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김진숙의 시조와 산딸나무 단풍

김창집 2013. 11. 13. 08:30

 

 

웬일인지 오늘 아침은 인터넷이

자주 로그아웃 돼버린다.

 

지난 밤 웃풍이 세서

잠을 좀 설쳤는데

 

블로그만 올리고 아침을 먹으려는

의지를 꺾을 셈인지.

 

엊그제 한라생태숲에 가보니

산딸나무가 이 정도만 물이 들어 있었는데

햇볕이 부족해 생각대로 못 담았다.

 

엊그제 저녁 먹으러 갔다가 부군과 함께 만난

김진숙 시인의 시조와 함께 올려본다.

 

 

♧ 칸나

 

사내의 눈물이란 삭힌 홍어 맛일까

 

젖을 대로 젖어야

드러나는 한 칸 방

 

장맛비 그치고 보면

눈물 냄새 톡, 쏜다

 

서쪽 하늘 스미는 촛농 같은 꽃물아

 

나이 한 살 더해도

익숙하지 않은 이별

 

그 산에 간직한 깃발

환히 불을 밝혀라 

 

 

♧ 쑥부쟁이 씨를 받다

 

비릿한 통증이 길 밖으로 빠져나간

호스피스 병동 늦가을 언저리마다

수녀님 푸른 기도가 명치끝에 얹힌다

 

한 잎씩 올리는 말씀 하늘 저리 고울까

어둠을 쓸어 담는 무수한 저 씨앗들

오소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내게 오소서 

 

 

♧ 가을귀

 

스릉스릉 귀뚜라미

흥부네 박을 켜나

톱질하다

톱질하다

 

베란다 쌓아 올리는

 

그 울음

혼자 두지 못해

 

밤새 켜둔

하현달 

 

 

♧ 보말 껍데기

 

물질 간

누이의 들숨

연신 뱉던

그 아이

문득 잠이 깨는 유년

웅크린 돌담 아래

발치께 뭉클 쏟아진

숨소리가 파래요

  

 

♧ 당산봉

 

무병 앓던 뒷집 언니

저물녘에 다녀갔나

 

거북바위 벼랑을 따라 때 이른 들국 송이

 

꿔궝 꿩

꿩이 운다고

 

온 산 되레

노을이다

 

 

♧ 철학 하는 바다

 

저들도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웠을까

막다른 곳에 이르러 생각이 많아졌는지

사유의 섬유질만 남은 억새 무리를 본다

 

돌아가는 길은 늘 바다로 와 길을 지우고

발목이 다 젖도록 풀지 못한 물음 앞에

외발의 가마우지도 바위처럼 앓는다

 

물갈기 세운 날에 쇳소리로 울던 바다

하얗게 시간의 태엽 감았다가 풀었다가

수평선 덧문을 열고 다시 내게 묻는 바다 

 

 

♧ 바람의 래퍼

 

곱게 딴 레게 머리

올이 다 풀릴 때까지

 

뿌리째 흔들려봐야 보이는 계절 한쪽

 

먼 지평

평화의 땅에

햇살 흩는

 

 

 

♧ 그리운 밤바다

 

서투른 이별 두고 늦도록 뒤척이다가

선잠 속 잠꼬대하듯 끼윽끼륵 울다가

 

아련히 손끝에 닿는 아버지 막걸리 냄새

눈물 슬쩍 감추려 안개 풀어놓으셨나

 

발밑에 어둠 끌어와 이불인 양 덮던 바다

 

그 바다 속울음 소리 나는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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