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들

김창집 2013. 11. 29. 09:11

   

계간 ‘제주작가’에서는 각 지역 작가회의와의

연대를 위해 ‘공감과 연대’라는 난을 두어

서로 교류하며 교감하고 있다.

이번 가을호(통권 제42호)는

전북작가회의 시인들 다섯 분의 시

10편을 싣고 있다.

 

여기에 한 분의 시 1편씩

도합 5편을 옮겨

석송과 같이 싣는다. 

 

 

♧ 지금, 여기에서 - 이영종

 

지금은 쉬지 않는 풀벌레의 목소리를 걱정해야 할 때

지금은 찬물로 머리를 팽팽하게 감아야 할 때

지금은 아직 따스한 애인의 가슴을 덮어주어야 할 때

지금은 소쿠리에 겨드랑이 땀을 말려야 할 때

지금은 그저 파일을 검사하고 있는 푸른 기둥을 바라보아야 할 때

지금은 솥 안에 우리를 가두어 놓고 들들 볶는 주걱에 대해 키 높이 몇 배로 뛰어야 할 때

지금은 눈두덩 누르는 척, 슬픔을 찾아야 할 때 <!--[endif]--> 

 

 

♧ 선 - 김성철

 

오랫동안 사모해온 그녀와 섹스를 나누거나

비문을 불러내 뻔한 사연을 담고선 시라 우기기 좋은

땡볕의 월요일.

마른 장마전선은 자취방 선풍기에도,

냉장고에도 드리운 채 습하다.

빗방울에 대한 소문은 곧 남하한다 하였으나

기약 없고

나는 신석기시대쯤의 허약한 남자가 되어

동굴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주술을 외우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태풍이란 단어를 웅얼거린다.

나를 뒤집고 너를 뒤집고 세상을 뒤집을 태풍.

 

내가 그린 선이 면이 되고 면이 굴곡져 원이 되고

원이 쌓이고 쌓여 씨앗을 만들고,

그렇게 시작되는

태풍.

 

쪽창을 열자 흉하게 풍겨오는 열기 뒤로 바람이 분다.

곧 가로수들이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고 뒤집어지는 세상이 오면

어느 샌가

너와 난 헝클어진 채

등을 맞대거나 콧잔등이 부딪혀

단발의 비명으로 반가움을 표시할 것이다.

 

나는 지금

동굴에 앉아 선을 그리고 있다.  

 

 

♧ 디지털 치매 - 김다연

 

  여보 여기는 닭이 우는 전통마을 주계약은 환급형 순수 사랑이며 종류는 종신보증 적립형인데요 특약으로 든 것은 한가로운 것 봐서 장애의 등급을 나눌 거라 하였지요 믿음이 다해 불감증이 심하다 하였지요 오오 이런 입성 까다로운 20대의 약관을 까먹었군요 나루 건너 바람 부는 쪽으로 기우는 건 자유이나 지천명이 날 닭 소보듯 하면 부활은 물론 자동 납입하던 이 불안 더는 유지될 수 없잖아요 알은 빨리 깨야 물리지 않으니까요 계약자님

  

 

♧ 호모 나이트쿠스* - 안성덕

 

  양계장을 대낮처럼 밝힌 후, 우리는 단잠에 들지 못했다 잠깨워주지 못할 새벽닭 걱정 때문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하루 한 알씩 알을 뽑아내는 그 쏠쏠한 재미를 터득하고부터 더 이상 꿈은 없었다 내일은 없었다(잠을 자야 꿈을 꾸지 아니 내일이 오지)

 

  어둠을 몰아내자 하늘의 별도 종적을 감추었다 붙박이별이 사라진 뒤 이정표를 잃은 우린 부평초처럼 떠돌았다

 

  여우 난 밤 도깨비 이야기쯤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줬다 부릅뜬 가로등 아래 담장 위 넝쿨장미가 꽃 피우지 못하자, 골목에는 연애도 시들해졌다

 

  씨 없는 알을 낳은 닭이 울지 않는 대낮 같은 새벽, 닭의 씨가 마를새라 우리들은 더욱 허기졌다

 

  세상에 코 베일세라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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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모 나이트쿠스 : 밤을 낮처럼 보내는 사람들 

 

 

♧ 귀향 - 오창렬

 

마음이 대때로 고향을 기웃거리니

몸이 늙는가 보다

고향의 찔레꽃은 가시를 숨기고 내 목숨을 기웃거린다

목숨과 삶이 서로 기웃거리는 동안

결결이 마음은 고향으로 기울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길은 세상이 그리 헤매고

돌아오기 위해 떠남이 필요했다면

나의 귀향은 떠날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나는 평생 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고향을 기웃거리니

고향으로 몸이 기운다 시시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