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전형의 시와 약모밀 꽃

김창집 2014. 6. 30. 01:08

 

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를 다시 편다.

읽으며 몇 편 골라

요즘 한창인 어성초꽃과 함께 올린다.

 

약모밀은 삼백초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어성초’라고도 하며,

줄기는 높이가 20~50cm 정도이고

털이 없으며 냄새가 난다.

땅속줄기는 옆으로 벋으면서 퍼지는데

꽃이 피기 전의 것은 이뇨제 및 구충제로 사용하고,

즙은 독충에 쏘이거나 물렸을 때 바른다.

민간에서는 화농이나 치질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 나도 사랑을 해 봤을까

 

누군가 지평선에 내 꽃길 드리웠을까

활짝 핀 마음이 눈으로 들어서고

엇장단 리듬처럼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와

기척 없는 천리향이 지천에 가득했을까

생각으로 제 몸 곱게 씻은 별처럼

외길로 접어든 내 생각도 나를 씻어

어둠 속에서 내가 반짝였을까

 

달무리에 안긴 보름달처럼

황홀한 표정이 내 눈가를 스쳤을까

더 오를 곳 없는 영마루에서

거침없이 더 오르고픈 헛발질같이

사랑은 법전 없는 눈 먼 무질서인데

시나브로 내 안에 갇혀 못 나간 사람

내가 쫓아내지 못한 사람, 있었을까

 

예고 없는 한낮의 소나기처럼

가득 드리워진 바람꽃 뚫고 나와

후드드득 미치도록 들길을 달렸을까

단풍잎에 찬서리 내리고

나이든 침묵이 바위처럼 깔린 늦가을 새벽

내 안에 사는 청년 하나가 묻는다

나도 사랑을 해 봤을까

 

 

 

 자각

 

시가 고프다는 핑계로

밤낮없이 헤매는

내 벌건 눈알이 가엽다고

바다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떼어줄 마음 한 조각 없던

소라껍질 속으로

바람 한 줄기 담는다

 

부-우 웅

소라껍질이

바다로 떠날 차비를 한다

아, 나도 이제 집에 가야겠다 

 

 

♧ 은발의 청춘

 

꽃이 지면 끝나는 줄 알았지

단풍잎 지고 나목이 되면

무서리를 떠나는 철새 될 줄 알았지

내 깊은 속살에 파릇파릇한 새싹들

향긋한 꽃눈 한가득 품어 안고

가만가만 옹크려 있는 줄 몰랐지

강 건널 때 됐는가 싶었지

몸 실린 강물 유유히 흐르고

바다는 아직 먼 길인 걸 몰랐지

세상이 없고 그대도 흔적 없는

외롭고 휑한 길에 들 줄 알았지

미래는 언제나 남아 있는 것

내 안에 그대 봄바람 살랑살랑

무더기로 활활 피어 있는 걸

꽃 지고 단풍 진 날 살짜기 알았지

  

 

♧ 장독

 

어렵사리 한 세상 겪고 가신 어머니

시름 한 가닥 남겨둔 곳 같은

낡은 장독

금 간 가슴에 물기가 배어나오네

 

어쩌다 살펴보면 텅 빈 항아리

세상 다 비워버린 어머니 속 같아

그래도 너무 허전할 것 같아

쓰지는 않지만 물만 가끔 채워두는

 

이별처럼 텅 빈 가슴이지만

추억은 한 귀퉁이도 허물지 않았는 듯

넓게 열린 온전한 몸으로

무한한 하늘 다 받아들이더니

 

등허리를 따라 기어오르던 담쟁이가

장독 속에 고개 들이밀어

속내를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미련 하나쯤 보았는가

새 섭 하나 더 윤지게* 내미는데

 

쉬지 않고 스며들던 세월이

오늘은 장독을 스치다가

메주를 담그던 어머니의 마른 손이 생각났는가

저리 서럽게 한참을 울고 있네

 

---

*윤지게 : 윤기가 있게. 

 

 

 

♧ 나팔꽃

 

휘청거리는

홍등가 골목

색벽녘

울타리 밖으로 고개 내민

화장기 가득한 얼굴

시간 있으세요?

짧은 사랑 긴 추억

따, 따, 따!

따세요 나를 

 

 

♧ 감자꽃 필 무렵

 

아무려면

누구에게나 순정 하나 없을라구

지상의 온기에 가슴 설레며

저마다의 순정을 꽃송이로 열어대는 법

 

점점 뜨거워지고 마는

몸을 다스리려, 늦봄이

산속으로 수행 길을 떠날 무렵

연분홍 순정 감자꽃 필 때

 

삼촌은 쌍심지 켜고

우악스런 냉혈 인간이 됐다네

순정은 무슨, 오로지

튼실한 밑알을 키워야지

날선 가위로 법도를 찾았다네

 

그대 앞에 내 홍조도 잠시였었지

이맘때 꺾여야하는 감자꽃처럼

동강나던 순정이 얼룩져 번져오네

 

감자꽃 필 무렵

그때의 마파람이 불어와 속삭이네

봄은 또 오고

빙하를 떠돌던 추억도 오고

감자꽃도 늘 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