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장맛비가 하루 종일
추적거리던 날
많이 오지는 않고
스멀거리는 비가
너무 칙칙해
우산 없이 동내를 걷다보니
씀바귀 꽃들이 햇볕을 못 받고
한껏 오므리고 있다.
아무리 질겨봤자
해가 없으면
웃지 못하는
꽃.
♧ 좀씀바귀 - 김승기
뿌리 내리는
메마른 땅
힘겨워
잔뜩 움츠렸나
땅바닥에 찰싹 붙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이파리마다
피멍 들었네
제 몸뚱이보다도 큰
꽃송이
허공 위에 올려놓으려
용쓰다가
곧추세운 허리까지
뙤약볕 아래
검붉게 타버렸네
우주를 밝히는
한 점
햇덩이
바람으로 걸어두기
어디 쉬울까
그렇게 공 들여야
작은 생명
크게 꽃 피울 수 있다는 걸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좀씀바귀
♧ 씀바귀 - 소양 김길자
홀로 떨어진 동생 그리며
생각날 때
텃밭에 심은 씀바귀
핏줄이 그리울 때마다
바라보던 지난 세월만큼 자란
2004년 봄
검은 머리
씀바귀 꽃 되어 만난 날
버들강아지 노랗게 눈뜨고
살얼음 땅도
녹아내리는 봄 햇살에
텃밭에 파릇파릇하게 자란 그리움
마음에 맺힌 응어리 뽑아
상처마다 다듬고
세월로 씻어내
오누이 눈물로 버무려진 맛
진하디. 진한
남매의 맛
♧ 씀바귀 꽃 - 김순남
한 여름 홍역을 앓았지
입술이 타들어가고
사지가 벌벌 떨리도록
온 몸은 빨갛게 열꽃으로 번지고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뒤엉켜
힘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코 흘리게 아홉 살 아이
도투락댕기가 식은땀에 절어 냄새가 났지
혓바닥은 하얗게 백태가 끼고
손톱을 세워 온몸을 긁으며
헛손질에
알 수 없는 말들을 잠꼬대처럼 쏟아내고
물맛도 쓴 입은
팥소 넣고 빚은
쑥물들인 개피떡이 먹고 싶었지
그토록 맛있던 개피떡
입에 넣는 순간 삼킬 수 없이 쓰디쓰기만 했지
단맛이 넘치는 수박도
왕방울만한 눈깔사탕도 쓴 맛 뿐이었지
어머니는
땀을 빗물처럼 쏟으시며
씀바귀 즙을 만들어
소태보다 쓴 내 입맛을 달래주셨지
쓴맛을 맛보고서야
단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홍역을 앓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
쓴 것이 단 맛을 알게 하는
약이라는 걸
작고 노란 씀바귀 꽃에서 배우고 말았지
♧ 씀바귀꽃 - 양채영
씀바귀는 뿌리맛이 쓴 탓으로
사랑을 받는 풀이다
이 나라의 그 쓴 입맛을
아무도 도둑질해 갈 수는 없다.
옛날 옛적 이차돈異次頓은
흰 피가 솟아 올랐다해서
역사적 화제가 되었다.
이 땅의 깊고 깊은 곳에
쓰디 쓴 백피.
내 작은 꽃밭에 무슨 꽃을 위해
잡초를 뽑아내는 일을
그만두기로 생각한 날
담귀퉁이에 씀바귀꽃이 피었다.
가늘고 긴 목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버즘먹어 시집간 내 노오란 누이
저 가는 씀바귀꽃대를 꺾으면
하얀 피가 솟아 오를 것이다.
쓰디쓴 뿌리 씀바귀꽃.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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