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인지 오늘 아침은 인터넷이
자주 로그아웃 돼버린다.
지난 밤 웃풍이 세서
잠을 좀 설쳤는데
블로그만 올리고 아침을 먹으려는
의지를 꺾을 셈인지.
엊그제 한라생태숲에 가보니
산딸나무가 이 정도만 물이 들어 있었는데
햇볕이 부족해 생각대로 못 담았다.
엊그제 저녁 먹으러 갔다가 부군과 함께 만난
김진숙 시인의 시조와 함께 올려본다.
♧ 칸나
사내의 눈물이란 삭힌 홍어 맛일까
젖을 대로 젖어야
드러나는 한 칸 방
장맛비 그치고 보면
눈물 냄새 톡, 쏜다
서쪽 하늘 스미는 촛농 같은 꽃물아
나이 한 살 더해도
익숙하지 않은 이별
그 산에 간직한 깃발
환히 불을 밝혀라
♧ 쑥부쟁이 씨를 받다
비릿한 통증이 길 밖으로 빠져나간
호스피스 병동 늦가을 언저리마다
수녀님 푸른 기도가 명치끝에 얹힌다
한 잎씩 올리는 말씀 하늘 저리 고울까
어둠을 쓸어 담는 무수한 저 씨앗들
오소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내게 오소서
♧ 가을귀
스릉스릉 귀뚜라미
흥부네 박을 켜나
톱질하다
톱질하다
베란다 쌓아 올리는
그 울음
혼자 두지 못해
밤새 켜둔
하현달
♧ 보말 껍데기
물질 간
누이의 들숨
연신 뱉던
그 아이
문득 잠이 깨는 유년
웅크린 돌담 아래
발치께 뭉클 쏟아진
숨소리가 파래요
♧ 당산봉
무병 앓던 뒷집 언니
저물녘에 다녀갔나
거북바위 벼랑을 따라 때 이른 들국 송이
꿔궝 꿩
꿩이 운다고
온 산 되레
노을이다
♧ 철학 하는 바다
저들도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웠을까
막다른 곳에 이르러 생각이 많아졌는지
사유의 섬유질만 남은 억새 무리를 본다
돌아가는 길은 늘 바다로 와 길을 지우고
발목이 다 젖도록 풀지 못한 물음 앞에
외발의 가마우지도 바위처럼 앓는다
물갈기 세운 날에 쇳소리로 울던 바다
하얗게 시간의 태엽 감았다가 풀었다가
수평선 덧문을 열고 다시 내게 묻는 바다
♧ 바람의 래퍼
곱게 딴 레게 머리
올이 다 풀릴 때까지
뿌리째 흔들려봐야 보이는 계절 한쪽
먼 지평
평화의 땅에
햇살 흩는
저
바
람
손
♧ 그리운 밤바다
서투른 이별 두고 늦도록 뒤척이다가
선잠 속 잠꼬대하듯 끼윽끼륵 울다가
아련히 손끝에 닿는 아버지 막걸리 냄새
눈물 슬쩍 감추려 안개 풀어놓으셨나
발밑에 어둠 끌어와 이불인 양 덮던 바다
그 바다 속울음 소리 나는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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