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다화연의 수련

김창집 2013. 7. 14. 07:44

 

2013년 거문오름 국제트레킹대회가

7월 7일부터 21일까지 보름동안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마침 토요일 오름길라잡이 과정 강좌가

강순석 박사의 지질학 강의로 되어 있어

오름 3기의 트레킹에 참가했다.

 

거문오름은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신청해서

갈 수 있는데 반해 용암길은 1년에 한 번

이런 기회에나 접할 수 있는 형편이어서

모처럼 용암길(5km)을 걷기로 했다.

 

벵뒤굴을 비롯하여 만장굴, 김녕사굴, 당처물동굴 등

수 많은 동굴을 이루는 용암이 흘러간 자리라 상상하며

숯가마터 - 가시딸기군락지 - 벵뒤굴 - 웃밤오름을 지나

종착지인 차밭 다화연에 이르렀을 때

이 수련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좁은 연못 위에서 제자릴 잡고

소담스럽게 피어 나를 반겨주던 꽃. 

 

 

 

♧ 수련의 비밀 - 채호기

 

안으로 조용하게 들끓는 여름.

강한 햇빛과 차가운 물, 무거운 돌,

후텁지근한 바람과 축 늘어진 나뭇잎, 감기는 눈, 수련,

말 못하는 이 모든 것들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물안개 속에 어렴풋한 여름 새벽의 식물들처럼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뒤엉켜 있는 잡목 숲.

언어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여름의 비밀, 시간의 비밀,

삶의 비밀, 수련의 비밀,

 

비밀은 깊다. 말없는 시간의 더딘 지루함과

기다리는 시간의 조급함처럼.

팔 하나를 집어넣어도 잡을 수 없는 깊이.

몸 전체를 빠뜨려도 섞일 수 없는 깊이.  

 

 

♧ 수련 - 장은수

 

더위에 지친 매미들이

울어대는 소리에

안개 속 잔잔한 물결 위에

새벽이 열린다

 

긴 인생의 여정이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나이를 먹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다

 

숨 막히는 순간들을

호수에 묻어 두고 살자니

그 깊은 속을 누가 알겠는가

 

미풍에 여울지는 수면 위에

연록색 잎 가지런히 깔고

홍조빛 얼굴 붉히며

한 송이 꽃으로 피었네.  

 

 

 

♧ 수련 - 박해성

 

재앙의 낮달 삼킨

너였구나, 오필리아!

덜 삭은 그리움이 질식할 듯 목에 걸려

불면에

부르튼 입술

오늘에야 말문 여는,

 

바람의 뒤를 쫒다

무릎 깨진 구름처럼

빈 하늘 헤매다 지쳐 절며 절며 오시는가

질척한

생의 언저리

울컥 터진 붉은 울음 

 

 

♧ 수련을 보며 - 심의표

 

실개천 흐르는 소류담소에

소담스레 핀 수련 한 송이

 

행여 꺾일세라

연못 한 가운데 화심으로 떠있네

 

정오의 화사한 햇살 받아

어느 임 사로잡으려는가.

 

수줍은 미소로

지나는 길손 마음에 두고 싶으니  

 

 

 

 

♧ 수련 - 김승기

 

수련이 피었다

 

터 잡을 곳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수많은 땅을 놔두고,

살아가는 세월만큼

썩어 가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애 태우며 피워내는 선홍빛 웃음

땅 위에서는 결코 피울 수 없는 일인가

더러운 물에서

빛을 내는 순결

세파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과시하고픈 자랑은 아닐까

갈수록 연못은 흐려지는데

진정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사람들 사랑 가로채는 수단은 아니었을까

‘네가 더러워야 내가 더 깨끗해 보인다’고 믿는

털끝만큼이라도 위선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비우며 살겠다는 마음공부

오히려 욕심은 아닌지

뒤돌아보는 여름 한낮

수련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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