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파란 하늘 아래 백목련

김창집 2014. 3. 17. 10:22

 

어제 봄길 걸으려

우리나라에 봄이 제일 먼저 오는

서귀포시 남원읍으로 건너가,

우선 머체왓 길을 걸은 후

돌아오는 길.

가로수로 심은 목련이

한창이더니,

제주시로 넘어와

집으로 가는 길에도

목련이 이렇게 피었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목련꽃. 

 

 

♧ 목련나무 - 도종환

 

그가 나무에 기대앉아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뜰의 목련나무들이

세차게 이파리를 흔들고 있나 보다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

살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사랑이었다

그를 만났을 땐 불꽃 위에서건 얼음 위에서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숯불 같은 살 위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고

시냇물이 강물을 따라가듯

함께 섞여 흘러가지도 못했다

순한 짐승처럼 어울리어 숲이 시키는 대로

벌판이 시키는 대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사랑이 가자는 대로 가지 못하였다

늘 고통스러운 마음뿐

어두운 하늘과 새벽 별빛 사이를 헤매는 마음뿐

고개를 들면 다시 문 앞에 와 서 있곤 했다

그가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목련나무잎이 내 곁에 와 몸부림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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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 홍연희

 

생리 멈춘 첫 봄

원기충천 하던 그때를 떠올린

아직은 청춘인 듯

온 몸 부풀린

그녀의 나이와

 

간밤

젖은 창가 흔적 남기고

햇살 뿌린 아침 만난

온통 검붉은 치장으로

거울 앞에 설

출산 앞둔 그대와

 

웅크려 안은

가득한 가슴 안 궁리는 같다

 

서로가

또다시 피우고 싶은

욕망. 

 

 

♧ 목련화 - 조철형

 

바람을 안고 살던 거친 날

전신마다 시리운 네 설움은

그리운 남녘의 바람을 기다리며

많이도 아팠구나

 

바람의 심장에서

혈관 구석구석 요동치던 뜨거운 너의 피가

하늘로 치솟는 날

화려하게 아주 화려하게 너는 춤출 때가 되었다

 

춤추는 하얀 날들은

오롯이 네가 죽도록 그립던 세상이다

꽃 피면 가여운 날 다가오더라도

가녀린 너의 목이 떨어져도 울지 말고 가야 한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뜨거운 너의 피가

거리를 하얗게 적시온 날

바람의 가슴에서 용틀임하던 그리운 너의 사랑도

뜨겁게 뜨겁게 하늘로 치솟아 오를 테니까.  

 

 

♧ 목련 송 - 박종영

 

자잘한 햇빛 다스리며 눌러앉아

봄의 색기로 피어나는

백옥의 웃음이 가관이다.

 

부끄럼 없이 골고루 차오른

살풋한 피부며, 탐스러운 가슴이며,

다듬어 내미는 보송한 입술이야

자지러지는 환희의 꽃 잔치다

 

춤추는 봄 강이 물수재비 타며 건너고

오붓한 꽃술 그 은밀한 곳에 숨어

목숨을 거는 벌과 나비의 탐닉이 야릇한 시간,

흰 목덜미 요염하게 바람피우는 간살이 미워,

입술 벙그리며 볼록한 웃음 닮아가는

연둣빛 관능 솟아오르게 가만가만 귓속말을 아낀다

아득한 이별을 들고 와

그리움의 층계를 이루는 혼절한 봄날,

낮은 음계로 살근대는 꽃 가슴 달고

봄의 가장자리 깊은 곳에 목련 너,

어찌 그리움의 궁전을 만들고 싶지 않으랴? 

 

 

 

♧ 하얀 목련 - 이진선

 

도시의 그늘 속에

하얀 참새 떼가

몰려들었다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들,

그리움 가득 품고서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틈새마다

앉아 있다

따사로운 햇살에 살 오르고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날개 짓 하는 그들

낯달이 수줍다

추억을 한껏 풀어놓더니

해질녘

하나 둘 날아가 버렸다

 

땅으로 내려앉은 갈색 깃털의 참새들이

부지런히 기억을 물어 나르는

저녁 무렵  

 

 

♧ 그 봄, 백목련이 질 때 - 목필균

 

순결이란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

겨우내 모진 바람 여린 꽃눈으로 견디고

하얀 눈물로 피어난 것은

사랑, 그 이름을 지우기 위한 것임을

 

작은 잎새 하나 붙이지 못한 채

하늘 향해 몸을 연 나는 꽃이 아니라

소복 입은 여인의 한이었느니.

긴 기다림, 짧은 목숨이 얼마나 처연한지

내 주검 위에는 뿌려진 검붉은 혈흔이

사랑, 그 순결을 잃은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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