속죄하라

 

너희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몇 번 수혈을 해보았느냐

소금 한줌 입에 넣고

또 마셔라

군불 땐 방에서 땀 흘리다

실컷 마셔라

 

그러다 배부르면 푸른 하늘도 좀 보고

맑은 산바람 소리 들어가며

너희 몸 안에 쌓인 위선의 노폐물

오줌발로 몰아내라

고로해서,

죽은피가 너희 피로 삼 일만에 부활하느니

나의 뜻을 드높이

받들지어다   

 

 

♧ 고로쇠나무 - 배우식

 

그녀가 지리산 비탈길에 서 있다

 

웃통을 벗어젖히고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온

굶주린 봄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세차게 친다

 

그녀의 물살이 빨라지고

굶주린 물고기는

그녀의 뼈 속을 뚫고 지나간다

 

몸 속 깊이 열쇠를 밀어 넣은

굶주린 물고기가

그녀의 허리띠를 풀어헤친다

 

뇌관 같은 울먹한 슬픔위로

욕망에 굶주린 물고기가 내려앉는다

그녀의 밑동이 쩍 갈라진다

 

여자의 젖은 혓바닥이 뚝 떨어진다

물소리 흐르는

붉은 구름 하나가 혓바닥에 걸려있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가을 소묘  (0) 2012.11.14
만추의 누리장나무  (0) 2012.11.13
느티나무에 가을바람이 불면  (0) 2012.11.09
까마귀밥여름나무의 가을  (0) 2012.11.05
산국이 제철입니다  (0) 201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