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연익 시집과 호랑가시나무

김창집 2013. 12. 11. 00:14

 

강연익 시인이 고희를 맞아

시집 ‘수평선으로 시간을 떠밀며’를 냈다.

 

1부 잿빛 그리움 -출항

2부 태풍의 중심에서 -항해

3부 하루를 건너며 -귀항

4부 사는 동안 -정박

 

필자는 제주 애월 구엄 출생으로

1973년부터 해기사, 선장으로 12년 동안 외항선을 탔고,

2007년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하였다.

2013년 시집 ‘수평선으로 시간을 떠밀며(그림과책)’ 발간

 

시 몇 편을 뽑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호랑가시나무 열매와 같이 올린다.

 

 

 시인의 말

 

가도 가도 끝없는 수평선인 줄 모르고 갔다가

지구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끝이 보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바다와 인연 맺고 한평생 살아온 날들

노을에 버무려진 삶의 흔적들

파도에 휩쓸려 간 고난의 시간들

기억의 낙서로 남은 것들을 모아

또 한 번 두려움과 설렘으로 출항하듯

한 권의 시집을 엮었습니다.……(하략) 

 

 

♧ 윤회輪廻 (2)

 

욕망은 단단한 생각으로도

무너질 수 있지만

외로움은 밤마다 끝없는 파도로 밀려와

심장에 파도소리를 세며 이어온 세월

떠나고 만나는 순리를 안다면

누가 어둠 속 두려움을 벌하려 할까

 

아픔을 먹고 영혼은 자라고

믿음을 먹고 마음도 자라

가슴속에 쿵쿵 고동소리 들릴 때마다

닫힌 마음으로 날개가 돋는 푸른 잎사귀들

죄조차 상록常綠의 일생과 섞인다

 

부끄러워 말라

괴로움의 속살에도 귀한 지혜의 보물이 박혀 있어

뒤에 오는 자들의 눈이 되리니

두려워 말라

태양이 내일이면 떠오름을 노을로 약속하는 것임을 

 

 

♧ 인연

   - 어머니 49제에 부쳐

 

쌓여온 슬픔을 형벌로 이겨내며

삶의 무게를 이고 방황하던 들판에서

비바람 견디는 하얀 들꽃의 생명력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봄날을 꿈꾸며 모질고 기인 여정 이끌며

여기까지 왔는데

삶의 보금자리 뒤로하고

집 떠난 새끼들 걱정하며

낙엽처럼 인연을 내려놓으셨네

이생의 거룩한 인연 공덕으로

서방정토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

뭇 중생들 기쁘게 하리니

인연 닿아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 수평선

 

바닷물 가득 채우고 보이는 수평선

가는 길도 지나온 길도 같을 뿐

 

가도 가도 지워지지 않은 수평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곳

 

수평선 너머에 아늑한 내 고향

언제고 닿을 수 있을까

 

비린내 나는 마을 지나

물고기 고향 넘어가면 들리는 숨결

 

수평선 위로 가득 내린 별들

고향 찔레꽃 향기 실은 별이 나를 반겨준다  

 

 

♧ 운주사 천불천탑

 

질서 없이 흩어져 있는 돌부처들

그날 밤하늘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 년을 기도하며 살았던 노스님

끝내 진여의 과보에 앉아 서원 세워

하루에 천불천탑을 만들겠노라고

하늘 칠성 나라에 도움을 청했네

 

칠성 바위에 운하교를 만들고

그 다리 건너 일곱 나라에서

석공이 아니라도 깨우친 이들 천명이 모여들어

영혼을 심으며 천불천탑을 만들다가

닭이 울자 미쳐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부처님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고 돌아가 버렸네

 

어느 스님이 다시 있어

천불천탑을 완성할 수 있으랴마는

미완이어서 꿈이 남아있는 아름다움

운주사 밤하늘이 저렇게 더 밝게 보이는 까닭일까 

 

 

 

♧ 이별 이여도

 

오랫동안 당신을 떠나

나는 바다 위를 떠돌았지요

 

당신이 보고 싶어질 때면

사슴 같은 그대 모습 그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채찍질하였지요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내가 떠오르니

그대여, 받아보세요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

물결 위에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어

당신 또한 날 사랑하는 걸 알고 있어요 

 

 

♧ 중력

 

대지는 어머니 가슴 같아

나무도 잡초도 품에 안아 꽃을 피웁니다

흙의 기운은 산을 일구고

젖줄 같은 강물이 흐릅니다

술이 발효되지 않고

동치미도 삭지 않는 빌딩 숲은

하늘로만 솟구치는 삶의 벼랑입니다

그리하여 흙을 붙잡으려

대지로 비가 내리나 봅니다

사랑하는 가슴으로 귀환하듯

모든 것들이 대지로 내려앉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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