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여름바다가 있는 풍경

김창집 2013. 6. 17. 07:40

 

 

어제,

제주올레 21코스를 걷다가 본 풍경.

6월 중순이면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성급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바다로 나왔다.

 

철새도래지,

작은 새들은 모두 떠나고

한 스무 마리쯤 될까?

왜가리 같기도 하고 백로인 듯도 한

새들만 한적하고

 

다리 건너 맞은 편 바닷가엔

조개 잡고 멱을 감는 아이들이 한가롭다.

이제 막 봄이 가는 줄 알았는데,

여름은 벌써 바닷가에 찾아와

파도소리에 한껏 설레고 있었다.  

 

 

♧ 여름 바다 - (宵火)고은영

 

끝없이 펼쳐진 여름 캔버스

피곤한 사람들이 씻어내는

삶의 허물이나 끈적이는 더위가

뭉게구름 능선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며

기화되는 사색의 절정에서

하늘과 바다는 하나가 된다

 

황홀한 밀어를 주고받는

갈매기 날개 위로 후두두 쏟아져 내리는

저 하늘의 차고 푸른 물방울들

오랜 기다림이 세월 동안

피면 시들어가는 시간의 형벌에도

바다는 꽁꽁 묶어 놓았던 꿈에서 눈을 떴다

 

애드벌룬처럼 부푸는 자유의 로망

바다는 수많은 주검을 먹고 비로소

뜨겁게 달아오른 하늘과

맞닿은 가슴으로 사랑을 한다   

 

 

♧ 섬은 바다를 품는다 - 김윤자

 

 

작고 갇힌 영토라 여기지만, 사실은 태고의 전설같은 밑둥이

바다 밑에 가려져 있어 내면의 세계는 무한대 열린 터다.

해면 위로 드러난 몸을 멀리서 보면, 가련한 모습일지라도 가

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라. 절벽 비탈진 등짝에 제 살점 깎아

피워낸 해송(海松)을

갯바람에도, 갈매기의 넘나듦에도 동요치 않고 함묵으로 자신

의 영역을 매몰차게 다스린다. 멀리 보이는 휘황한 뭍은 그에

게는 지구의 그림자일 뿐이다. 결코 동경의 대상이 아닌. 그

보다는 밤하늘을 칼날같이 지키는 초승달을 사모하며 밤마다

광활한 우주와 상면하여 쪽빛 꿈밭을 일군다.   

 

바다

 

깊은 해심으로 바위처럼 묵중해 보이지만 얕은 해풍에도 요

동친다. 수시로 돌변하는 몸을 꼭 묶어 섬에 매어두려해도 자

신도 모르게 풀어지는 몸은 늘 뭍으로 달려간다. 뭍의 세계에

홀린 듯. 급한 제 성미에 못이겨 허연 거품을 꾸역꾸역 토해

내며. 그 풍랑에 해어(海魚)까지 중심을 잃고 쓸려 다닌다.

사해(四海)가 섞이어 유동함에 낮에는 색깔이 없다가도 밤이

면 어둠을 틈 타 사나운 본성이 이빨을 드러내고 쏴쏴 운다.

뿌리 깊은 성품을 키우려 먼 바다로 미끄러지듯 질주해 보

지만 더 큰 몸집으로 밀려오는 먼 나라 파도의 몸부림에 꿈은

늘 무산된다.   

 

 

섬과 바다

 

섬은 침묵으로 바다를 품는다. 뭍에서 외면 당하여 쫓겨오는,

해일에 헐떡이는 바다에게 섬은 고향같은 존재다. 성난 파도

가 옆구리를 허물어도 괴팍한 바다를 늘상 다독인다. 허물을

감싸 안는다.

섬은 넓은 치마폭으로 해어를 품는다. 거친 물살에 시달려 기

진한, 심장이 작아 떠는 치어(稚魚)에게 섬은 어머니 같은 존

재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감을 알면서도 비스러진 고기들을

늘상 보듬는다. 가슴을 키워준다.

섬은 안다. 혼자임을. 궁극적으로는.

정작 자신은 마음 속의 또 하나 외로운 섬에 갇혀 꿈꾸듯 살아

가야 함을.   

 

 

♧ 누구나 가슴에 바다를 품고 산다 - 이희숙

 

가슴에 바다를 품고 살면서도

날마다 바다로 항해하는

보고 있으면서도

다시금 그리워

무시로 바다를 찾는 사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그만의 바다가 있다

어쩌다 얄궂은 운명으로

관찰자 입장이 되어버린 나는

그만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소식들이

기별 없이 닥치는 위험신호 같아

제발 허우적거리지 말아 달라

팔자에도 없는 기도를 한다

바다가 그 사람을 닮았는지

그 사람이 이미 바다로 살고 있는지

영역 밖의 일이라 알 길 없으나

닮을 것 같지 않은 내 마음에

바다로 출렁이는 기막힌 반전을 보고야 만다   

 

 

♧ 여름바다 - 고혜경

 

용광로를 다 쏟아 놓은

무섭기만 한 저 열정 좀 봐

철 없는 모래 마냥 즐겁고

돌 바위 핏줄에 일어서고

잎을 떨군 나무

시름에 돌아 눕고

 

빈 하얀 껍질

온 몸 녹아

짠 소금밭으로 질주하는

저 모래들의 아우성

 

겨울바람 어디로 갔는지

매서움 앞에 그리도

냉정한 가슴 보이더니

널 부르며 돌아 눕는 구나

 

해 저물면 돌아오려나

별 빛으로 넉넉해지는 인정

땅 위의 사람들

남기고 간 아픔

밤 새 씻어

죽도록 보고 싶은

마음

하나 갖고

새로 태어나는 구나

 

그래

너는 살아 있었구나

여름 바다

    

 

♧ 여름 바다 그리운 곳 - 나명욱

 

안면도 바다라는 곳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았던 바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수정처럼 반짝거리며

작은 모래알들 펼쳐져 있는 곳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온몸 던져 뛰어들고 싶은

며칠쯤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혼자

갈매기 날아가는

허공 속 꿈같은

잔잔한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 같은

일 년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그 멀고 깊은 바다

 

옛날 어린 날 추억 속에서

물장구치고 헤엄치던

순수한 환상의 사랑과 희망으로 날개 달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바다

그리움의 날들

이맘때 여름이면 떠오르는 그 바다

    

 

♧ 여름바다 - 이제민

 

태양이 이글거리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하나 둘씩 모여드는 사람들

작은 도시를 이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열기 속에

바다는 모처럼 긴 기지개를 켠다.

 

백사장은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물들고

바다는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천국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저 수평선 끝에서 부는 짭짤한 바람에

닫혔던 마음은 넓어져만 간다.

 

바다는 여름내

작은 도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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