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를 다시 편다.
읽으며 몇 편 골라
요즘 한창인 어성초꽃과 함께 올린다.
약모밀은 삼백초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어성초’라고도 하며,
줄기는 높이가 20~50cm 정도이고
털이 없으며 냄새가 난다.
땅속줄기는 옆으로 벋으면서 퍼지는데
꽃이 피기 전의 것은 이뇨제 및 구충제로 사용하고,
즙은 독충에 쏘이거나 물렸을 때 바른다.
민간에서는 화농이나 치질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 나도 사랑을 해 봤을까
누군가 지평선에 내 꽃길 드리웠을까
활짝 핀 마음이 눈으로 들어서고
엇장단 리듬처럼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와
기척 없는 천리향이 지천에 가득했을까
생각으로 제 몸 곱게 씻은 별처럼
외길로 접어든 내 생각도 나를 씻어
어둠 속에서 내가 반짝였을까
달무리에 안긴 보름달처럼
황홀한 표정이 내 눈가를 스쳤을까
더 오를 곳 없는 영마루에서
거침없이 더 오르고픈 헛발질같이
사랑은 법전 없는 눈 먼 무질서인데
시나브로 내 안에 갇혀 못 나간 사람
내가 쫓아내지 못한 사람, 있었을까
예고 없는 한낮의 소나기처럼
가득 드리워진 바람꽃 뚫고 나와
후드드득 미치도록 들길을 달렸을까
단풍잎에 찬서리 내리고
나이든 침묵이 바위처럼 깔린 늦가을 새벽
내 안에 사는 청년 하나가 묻는다
나도 사랑을 해 봤을까
♧ 자각
시가 고프다는 핑계로
밤낮없이 헤매는
내 벌건 눈알이 가엽다고
바다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떼어줄 마음 한 조각 없던
소라껍질 속으로
바람 한 줄기 담는다
부-우 웅
소라껍질이
바다로 떠날 차비를 한다
아, 나도 이제 집에 가야겠다
♧ 은발의 청춘
꽃이 지면 끝나는 줄 알았지
단풍잎 지고 나목이 되면
무서리를 떠나는 철새 될 줄 알았지
내 깊은 속살에 파릇파릇한 새싹들
향긋한 꽃눈 한가득 품어 안고
가만가만 옹크려 있는 줄 몰랐지
강 건널 때 됐는가 싶었지
몸 실린 강물 유유히 흐르고
바다는 아직 먼 길인 걸 몰랐지
세상이 없고 그대도 흔적 없는
외롭고 휑한 길에 들 줄 알았지
미래는 언제나 남아 있는 것
내 안에 그대 봄바람 살랑살랑
무더기로 활활 피어 있는 걸
꽃 지고 단풍 진 날 살짜기 알았지
♧ 장독
어렵사리 한 세상 겪고 가신 어머니
시름 한 가닥 남겨둔 곳 같은
낡은 장독
금 간 가슴에 물기가 배어나오네
어쩌다 살펴보면 텅 빈 항아리
세상 다 비워버린 어머니 속 같아
그래도 너무 허전할 것 같아
쓰지는 않지만 물만 가끔 채워두는
이별처럼 텅 빈 가슴이지만
추억은 한 귀퉁이도 허물지 않았는 듯
넓게 열린 온전한 몸으로
무한한 하늘 다 받아들이더니
등허리를 따라 기어오르던 담쟁이가
장독 속에 고개 들이밀어
속내를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미련 하나쯤 보았는가
새 섭 하나 더 윤지게* 내미는데
쉬지 않고 스며들던 세월이
오늘은 장독을 스치다가
메주를 담그던 어머니의 마른 손이 생각났는가
저리 서럽게 한참을 울고 있네
---
*윤지게 : 윤기가 있게.
♧ 나팔꽃
휘청거리는
홍등가 골목
색벽녘
울타리 밖으로 고개 내민
화장기 가득한 얼굴
시간 있으세요?
짧은 사랑 긴 추억
따, 따, 따!
따세요 나를
♧ 감자꽃 필 무렵
아무려면
누구에게나 순정 하나 없을라구
지상의 온기에 가슴 설레며
저마다의 순정을 꽃송이로 열어대는 법
점점 뜨거워지고 마는
몸을 다스리려, 늦봄이
산속으로 수행 길을 떠날 무렵
연분홍 순정 감자꽃 필 때
삼촌은 쌍심지 켜고
우악스런 냉혈 인간이 됐다네
순정은 무슨, 오로지
튼실한 밑알을 키워야지
날선 가위로 법도를 찾았다네
그대 앞에 내 홍조도 잠시였었지
이맘때 꺾여야하는 감자꽃처럼
동강나던 순정이 얼룩져 번져오네
감자꽃 필 무렵
그때의 마파람이 불어와 속삭이네
봄은 또 오고
빙하를 떠돌던 추억도 오고
감자꽃도 늘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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