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청미래덩굴 열매는

김창집 2012. 12. 4. 00:05

 

겨울 잎사귀 떨어진 나무 사이로

삐죽이 얼굴을 내민 청미래덩굴 열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눈 속에서 더욱 붉게 보이는--.

저 녀석은 잎사귀도 두꺼워서

웬만한 눈에는 끄떡도 않고

오래도록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청미래덩굴은 백합과에 속한 낙엽 덩굴 식물로

줄기는 마디마디 굽으면서 약 2m로 자라고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이며 두껍고 윤기가 나는데,

5월에 황록색 꽃이 피고 열매는 둥글고 붉게 익는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으로 쓰며,

잔뿌리는 한줌씩 동여 솔을 만든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필리핀 등지에 분포한다.  

 

 

♧ 청미래덩굴 - 김승기

 

그대의 가슴에 뿌리를 박고

끝없는 사랑 먹고 살아도

그대를 위해

해준 게 없구나

덩굴손은 늘 하늘을 움켜잡은 채

큼직하니 예쁜 꽃 피우지 못하고,

상큼한 열매도 못되는 것

겉보기만 그럴싸하게 달고서

이리 꼬이고 저리 비틀리며

온몸에는 삐죽빼죽 가시를 둘러,

가진 것 마음뿐이어도

그 마음 하나

온전히 열어주지 못했구나

 

이제 늦은 가을 찬바람 불어

산까치 날아들고서야

주는 사랑법

비로소 눈을 뜬다   

 

 

♧ 그대 세월의 강 - 박종영

 

들국 꺾어 주던 고개에선

그대 생각으로 눈물 한 방울

감추지 못한다

 

산에 들면 추위 타는 나무마다

어쩌자고 마른 숲에 그리움을 풀어놓고

눈물 바람인가 싶어 짠하고

 

겨울나무 잎 진 자리 가릉대는 소리

마음으로 어루만지면

오돌오돌 붉게 추위 타는 청미래덩굴

감싸 안고 싶은 것은

 

의지하며 느긋이 살아온 길

이쯤 하여 창창하지 못한 인생 탓하려 해도

대나무숲 잉걸이는 소리

내 울음 같아서

 

그대 세월의 강에 안기고 싶은 부끄러움   

 

 

♧ 청미래덩굴 - 권오범

 

선천적으로 관절이 굽어 곧게 못가고

솔 잡고 서성대는 일 초차 몸 부실해 후들거리지만

엉성한 매무새에 감춰진 내 성깔

낮잡아보면 큰 코 다친다

 

치맛자락 펄럭이면 은근슬쩍 낚아

범하고 싶고

반바지 차림으로 촐싹대는 맨살 만나면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러나 나는 신이 빚어놓은

백약의 저장창고

이파리부터 손가락 발가락

붉게 늙는 분신들마저 버릴 게 하나 없다

 

특히 발정 난 수캐 본뜨다 덤 얻어

쉬쉬하며 동행해야하는 꺼림칙한 부위도

내 근본이 직방이라니

방법일랑 그 방면의 도사에게 가설랑 속닥속닥   

 

 

♧ 불씨 - 최진연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구나.

울울한 森林삼림을 불태우고

暴雪폭설에 묻힌 산허리에 박힌

보석의 망개처럼

빨갛게 살아 있다니.

 

四季사계의 결론들이

빈 가지에서 엇갈리고 마주치는

나무들의 드러난 뼈를 보면서

그대 변절을 보복하지 않고

내가 떠난 스무 살 전후

이글거리던 불꽃이

마로니에 짙은 그늘에서

아직도 너울거리고 있다니.

 

나의 잠을 틈타서

눈을 뜨고

한 채의 가산을 깡그리

재로 남긴 불씨야,

질화로가 된 가슴

삭은 재 속에

아직도 5월의 앵두처럼

빨갛게 살아 있다니….   

 

 

♧ 산(山)에 가서 - 강희근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소고삐 쥔 손의 땀만큼 씹어낸 망개열매 신물이

이 길가 산풀에 취한 내 어린 미소의

보조개에 괴어서,

 

해 기운 오후에 이미 하늘 구름에

가 영 안오는

맘의 한 술잔에 가득 가득히 넘친 때 있었나니.

 

내려다보아, 매가 도는 허공의 길 멀리에

때 알아, 배먹은 새댁의 앞치마 두르듯

연기가 산빛 응달 가장자리에 초가를 덮을 때

또 내려가곤 했던 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 겨울 나그네 1 - 양채영

 

눈 섞인 바람이 분다

오라는 이 없어도 가야 하리

얼까말까 망설이는 개울을 옆구리에 끼고

붉은 망개열매와 멧새 떼에 길을 물어

마른 풀잎 쓰러져 흩날리는 논밭뙈기를 지나

술렁술렁 걸어서 가야 하리

내 조선시대 사모하던 선비들의 기골을 닮은

잡목숲과 낙낙장송과 거친 암벽이 솟아 있는

이 나라 눈 덮인 산악을 우러르며

산가마귀 우짖는 산협을 지나면, 어디선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명년 춘삼월에 돌아올까

어―허이 어―화

 

 

건 쓴 상제들과 상여꾼과 선소리꾼이

흰 겨울산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들의 슬픔도 갖고 싶던 모든 것들이

눈발 속으로 날아가고 산은 더 높고 깊다

고사리국에 밥 한술 말아먹고 소주 한 잔 걸치고

무너진 산성을 지나면 호도나무 과목들 사이로

푸르딩딩한 냉이잎이 얼어있고

신라적 암각된 마애불이 길손을 맞는다

그는 이 산과 바위와 바람과 더불어

수척한 길손을 지키며 바랜다

흰 눈벌에 모여선 낙엽송 숲의

자잘한 가지들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겨드랑이를 끼고 겨울바람을 막아

수묵화처럼 허공중에 부풀어 있다

그 속에 누군가 저녁 등불을 켜고

그 머리 위로 겨울새떼가 돌아가고 있다

나는 것도 모여 있는 것도 걸어가는 것도

모두 춥다. 모두 간다. 모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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