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이다.
제주에서는 온 섬에 오랫동안 피비린내 풍겼던
무자년 난리(4.3) 66주년을 맞아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
진정한 4.3의 봄은 언제나 올는지.
국가기관에서는 여론에 밀려 후속 조처가 별로 없이
추념일 지정만 한 셈이다.
죄가 있다면, 제주섬에 태어난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
글 쓰는 사람부터 하나가 되자고
문인협회와 작가회의가 같이
시화전을 열고 시집을 냈다.
제주 4.3 66주기 시선집 ‘돌의 눈물’에 나온 시편과
4월 3일을 기해 선혈처럼 피어난 털진달래를 바쳐
비참하게 가신 영령들을 위무하고자 한다.
♧ 4.3의 노래 - 문충성
게난 홋설 잘 살게 되영
거들거리멍 까부럼수광
무싱 것들 햄수광
무신 웬수치 경들 싸우지들 맙주
영정 죽어나게 사랑이나 당 갑주
무자년 4.3 터정 반백년이 넘었수게
경허난 이제사
끝나 감수광, 아아! 끝났수광
끝나지 안았수광 아직도
끝날 거 같지 않수광 영영
이름난 동산에 일년에 번씩
모일 사람 다 모영들
용서와 화해와 상생과 평화만 노래햄수광
시뻘겅허당 희영해진 눈물만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 우네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 광치기바당 갯메꽃 - 김섬
무시거 허젠 살립디가 무시거 젠
씨 멸족 확인사살 세 발에도 죽지 못핸
돌덩이 어멍 가슴이나 허우튿던
철 어신 목숨이우다
하늘이 살렸댄 지맙서
어멍 아방 하르방 할망
한 자리에서 다 잡아먹은
하늘이 버린 애기우다
잊어불젠 목 매달곡
잊지말젠 목 매달아 온
통곡같이 서러운 세월이우다
촤르르 촥 촤르르 촤악…….
목 조르지 맙서 목 조르지 맙서
핏물 닦지 못한 총살 떼죽음
꿈인 듯 생시인 듯
퍼렁허게 달려들엄수다
골백번 무자년이라도
엎어진 자리마다 비죽비죽
죽지 못 질긴 목숨이우다
♧ 불편하다 - 강덕환
- 4.3평화공원에서
한라산을 가로막은 반원형 조형물이
그 속에 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위패들이
초석 펴고 적꼬치 술 한 잔 올릴 수 없음이
기호처럼 나열된 저 숫자가 불편하다
바람막이 없이 태극 문양 새겨진
위령광장에서 검은 넥타이 휘두릴 때
생살을 도려낸 추념광장을 보기가
사백삼십 고지 비탈을
헉헉대며 올라야 하는 숨 막힘이 불편하다
♧ 벚꽃이 피면 - 김영란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엔 세 살짜리 딸이 업혀 있었고, 새 생명 하나 움트고 있었지.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몽둥이찜질 당했지. 비바람치던 어느 겨울 밤 난생 처음 배를 타 봤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 물을 수가 없었어. 동물적 본능이었을까 시퍼렇게 참던 아이. 맞은 다리 찢기어 썩어들고 진물 나고 흰 뼈가 다 드러나도록 신음 한 번 안낸 거야. 어미라는 작자가 제 세끼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마지막 의식인 듯 어미젖 부여잡고 싸늘한 입맞춤으로 작별인사 하고 갔어. 전주형무소 공동묘지, 거기가 어디였을까? 묻어두고 안동으로 이감되는 날, 벚꽃 핀 걸 보았어.
딸아이
옹알이처럼
내려앉고
잊었어
♧ 어머니의 파일 - 김영숙
외가 집 우잣 따라 동백꽃이 피었네
그 새벽 도장밥 같은 동백꽃이 피었네
예순 해 몽우리 풀어 동백꽃이 피었네.
“찍읍서, 찍읍서게, 찍어사 살아져 마씀.”
“이 펜도 저 펜도 아니우다, 아니우다.”
혀끝의 말을 삼키던, 동박새가 떨고 있네.
“느네 할망 가슴도 이추룩 해실거여.”
데작데작 돔박껍데기 가만히 어르시다
슬며시 비번을 푸는 꽃을 나는 보았네.
♧ 4월의 정뜨르비행장 - 오영호
굉음에 몸서리치며 들풀들 손을 잡고
3천배 오체투지 천만 번 하고 나서
육십년 나이테 따라
막힌 혈을 뚫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
부릅뜬 하얀 눈들
도두봉 봉화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갑자기 더운 피 쏟으며
혼절하는 슬픈 영혼.
진실을 파묻어버린
먹물 빛 활주로에
동강난 4월 바람 광란의 춤사위 끝에
허상의 가면들 벗고
소주잔을 붓고 있다.
오가는 승강구에 파르르 떠는 인연
가슴 속 생솔가지 활활 타오르면
흙 묻은 만장을 꽂는
나의 손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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