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달력에
이틀만이 유효한 이 시점에서
몸의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추위와 맞장 뜨는 나무를 본다.
다 내려놓은 마당에
더 이상 잃을 것이 무에 있겠느냐며
조그만 추위에도 자꾸 뒤물러서는
나에게 호령한다.
나도 묵은 허물을 훌훌 모두 떨어버리고
새 갑오년으로 탈출하고 싶다.
♧ 겨울나무 - 성백군
열매도 잎도 다 털어낸
나뭇가지가
지나가는 바람 앞에 섰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빈 몸뚱이를 거친
겨울바람이 쉽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난도 생존의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욕심 없는 마음이 되어야 한결
견디기가 쉽다는
마지막 잎사귀까지 털어내며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 곁에
나도 한번 서 보았습니다.
♧ 겨울나무 - 명위식
가진 것 걸친 것
다 내려놓으니 가볍다
눈치볼일 없으니 편안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어렵고 고된날 말없음도
안으로 힘을 모으려는
오래 참음 배우는 거라는,
머잖아 기다리는 임오시면
다시 깨어나 일어서리라는,
꿈 하나 품어 키워가노라면
에이는 칼바람 어둠 지나고
겨울강가 얼음꽃 눈부신
아침 해 떠오를 거라는.
♧ 겨울나무 - 김근이
빈 몸으로
서 있으면서도
저렇게 당당 할 수 있을까
하늘을 휘젓는
가지 끝에서
바람이 인다
잎 파리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서서
세상을 호령하는 겨울나무
그 가지 끝으로
구름이 간다
♧ 나무들 겨울나기 - 이향아
여기쯤에서 대답할까, 날씨는 궂고
바람은 깃광목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기죽지 말아야지, 얼어붙은 땅을 굴러 춤을 춰야지
누구냐, 몰래 숨어서 셀로판지를 구기는 사람
내 늑골 어딘가에 금 하나를 긋는 사람
나 잠길까, 허리 굽혀서
햇살이면 햇살, 소금국이면 소금간국에
큰 바위 얹어 숨죽어 있어도
쓸개 하나 잘 지키고 살래
팔팔한 잎새는 쓰다듬어서
내 품이 미어지게 끌어안고
순하게 항복하듯 물길을 잡기로
끄덕이기로
이렇게 편한 것을 왜 몰랐을까
엉터리였다 나는,
작두날 위에 사지를 눕혀도
아니면 절대로 없다고만 하였다
나는 청맹과니
없으면 막무가내 아니라고만 하였다
나 홀로 열두 달 아름다웠을지라도
나는 열두 달 어리석었다
등걸처럼 터진 손등 뒤로 감추고
그래도 두 다리는 진흙 깊이 묻기로
오냐, 오냐 그럴 테지 큰 나무처럼 서서
죽어도 휘청거리지 않기로 하였다
♧ 겨울나무 - 변종환
그대가 서성이던 들판에서
빛나고 아름답던
시절을 생각하네
뒷모습을 끝없이 바라보며
그대와 함께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던 그 때
낮게 엎드려 바람의 얼굴로
가녀린 풀잎을 바라보던 바닥에는
지나온 생의 자취 서려있네
청정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매달고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 세상을 손가락질하던
그 꿈과 사랑은 여기 우뚝한 것을
잠시도 벗어버릴 수 없는
숙명의 순간에 잎 떨군 겨울나무
저 생명의 처절한 선택을 보네
♧ 겨울나무 - 남민옥
모든 것 비우고
지금은 묵상 중
바람소리도 마음으로 듣고
조용히 조용히 뿌리로 말하면서
살아온 길 더듬어 본다
긴긴 날에
기쁨은 쉬이 사그러 들고
날마다 부화하는 슬픔으로
어둑한 세상 이 겨울날
온 몸 내어주고 있는 그대여
기다림은
살아 있는 자의 것
기억한다 우리 모두
뜨거운 피 흐르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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