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나무야 겨울나무야

김창집 2013. 12. 30. 12:26

 

한 장 남은 달력에

이틀만이 유효한 이 시점에서

몸의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추위와 맞장 뜨는 나무를 본다.

 

다 내려놓은 마당에

더 이상 잃을 것이 무에 있겠느냐며

조그만 추위에도 자꾸 뒤물러서는

나에게 호령한다.

 

나도 묵은 허물을 훌훌 모두 떨어버리고

새 갑오년으로 탈출하고 싶다.  

 

 

♧ 겨울나무 - 성백군

 

열매도 잎도 다 털어낸

나뭇가지가

지나가는 바람 앞에 섰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빈 몸뚱이를 거친

겨울바람이 쉽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난도 생존의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욕심 없는 마음이 되어야 한결

견디기가 쉽다는

마지막 잎사귀까지 털어내며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 곁에

나도 한번 서 보았습니다.

  

 

♧ 겨울나무 - 명위식

 

가진 것 걸친 것

다 내려놓으니 가볍다

눈치볼일 없으니 편안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어렵고 고된날 말없음도

안으로 힘을 모으려는

오래 참음 배우는 거라는,

 

머잖아 기다리는 임오시면

다시 깨어나 일어서리라는,

 

꿈 하나 품어 키워가노라면

에이는 칼바람 어둠 지나고

겨울강가 얼음꽃 눈부신

아침 해 떠오를 거라는.

   

 

♧ 겨울나무 - 김근이

 

빈 몸으로

서 있으면서도

저렇게 당당 할 수 있을까

 

하늘을 휘젓는

가지 끝에서

바람이 인다

 

잎 파리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서서

세상을 호령하는 겨울나무

 

그 가지 끝으로

구름이 간다  

 

 

♧ 나무들 겨울나기 - 이향아

 

여기쯤에서 대답할까, 날씨는 궂고

바람은 깃광목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기죽지 말아야지, 얼어붙은 땅을 굴러 춤을 춰야지

누구냐, 몰래 숨어서 셀로판지를 구기는 사람

내 늑골 어딘가에 금 하나를 긋는 사람

나 잠길까, 허리 굽혀서

햇살이면 햇살, 소금국이면 소금간국에

큰 바위 얹어 숨죽어 있어도

쓸개 하나 잘 지키고 살래

팔팔한 잎새는 쓰다듬어서

내 품이 미어지게 끌어안고

순하게 항복하듯 물길을 잡기로

끄덕이기로

이렇게 편한 것을 왜 몰랐을까

엉터리였다 나는,

작두날 위에 사지를 눕혀도

아니면 절대로 없다고만 하였다

나는 청맹과니

없으면 막무가내 아니라고만 하였다

나 홀로 열두 달 아름다웠을지라도

나는 열두 달 어리석었다

등걸처럼 터진 손등 뒤로 감추고

그래도 두 다리는 진흙 깊이 묻기로

오냐, 오냐 그럴 테지 큰 나무처럼 서서

죽어도 휘청거리지 않기로 하였다

 

 

♧ 겨울나무 - 변종환

 

그대가 서성이던 들판에서

빛나고 아름답던

시절을 생각하네

뒷모습을 끝없이 바라보며

그대와 함께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던 그 때

낮게 엎드려 바람의 얼굴로

가녀린 풀잎을 바라보던 바닥에는

지나온 생의 자취 서려있네

청정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매달고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 세상을 손가락질하던

그 꿈과 사랑은 여기 우뚝한 것을

잠시도 벗어버릴 수 없는

숙명의 순간에 잎 떨군 겨울나무

저 생명의 처절한 선택을 보네

 

 

♧ 겨울나무 - 남민옥

 

모든 것 비우고

지금은 묵상 중

 

바람소리도 마음으로 듣고

조용히 조용히 뿌리로 말하면서

살아온 길 더듬어 본다

 

긴긴 날에

기쁨은 쉬이 사그러 들고

날마다 부화하는 슬픔으로

어둑한 세상 이 겨울날

온 몸 내어주고 있는 그대여

 

기다림은

살아 있는 자의 것

기억한다 우리 모두

뜨거운 피 흐르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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