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열대야에 땅채송화 올리며

김창집 2013. 7. 4. 00:33

 

어젯밤은 올 들어 첫 열대야였다.

7월초부터 열대야의 맛을 보이다니

대체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울 것인가?

 

방안에서 위아래 하나씩만 입고 있어도

도무지 땀이 나서 못 견디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위를 타는 것 같다.

 

낮에는 밀렸던 원고 쓰기를 마치고

오랜만에 별도봉 산책에 나섰다.

참나리는 이제야 피기 시작하고

까치수영과 고삼은 늦게 풀을 베는 바람에

꼬리가 없이 몽탕몽탕 잘리거나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바람에 나위가 없다.

시기가 조금 늦었지만

바위틈에서 어렵게 자라는 땅채송화를 찍어보낸다. 

 

 

 

♧ 열대야 - 손병흥

 

 

잘 익은 젓갈 같이

숱한 세월 인생 역경 겪으며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쏟아본 적 없는 마음씨로

무작정 흘러만 가는 저 강물처럼

그저 눈물 흔적도 삼킨 채

낡은 재봉틀 닮아가는

초라해진 등줄기 추스리다

문득 바람 헝클리고

구겨진 속눈썹 거두고서

눈 못 뜨게 켜로 앉은

땀방울 여과 거듭해도

오히려 미쁜 피빛으로

타오르던 무더운 열기는

약삭빠른 밤고양이 눈빛 되어

여지없이 들락거렸던 지난 밤. 

 

 

♧ 열대야를 기다리며 - 이진숙

 

벽에 걸려있는 그림 속의 저 통통배,

찬장에 얹혀 있는 냄비들까지도

숨을 고르며

계절의 끝을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헐떡거리는 아스팔트의

끈적이는 구애를 뿌리치며,

끝없이 무리를 지어

우리들의 정염의 애인을

꾸짖지 않았던가,

사람들 숨결의 그 들척지근함과,

그 들척지근한 열기 속에서

공격을 멈추지 않는 모기들과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그 계절의

난폭 운전을 낱낱이 성토하지 않았던가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는가,

어느 날인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비가 또 한 번 내리고..

쓸쓸히 창문을 닫고 커튼을 여미고

흰 눈이 내리고……

그래, 그래도 우리 또 기다릴 밖에

지난 여름 이글거리며 날아오던

가슴 뜨거운 것들의 연서를

진저리치며 후회했던

우리들의 아픈 인연을 

 

 

♧ 열대야 - 권오범

 

배동바지 눈치 채고부터

그렇게 군불 지펴대더니

처서 보폭에도 식을 줄 모르는 세상

언제 주리에서 풀려날 수 있으려나

 

한낮, 벼들이 얼추 팬 논배미 지나

냇둑에 누워 바라보니

잘 달궈진 프라이팬엔 구름 한점 없고

노른자위 하나 눈부시게 자글거려

건너야 할 밤이 더 걱정스럽다

 

들녘 건너 비틀비틀 피신해온

호졸근한 바람

그나마 데쳐내기 바쁘니

미루나무마저 더위 먹은 게 분명하다

 

아직 한밤중인 벼들이 남았는가,

조물주 간섭할 마음 추호도 없으니

간기 다 빠져버린 중생 보호하사

밤만이라도 온도를 조금만 낮춰 줬으면 

 

 

♧ 열대야 - 김영천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열기,

부끄러움,

 

모올래 돌아 누우면

이제 속에서 치오르는 허열에

세상이 울렁거린다

 

다 벗어도,

명예나 권력이나

부에 대한 욕망까지 다 벗어도,

 

무엇이 아직 남아

내 지친 영혼을 덥히는가?

 

거대한 어둠조차

한 마디 대꾸하지 못하고

마냥 엎드려만 있는지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너의 입김처럼

단내가 훅,

풍긴다  

 

 

 

♧ 열대야 끝내기 - 김내식

 

지구가 태양의 괘도를 돌다

정확하게 자로 재어

무더위의 꼬리를 잘라내는

가랑비속의 8.15정거장

 

더위 먹은 파도가 잠이 깨어

정신 차리고 달려와

뜨거운 백사장을 덮어씌운 후

열대야를 몰고 간다

 

대관령 텐트에서 잠을 자고

강릉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여름의 짐을 차에 싣고

가을 집으로 돌아간다

 

해수욕장 텐트 옆 들꽃들과

그늘을 주던 평상위의 느티나무도

하늘을 향해 손 뻗치고

만세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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