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2013 제21호를 다시 펴들다.
이번에는 거꾸로 펼치며
작품들을 읽어내려 간다.
그 중에 여섯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골라
요즘 오름 기슭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자금우와 함께 올려본다.
♧ 노을 - 홍경희
꽉 깨문
이별 앞에
턱까지 차오른 말
미어지다
미워지다
뒤돌아
그리움이지
빗금 간
그 이름만으로도
붉어지는
사람아
♧ 백자 앞에서 - 한희정
마음도 저리 환한
백옥빛이면 좋겠네
칼끝보다 매서웠을,
깊은 숨도 멈추었을
한 생애 소용돌이 속,
은하 건넌
별
하나
♧ 손익분기점 - 조한일
-가위바위보
계산기 안 두드리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오롯이 챙기지만
한 움큼
쥐었다 펴면
바위 감싸는
빈
손바닥
♧ 안부 - 장영춘
마주 보고 가는 길은
언제나 눈앞의 수평
늘 그만한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듯
올여름
잘 건넸는지
느닷없이 귀뚜리 운다
♧ 서귀포 2 - 이창선
계절이 바뀌면
바뀐 대로 손짓하는
올렉리 전설 속에
함께 걷는 출근길
엄지손
지문인식기
내 사랑의 서귀포
♧ 해녀의 꿈 - 이용상
삼달리 바다에는
자맥질한 해녀들
왼종일 몸을 맡겨
게워낸 숨비소리
이어도
너의 섬에도
전복 소라 자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