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좀씀바귀 노랑꽃

김창집 2013. 6. 15. 03:34

  

6월 장맛비가 하루 종일

추적거리던 날

많이 오지는 않고

 

스멀거리는 비가

너무 칙칙해

우산 없이 동내를 걷다보니

씀바귀 꽃들이 햇볕을 못 받고

한껏 오므리고 있다.

 

아무리 질겨봤자

해가 없으면

웃지 못하는

꽃. 

 

 

 

♧ 좀씀바귀 - 김승기

 

뿌리 내리는

메마른 땅

힘겨워

잔뜩 움츠렸나

 

땅바닥에 찰싹 붙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이파리마다

피멍 들었네

 

제 몸뚱이보다도 큰

꽃송이

허공 위에 올려놓으려

용쓰다가

곧추세운 허리까지

뙤약볕 아래

검붉게 타버렸네

 

우주를 밝히는

한 점

햇덩이

바람으로 걸어두기

어디 쉬울까

 

그렇게 공 들여야

작은 생명

크게 꽃 피울 수 있다는 걸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좀씀바귀

    

 

♧ 씀바귀 - 소양 김길자

 

홀로 떨어진 동생 그리며

생각날 때

텃밭에 심은 씀바귀

핏줄이 그리울 때마다

바라보던 지난 세월만큼 자란

2004년 봄

 

검은 머리

씀바귀 꽃 되어 만난 날

버들강아지 노랗게 눈뜨고

살얼음 땅도

녹아내리는 봄 햇살에

텃밭에 파릇파릇하게 자란 그리움

 

마음에 맺힌 응어리 뽑아

상처마다 다듬고

세월로 씻어내

오누이 눈물로 버무려진 맛

진하디. 진한

남매의 맛   

 

 

 

♧ 씀바귀 꽃 - 김순남

 

한 여름 홍역을 앓았지

입술이 타들어가고

사지가 벌벌 떨리도록

온 몸은 빨갛게 열꽃으로 번지고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뒤엉켜

힘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코 흘리게 아홉 살 아이

도투락댕기가 식은땀에 절어 냄새가 났지

 

혓바닥은 하얗게 백태가 끼고

손톱을 세워 온몸을 긁으며

헛손질에

알 수 없는 말들을 잠꼬대처럼 쏟아내고

물맛도 쓴 입은

팥소 넣고 빚은

쑥물들인 개피떡이 먹고 싶었지

 

그토록 맛있던 개피떡

입에 넣는 순간 삼킬 수 없이 쓰디쓰기만 했지

단맛이 넘치는 수박도

왕방울만한 눈깔사탕도 쓴 맛 뿐이었지

어머니는

땀을 빗물처럼 쏟으시며

씀바귀 즙을 만들어

소태보다 쓴 내 입맛을 달래주셨지

 

쓴맛을 맛보고서야

단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홍역을 앓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

쓴 것이 단 맛을 알게 하는

약이라는 걸

작고 노란 씀바귀 꽃에서 배우고 말았지   

 

 

♧ 씀바귀꽃 - 양채영

 

씀바귀는 뿌리맛이 쓴 탓으로

사랑을 받는 풀이다

이 나라의 그 쓴 입맛을

아무도 도둑질해 갈 수는 없다.

옛날 옛적 이차돈異次頓은

흰 피가 솟아 올랐다해서

역사적 화제가 되었다.

이 땅의 깊고 깊은 곳에

쓰디 쓴 백피.

 

내 작은 꽃밭에 무슨 꽃을 위해

잡초를 뽑아내는 일을

그만두기로 생각한 날

담귀퉁이에 씀바귀꽃이 피었다.

가늘고 긴 목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버즘먹어 시집간 내 노오란 누이

저 가는 씀바귀꽃대를 꺾으면

하얀 피가 솟아 오를 것이다.

쓰디쓴 뿌리 씀바귀꽃.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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