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마른장마에 핀 금불초

김창집 2013. 7. 5. 10:05

 

마른장마가 계속되면서

사흘째 열대야가 잠을 설치게 한다.

어젯밤은 수상한 바람까지 불어

덜컹덜컹 문 흔드는 소리 요란하다.

 

그제 별도봉으로 가다가

국립제주박물관 들렀더니

비비추 꽃밭에 금불초 섞여 피었다.

아마도 이건 꽃으로 핀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잡초로 섞였을 터.

내 눈에는 주인 되는 비비추꽃이나

잡초인 금불초나 같은 꽃으로 여겨지는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비비추는 놔두고

오랫동안 금불초와 놀다 간다.

 

금불초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로, 전체에 털이 있으며,

잎은 어긋나고, 7~9월에 노란 꽃이 핀다.

꽃은 약용되고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아름다운 것들 - 구경애

 

 

파릇한 숲 속

이슬 먹고 숨어 피는

작은 들꽃

 

돌 틈 사이 흐르는

실팍한 물길 위

젖은 나뭇잎

 

조약돌에 얹힌 이끼 한 줌과

흐르는 상념 속

노랗게 피어나는

금불초

 

아침 강물 위에

영롱하게 반짝이며

몸 씻는

별들의 눈물

 

얕은 웅덩이에 모여

조잘거리며 치장하는

작은 산새들

 

내 눈동자만 바라보며

죽도록 사랑하는

나의 해바라기

그대!

 

 

 

 

♧ 꽃그늘 - 김종제

 

팔월의 따가운 햇살에도

미소 띤 얼굴 내민 금불초가

양쪽 손을 가슴에 모아쥐었다

중생 구원에 힘 보태겠다고

묵상에 젖어든 나한을 닮았다

꽃 그늘 아래

진한 향과 색으로

가피 받겠다고 나비 앉았는데

저 금불金佛이 혼절하겠다며

날개를 접었다 폈다

연신 바람을 불러모은다

몇 겁 지나 저 나비 날아간 뒤에

불佛과 한통속인 꽃에게

삼가 삼배를 드리고

나도 꽃 그늘 차지하고 앉아있겠다

꽃불 모시고

여름의 볕 피할 수 있는

그늘 같은 나한이 되었으면 해서

허락도 없이 꽃에게 날아들겠다

내 몸의 동서남북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꽃 핀다면

피난 같은 그 아래 무릎 끓고

한참을 합장하며 절 하겠다

오늘 같은 날

꽃 그늘 아래에 선다면

불볕이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물 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금불초 그늘 아래 섰으니

한 여름 소나기처럼 서늘하겠다  

 

 

♧ 마른장마 - 조재영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한 여자 길을 떠난다

 

닳은 구두 뒤축을 끌면서

한 여름 긴 낮을 간다

옷자락에 묻어 온 마른 풀 떼며

휘청휘청 파밭을 지난다

 

파꽃에서 파꽃으로

깊은 여름에서 깊은 여름으로

길이 휜다

 

햇빛 따가워 가는 눈 뜨고

기대 쉴 나무를 찾아보지만

가끔 만져도 보지만

너무 뜨겁고 너무 눈부신

이승의 손바닥 안에서 잠시

꿈꾸어 보는 서늘한 평화

 

찾지 않으리 쥔 손마저 놓아버리리

한 줌의 안식 한 뼘의 그늘이

이 무지막지한 햇볕의 허구를

그 세월을 짊어질 수 없으니

 

허공으로 손을 가벼이 들었다 내리면서

이마를 훔친다

 

입 안이 마르는 길고 긴 낮을

펴 본 일 없는 녹슨 우산 들고

여자가 간다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간다  

 

 

 

♧ 마른장마 - 권오범

 

장마면 장마답게 물퉁이구름 몰이해와

속 시원히 쥐어짜지

유통기한 다된 구름 끌어안고 지짐거려

공연히 헤살 부리는 7월 초입

 

이러다 하필 배동바지 쯤

세세연년 그랬던 것처럼

물 폭탄으로 지구 껍데기를

무작스럽게 벗기려고 벼르는 건 아닐까,

 

그러잖아도 난기류에 휩싸인 세상이라서

생화의 마지노선이 뿌리 째 흔들려

바늘방석 지키려고 꼭두각시가 된 몸

벌써부터 열대야가 집적거려 환장 하겠다

 

하기야 인간 때문에 오존층이 구멍 나

습관적인 자반뒤집기로 버티는 지구

머잖아 바다마저 자리보전해야 할 판에

장마라고 제정신일 리 있겠나,  

 

 

 

♧ 7월 그리움 - 최홍윤

 

장마 소식

달포가 넘었는데

쇠오줌 줄기만도 못한 샛강 물 흐르고

 

마른 시냇가

버들버들 버들 숲 속에 우짖는 새소리

내 묵은 그리움만 점점 깊어가네

 

재두루미 날갯짓이

강폭을 재는 이른 아침

이제야 찌푸린 하늘이 울 먹 울먹이는데

 

그리운 임은

빗줄기 타고 기적같이 오시려나

바가지에 보리밥 쉬기 전에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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