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제주4.3과 털진달래꽃

김창집 2014. 4. 4. 00:59

 

잔인한 달 4월이다.

제주에서는 온 섬에 오랫동안 피비린내 풍겼던

무자년 난리(4.3)  66주년을 맞아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

진정한 4.3의 봄은 언제나 올는지.

 

국가기관에서는 여론에 밀려 후속 조처가 별로 없이

추념일 지정만 한 셈이다.

 

죄가 있다면, 제주섬에 태어난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

 

글 쓰는 사람부터 하나가 되자고

문인협회와 작가회의가 같이 

시화전을 열고 시집을 냈다.

 

제주 4.3 66주기 시선집 ‘돌의 눈물’에 나온 시편과

4월 3일을 기해 선혈처럼 피어난 털진달래를 바쳐

비참하게 가신 영령들을 위무하고자 한다. 

 

 

♧ 4.3의 노래 - 문충성

 

난 홋설 잘 살게 되영

거들거리멍 까부럼수광

무싱 것들 햄수광

무신 웬수치 경들 싸우지들 맙주

 

영정 죽어나게 사랑이나 당 갑주

무자년 4.3 터정 반백년이 넘었수게

경허난 이제사

끝나 감수광, 아아! 끝났수광

 

끝나지 안았수광 아직도

끝날 거 같지 않수광 영영

이름난 동산에 일년에  번씩

 

모일 사람 다 모영들

용서와 화해와 상생과 평화만 노래햄수광

시뻘겅허당 희영해진 눈물만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 우네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 광치기바당 갯메꽃 - 김섬

 

무시거 허젠 살립디가 무시거

씨 멸족 확인사살 세 발에도 죽지 못핸

돌덩이 어멍 가슴이나 허우튿던

철 어신 목숨이우다

 

하늘이 살렸댄 지맙서

어멍 아방 하르방 할망

한 자리에서 다 잡아먹은

하늘이 버린 애기우다

 

잊어불젠 목 매달곡

잊지말젠 목 매달아 온

통곡같이 서러운 세월이우다

 

촤르르 촥 촤르르 촤악…….

목 조르지 맙서 목 조르지 맙서

핏물 닦지 못한 총살 떼죽음

꿈인 듯 생시인 듯

퍼렁허게 달려들엄수다

 

골백번 무자년이라도

엎어진 자리마다 비죽비죽

죽지 못 질긴 목숨이우다

 

 

♧ 불편하다 - 강덕환

   - 4.3평화공원에서

 

한라산을 가로막은 반원형 조형물이

그 속에 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위패들이

초석 펴고 적꼬치 술 한 잔 올릴 수 없음이

기호처럼 나열된 저 숫자가 불편하다

 

바람막이 없이 태극 문양 새겨진

위령광장에서 검은 넥타이 휘두릴 때

생살을 도려낸 추념광장을 보기가

사백삼십 고지 비탈을

헉헉대며 올라야 하는 숨 막힘이 불편하다

 

 

♧ 벚꽃이 피면 - 김영란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엔 세 살짜리 딸이 업혀 있었고, 새 생명 하나 움트고 있었지.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몽둥이찜질 당했지. 비바람치던 어느 겨울 밤 난생 처음 배를 타 봤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 물을 수가 없었어. 동물적 본능이었을까 시퍼렇게 참던 아이. 맞은 다리 찢기어 썩어들고 진물 나고 흰 뼈가 다 드러나도록 신음 한 번 안낸 거야. 어미라는 작자가 제 세끼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마지막 의식인 듯 어미젖 부여잡고 싸늘한 입맞춤으로 작별인사 하고 갔어. 전주형무소 공동묘지, 거기가 어디였을까? 묻어두고 안동으로 이감되는 날, 벚꽃 핀 걸 보았어.

 

 딸아이

 옹알이처럼

 내려앉고

 잊었어 

 

 

♧ 어머니의 파일 - 김영숙

 

외가 집 우잣 따라 동백꽃이 피었네

그 새벽 도장밥 같은 동백꽃이 피었네

예순 해 몽우리 풀어 동백꽃이 피었네.

 

“찍읍서, 찍읍서게, 찍어사 살아져 마씀.”

“이 펜도 저 펜도 아니우다, 아니우다.”

혀끝의 말을 삼키던, 동박새가 떨고 있네.

 

“느네 할망 가슴도 이추룩 해실거여.”

데작데작 돔박껍데기 가만히 어르시다

슬며시 비번을 푸는 꽃을 나는 보았네. 

 

 

♧ 4월의 정뜨르비행장 - 오영호

 

굉음에 몸서리치며 들풀들 손을 잡고

3천배 오체투지 천만 번 하고 나서

육십년 나이테 따라

막힌 혈을 뚫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

부릅뜬 하얀 눈들

도두봉 봉화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갑자기 더운 피 쏟으며

혼절하는 슬픈 영혼.

 

진실을 파묻어버린

먹물 빛 활주로에

동강난 4월 바람 광란의 춤사위 끝에

허상의 가면들 벗고

소주잔을 붓고 있다.

 

오가는 승강구에 파르르 떠는 인연

가슴 속 생솔가지 활활 타오르면

흙 묻은 만장을 꽂는

나의 손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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