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가 계속되면서
사흘째 열대야가 잠을 설치게 한다.
어젯밤은 수상한 바람까지 불어
덜컹덜컹 문 흔드는 소리 요란하다.
그제 별도봉으로 가다가
국립제주박물관 들렀더니
비비추 꽃밭에 금불초 섞여 피었다.
아마도 이건 꽃으로 핀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잡초로 섞였을 터.
내 눈에는 주인 되는 비비추꽃이나
잡초인 금불초나 같은 꽃으로 여겨지는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비비추는 놔두고
오랫동안 금불초와 놀다 간다.
금불초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로, 전체에 털이 있으며,
잎은 어긋나고, 7~9월에 노란 꽃이 핀다.
꽃은 약용되고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아름다운 것들 - 구경애
파릇한 숲 속
이슬 먹고 숨어 피는
작은 들꽃
돌 틈 사이 흐르는
실팍한 물길 위
젖은 나뭇잎
조약돌에 얹힌 이끼 한 줌과
흐르는 상념 속
노랗게 피어나는
금불초
아침 강물 위에
영롱하게 반짝이며
몸 씻는
별들의 눈물
얕은 웅덩이에 모여
조잘거리며 치장하는
작은 산새들
내 눈동자만 바라보며
죽도록 사랑하는
나의 해바라기
그대!
♧ 꽃그늘 - 김종제
팔월의 따가운 햇살에도
미소 띤 얼굴 내민 금불초가
양쪽 손을 가슴에 모아쥐었다
중생 구원에 힘 보태겠다고
묵상에 젖어든 나한을 닮았다
꽃 그늘 아래
진한 향과 색으로
가피 받겠다고 나비 앉았는데
저 금불金佛이 혼절하겠다며
날개를 접었다 폈다
연신 바람을 불러모은다
몇 겁 지나 저 나비 날아간 뒤에
불佛과 한통속인 꽃에게
삼가 삼배를 드리고
나도 꽃 그늘 차지하고 앉아있겠다
꽃불 모시고
여름의 볕 피할 수 있는
그늘 같은 나한이 되었으면 해서
허락도 없이 꽃에게 날아들겠다
내 몸의 동서남북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꽃 핀다면
피난 같은 그 아래 무릎 끓고
한참을 합장하며 절 하겠다
오늘 같은 날
꽃 그늘 아래에 선다면
불볕이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물 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금불초 그늘 아래 섰으니
한 여름 소나기처럼 서늘하겠다
♧ 마른장마 - 조재영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한 여자 길을 떠난다
닳은 구두 뒤축을 끌면서
한 여름 긴 낮을 간다
옷자락에 묻어 온 마른 풀 떼며
휘청휘청 파밭을 지난다
파꽃에서 파꽃으로
깊은 여름에서 깊은 여름으로
길이 휜다
햇빛 따가워 가는 눈 뜨고
기대 쉴 나무를 찾아보지만
가끔 만져도 보지만
너무 뜨겁고 너무 눈부신
이승의 손바닥 안에서 잠시
꿈꾸어 보는 서늘한 평화
찾지 않으리 쥔 손마저 놓아버리리
한 줌의 안식 한 뼘의 그늘이
이 무지막지한 햇볕의 허구를
그 세월을 짊어질 수 없으니
허공으로 손을 가벼이 들었다 내리면서
이마를 훔친다
입 안이 마르는 길고 긴 낮을
펴 본 일 없는 녹슨 우산 들고
여자가 간다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간다
♧ 마른장마 - 권오범
장마면 장마답게 물퉁이구름 몰이해와
속 시원히 쥐어짜지
유통기한 다된 구름 끌어안고 지짐거려
공연히 헤살 부리는 7월 초입
이러다 하필 배동바지 쯤
세세연년 그랬던 것처럼
물 폭탄으로 지구 껍데기를
무작스럽게 벗기려고 벼르는 건 아닐까,
그러잖아도 난기류에 휩싸인 세상이라서
생화의 마지노선이 뿌리 째 흔들려
바늘방석 지키려고 꼭두각시가 된 몸
벌써부터 열대야가 집적거려 환장 하겠다
하기야 인간 때문에 오존층이 구멍 나
습관적인 자반뒤집기로 버티는 지구
머잖아 바다마저 자리보전해야 할 판에
장마라고 제정신일 리 있겠나,
♧ 7월 그리움 - 최홍윤
장마 소식
달포가 넘었는데
쇠오줌 줄기만도 못한 샛강 물 흐르고
마른 시냇가
버들버들 버들 숲 속에 우짖는 새소리
내 묵은 그리움만 점점 깊어가네
재두루미 날갯짓이
강폭을 재는 이른 아침
이제야 찌푸린 하늘이 울 먹 울먹이는데
그리운 임은
빗줄기 타고 기적같이 오시려나
바가지에 보리밥 쉬기 전에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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