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때문에 일이 진척이 안 된다.
사실 일이란 게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지만
급해야 진도가 빨라지는 나쁜 습성 때문에
미리 써놓으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저녁에 좀 시원해졌지만
열대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큰까치수영은 큰까치수염이라고도 하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의 높이는 90cm 정도이다.
6~8월에 이삭 모양의 흰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공 모양의 삭과를 맺는다.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까치수영 - 김윤현
뿌리 하나만 남겨둔 채 모두 버리고
겨울을 거뜬히 견디는
까치수영의 인내를 배우고 싶다
하얀 이를 소복이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까치수영의 명랑을 간직하고 싶다
꽃을 피우려는 꿈 이외에는 욕심이 없고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향기를 베푸는
까치수영의 사랑을 닮고 싶다
벌이 날아와 꿀을 물고가도 탓하지 않고
바람이 불어와도 얼굴 찡그리지 않는
까치수영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잔돌이 박혀있는 길가나 물기 없는 비탈에서도
성공을 바라기보다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까치수영의 의지를 따르고 싶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줄기를 뻗으려는 마음도 꽃을 피우려던 마음도
또다시 다 비우는 까치수영의 겸허와 함께
♧ 까치수영 - 김승기
손짓하는 까치를 따라
들어간 숲
오솔길 걸어
산모롱이 돌아서니
까치는 간 곳 없고
가부좌로 앉은
백발노인
얼굴 가득
눈웃음
허연 턱수염
날마다 가슴 위로
내려쌓이는 티끌
화안히 헹구어주는
아, 황홀함
얼른 고개 숙여
합장으로 인사하며 비껴가는데
등짝을 때리는
죽비소리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그분은 보이지 않고
저만치서 파안대소로
웃음 날리는
꽃
한 송이
번쩍
쿵
체증 뚫리며 밀려드는
종소리
하늘마저 흔들어 깨우는
산울림
♧ 아침 - 남원용
밤사이 흘러내린 별 그림 사이로
옅은 하늘이 열리면
그 속에 나를 띄운다.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순수하고 맑음이
나를 선하게 하고
수줍게 피어난 이름 모를
여름 꽃에 향기처럼
내 몸을 감싸안고 허공으로 날아간다.
잡을 수도 아니 잡힐 수도 없는 것들이지만
그 아침 속에 나를 보낸다.
♧ 산사의 풍경소리 - 박태강
여름 왕성한 푸르른 숲
새소리 들려오는 데
둘러선 숲 사이 비집고 오른다.
색색의 여름 꽃 윙크하는
숲길을 숨이 가슴에 차고
목이 말라도 오른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
골짜기를 향하여 내려온다
너무나 반가워 바위 숲에 앉아
유리알처럼 맑게
들려오는 풍경소리
부처님 집이 있나보다.
푸르름 사이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하늘이 폭 좁은 곳에 정좌한다.
나도 모르게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맑은 풍경소리 처럼
나의 마음 맑아
가슴으로 부처님을 품는다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 현신 - 이근배
문득 여름 꽃으로 돌아온
너를 만나 보는 비애.
몇 천 날을 두고 멎지 않는
한 올 인록은 피어올라서
눈물 덩어리로 타고 있다.
네 목숨의 뜨거운 바람,
네가 사는 그 눈비의 땅에서
연일 바람소리 높더니만,
이렇게 고운 슬픔을 빚어
그 눈빛, 머리칼, 살내음을 달고
내 앞에 와 꽃이 되었구나.
말할 수 없구나, 나는
뉘우침뿐인 이 막막한 날들을, 너를 찾아 떠나던
내 길은 끝없는 허공이었음을.
비록 한 망울 꽃이라도
몇천 날의 어둠의 끝에 맺힌
가녀린 회생.
내게 돌아와서도 너는
다만 사는 세상은 외로움인 양
홀로 적막을 사르고 있다.
♧ 그해 여름의 병 - 김형술
꽃들이 불타올라요
피보다 붉은 여름꽃들
세상 모든 햇빛이 마당가 꽃밭으로
쏟아져 내리고
양철지붕 위엔 흰 새의 주검
어둠에 갇혀 있었지요
거울을 깨뜨리며
귓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정적
그 방 어둠은 깊고 서늘해
어지러운 꽃내음 아랑곳 없이
가슴에서 새어나온 방언들
나비처럼 방안을 날아다니고
거울에게 들켜버리고 말았지요
처음 알아버린 세상의 비밀
빠안이 마주 웃으며
영혼에 화인을 찍는 낯선 얼굴
꽃들이 불타올라요
잠긴 문을 할퀴던 미친 햇빛 속
검붉은 양철 지붕 위엔
흰새의 주검
병든 사랑을
어두운 방안에 가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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