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높은 기온이 한낮을 달구어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제법 땀이 흐른다.
지난 주 목요일
장애우들과 함께한
원당봉 둘레길 걷기,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를 흥얼거리게 했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이제는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해버린
귀화한 나무, 아카시아.
♧ 아카시아 향기 바람에 날리고 - (宵火)고은영
물밀듯 가슴에 차오른 계절의 향연
그러므로 너는 열린 가슴
함박 웃는 미소 머금어 아름다운
오만하지 않은 겸손한 순결이다
네 몸에 두른 하이얀 면사포에
창백한 손길로 써 내려가는 편지마다
사랑은 향기로 머물다 가는 아픈 사연일까
오로지 꽃피워도 열매 없는 고독한 연가일까
때가 되면 일어서는 흐드러진 네 고백은
눈부신 얼굴에 감추인 향기로 피는
너의 이면에 가장 절실한
혹은 또 다른 지독한 슬픔일까
천지를 진동하는
내어 주고 너를 비우는 말 줄임표
그것은 언제나 생색 않는 소박한 사랑이다
표나지 않는 위대한 사랑이다
벌들이 침노해도
용서로 키우는 공존의 법칙이다
세상을 향한 고귀한 애틋함이다
푸른 창공에 흔들리는 순수다
♧ 아카시아 가슴으로 보입니다 - 정세일
5월이 오면 온산에 아카시아
꽃잎들이 나비에게 꽃 날개를 달아서
산의 가슴이 쏴아 쏠리도록
하얀 눈꽃을 어지럽도록 향기를
온종일 날리고 있습니다
꽃을 피우기를 바라는 나비의 마음들이
오늘처럼 있으면
아카시아의 향기는 나비의 날개소리때문에
온몸이 꽃잎에서부터 간지럽습니다
아름다운 향기 누구든 그숲속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그 향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비가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산의 가슴이 쏠리도록 하얀 눈꽃을
어지럽게 날리고 있습니다
가슴속에 곱게 접어놓았던 어머니의 외씨
보선을 닮은 꽃봉오리들이 바람이 부는 날은
하나둘씩 보선을 터트려 향기를 날리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서 꽃망울이 우수수 떨어진 날은
숲속에 오면 누구든 어머니의 보선을 주울 수 있습니다
소나무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곳에도
이제야 겨우 매듭을 맬 수 있는 풀이 자란 곳에도
봄이 떨어지는 날이 되면은
이제는 꽃잎은 날아가 버리고
머리만 남은 반달꽃잎은 우수수 비처럼 봄이
쏟아집니다
가버린 봄을 찻느라 숲속에서는
잃어버린 봄을 줍는 나비들의 발걸음만이
한층 바빠지고 있을 뿐입니다
♧ 아카시아 꽃 - 박인걸
바람도 꽃 향에 취해
비틀거리다 숲에서 잠든
오월의 어느 저녁 녘
아카시아 숲에 눕는다.
희다 못해 윤기 나는
우유 빛 꽃송이들마다
엷은 블라우스에 비친
그대의 속살처럼 탐스런
추억도 가물가물한
어느 비탈진 꽃나무 아래
우리는 오롯이 앉아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지
연년이 꽃은 피건만
떠난 그대는 소식도 없고
아카시아 꽃 필 때면
그리움만 복받쳐 오른다.
♧ 아카시아 - 권도중
양떼구름 몰려오는 그리움 울타리 가득
아카시아 흰 꽃 속에 풋풋이 부는 바람
마음에 가득이 닿는 지난날의 꿈 냄새
어디에 살아 있을 만나고픈 생각 하나
천지간에 창을 열어 그 눈빛 파도로 와서
내 속에 잊고 있었던 뻐꾸기 울음소리
♧ 아카시아 1 - 정군수
봄 언덕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 물보라
두 팔 벌리고 막아서다
여름을 향하여 달려드는 향기
밀리고 밀리고 뒷걸음 치다
필경 취해 쓰러지려나
속세의 것을 피우고도
속세의 것이 아닌
정갈한 꽃
티끌이라도 환히 피워내는
가장
속세의 꽃
♧ 아카시아(2) - 손정모
책갈피가 넘어가듯
휩쓸리는 수목의 물결 위로
잘 닦인
뻐꾸기의 울음이 눈부시다.
눈꽃보다 하얀 꽃잎 위로
햇살은 물결처럼 흘러내리고
굽이치는 솔바람을 타고
수줍은 낮달이 남실거린다.
시린 바람은
목청마저 얼어 파랗게 젖었다고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매달려
자꾸만 칭얼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