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제주시편과 개꽃아재비

김창집 2013. 7. 12. 00:07

 

‘세미오름에 가 본다 가 본다’ 하면서도, 시간을 못내더니

어제 아침에야 아침 먹고 혼자 운동 삼아 다녀왔다.

그 동안에 이름은 이미 ‘삼의악’으로 바뀌어졌고,

밤에도 갈 수 있는 오름으로 시설을 마쳤다.

 

내가 만나려던 이 개꽃아재비는

문턱으로 사용되는 돌을 넘으면서 바로 만날 수 있었고

벌써 전성기를 다 보내, 더러는 누렇게 씨방으로 앉았다.

유럽 원산이라는데, 이건 원체 소가 먹지 못하는 풀인지

암소와 송아지 떼가 모여 풀을 뜯는 데도 남아있다.

 

이 꽃을 찍고 나서, 더워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씻다가

휴대폰에서 휘파람소리가 나 메시지를 보았더니,

토요일인 7월 13일 오후 3시에 시인이자 국회위원인

도종환 씨가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 ‘인문학 강좌’를 연단다.

내일(12일)과 모레 연극 ‘순이삼촌’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3시와 7시에 무료로 공연된다니, 이거 괜히 주말이 바쁘게 생겼다.

 

 

♧ 제주 바다 - 도종환

 

당신은 이곳에 오시어 꽃 피는 시절만을 보고 가십니다

복숭아빛 노을 속에 뜬 새 한 마리 기억만을 담아가십니다

발끝 자물에 적시며 나누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추억만으로 오늘도 또 이곳에 오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비명과 총소리 이 갯가에 가득하던 때의

저녁 비린내를 알지 못하십니다

먹구름에 쫓겨 황급히 달아난 사람들 생각에

산그늘진 마음 한쪽을 모르십니다

당신은 언 발을 구르며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우리들 피묻은 추억을 생각지 못하십니다

 

불덩이로 솟았다 지금은 가슴 곳곳 구멍이 뚫린 채 식어있는 돌멩이들처럼

아직 우리의 가슴은 메워지지 않은 채 이 바닷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엇이 썩어서 이곳에 꽃 한 송이를 키우는가 생각합니다

무엇이 살아 저렇게 이파리들 몸서리치게 흔들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도 밤새가 울어머니 내 나잇적 똑같은 소리로 우는지 생각합니다 

 

 

♧ 제주 수첩에서 - 이언빈

 

제주에는 산이 없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오름만 있을 뿐

오름 끝

파헤쳐진 누이의 젖꼭지

하혈의 흔적만 깊을 뿐

 

산담

울담 밭담

숭숭 뚫린 기침소리만

파도의 허리를 칠 뿐

 

제주에는 바람이 없다

초가집 이엉을 엮은

새끼줄

바람의 희미한 기억만 묻어날 뿐

 

서양 민들레 불 밝힌

사라져버린 마을에 대하여

아무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 제주에서 - 이승훈

 

  그는 쉰이 넘었고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소설가인

그가 시인들 모임에 참석한 것은 옛날 애인 때문이다

옛날 애인은 시인이고 이번 모임에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이번 모임에 오지 않고 그녀는 이 고장에 산다고 그러

나 이렇게 왔다 가면 되는 거라고 못 보고 가도 할 수

없다고 술을 마시며 글쎄 아무 약속도 없이 그저 와본

거라고 한국시협 행사도 거의 끝나 가던 저녁 무렵 일

출봉 앞 바다 포장 마차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그의 말을

듣다가 내가 한 말 형이 정말 시인이오 제주 겨울 바다

를 보며 듣던 Y형의 이야기는 소설 같다  

 

 

 

♧ 불빛을 살았네 - 정영자

      -북제주군 우도에서

 

숫사자 바다 위에

천만년을 살아오는

북제주군 소섬에서

푸르고 푸른 물빛을 살았네

배를 가르며 흩어지는 하얀 물보라는

청춘의 쉬임없는 이별이었기에

떠나보내는

서러운 사랑도

물 위에 맴돈다

잠시

뜨거운 세상을 떠나

가슴과 머리를 씻어

잔잔한 바다 따라

인생도 이렇게 떠돌았으니

사람아

그리울 것 없는 지금의 선창가에서

이생진의 바다의 시를

생각는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바다가 먼저 취한다.’  

 

 

 

♧ 제주 해안(88) - 손정모

 

주상 절리로 가는

가파르고도 높다랗게 펼쳐진

해안 절벽에는

 

바람에 파랗게 젖어

연신 몸을 떨어대는

해송들의 군락이 남실댄다.

 

해송에 뒤질세라

곳곳에 자리잡은 야자수들

미풍에 휘감길 때마다

 

허연 몸매를 드러내고는

솔숲과 어우러져

군무를 추다가

 

석양이 질 때마다

눈물 글썽이는 얼굴로

잠자코 바다를 내려다본다. 

 

 

 

♧ 제주의 가을 풍경 - 고혜경

 

바다가 해일을 꿈꾸는 날

문을 나서면

바다도 내게 달려와 안긴다

 

푸른 열정에 목이 탄

해안 도로

줄지어선 코스모스

눈가에 그늘을 매달고

 

사춘기 소녀가 장식한

수다의 꽃잎

한 없이 눈부셔

검은 돌담 사이로

땀 같은 눈물 고랑이 패인다

 

붉은 아스콘 도로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늘 푸른 청춘

바람이 훔치고 간

이마의 자취마다

순수의 정열은 피어 고독하다

 

고개 내민 억새풀

그리움이 젊음처럼

목 말라서 일까

살강거리며 안기는

해풍(海風)에 쉬어가는

청춘이 눈부셔서 일까

 

물보라 번진 자유로운 산야

인생이 통하는 무한의 지상 위

훨 훨 날아

가을 날개를 달고 싶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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