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해리 꽃시집 ‘금강초롱’ 3

김창집 2013. 12. 12. 00:07

 

♧ 명자꽃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 능소화

 

언제 바르게 살아 본 적 있었던가

평생 사내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빌어먹을 년!

그래도 그거 하나는 세어서

밤낮없이

그 짓거리로 세월을 낚다 진이 다 빠져

축 늘어져서도

단내 풍기며 흔들리고 있네.

 

마음 빼앗기고 몸도 준 사내에게

너 아니면

못 산다고 목을 옥죄고

바람에 감창甘唱소리 헐떡헐떡 흘리는

초록치마 능소화 저년

갑작스런 발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花들짝,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네. 

 

 

♧ 배꽃 - 홍해리(洪海里)

 

1

바람에 베여지는 달빛의 심장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불꽃이네

호르르 호르르 찰싹이는 은하의 물결.

 

2

천사들이 살풀이를 추고 있다

춤 끝나고 돌아서서 눈물질 때

폭탄처럼 떨어지는 꽃이파리

그 자리마다 그늘이 파여……

 

3

고요가 겨냥하는 만남을 위하여

배꽃과 배꽃 사이 천사의 눈짓이 이어지고

꽃잎들이 지상을 하얗게 포옹하고 있다

사형집행장의 눈물일지도 몰라.

 

4

배와 꽃 사이를 시간이 채우고 있어

배꽃은 하나지만 둘이다

나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듯이

시간은 존재 사이에 그렇게 스민다.  

 

 

♧ 해당화

 

그해 여름 산사에서 만난

쬐끄마한 계집애

귓볼까지 빠알갛게 물든 계집애

절집 해우소 지붕 아래로

해는 뉘엿 떨어지고

헐떡이는 곡두만 어른거렸지

저녁바람이

조용한 절마당을 쓸고 있을 때

발갛게 물든 풍경소리

파·르·르·파·르·르 흩어지고 있었지

진흙 세상 속으로 환속하고 있었지. 

 

 

 

♧ 아카시아

 

가시나무 꽃피어 여름이 오네

그대의 사랑빛이 저리하리야

소리없이 눈물만 뿌리는 여인

산자락에 머리 풀고 홀로 울어라

이슬 젖은 소복이 하늘에 뜬다

떼로떼로 파고드는 젖빛 그리움

떠나간 그 님은 소식도 없고

서편 하늘 노을만 섧게 젖누나.  

 

 

♧ 타래난초

 

천상으로 오르는

원형 계단

 

잔잔한

배경 음악

 

분홍빛

카펫

 

가만가만 오르는

소복의 여인

 

바르르 바르르

떨리는 숨결.

                                                                                              

*치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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