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별로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더니만
하루 종일 추적거린다.
별로 하는 일은 없어도
신제주, 화북, 삼양으로 다녀오고
저녁에도 두 군데 일이 있었지만
한 군데는 전화로 처리하고
종친회에 가서 하루 행사를 마감한다.
그런데 화북 남문 정류소 앞에서
차에 탄 채로 사람을 기다리면서 보니
비가 오는데도 젖지 않고
화려한 무늬를 자랑하고 있는 부레옥잠이
다시 여름이 깊었음을 알려준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 부레옥잠을 보며 - 반기룡
저 부유하는 생을 보라
뜨거운 나라에서 건너 와
뿌리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여미었으리
체질에 맞지 않는 물을 먹고
심한 가슴앓이도 하였으리
늘 뜨거움만 동여맨 채 생존하다가
사계가 뚜렷한 환경으로 이식되어 온
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고충도 많았으리
온갖 어려움 무던히 딛고
우뚝 선 청초한 자태가 싱그럽구나
연못에 몸 담그고
조용히 인간 세상 바라보는 여유로움이여
늘 부레처럼 떠 있을 수 있는 당당함이여
연한 보랏빛 흐드러지게 뿌리며
언제나 깨끗한 물을 선호하는 너를
수질정화 홍보대사로 임명해야겠구나
♧ 부레옥잠 - 양전형
필시, 전생에 무슨 죄 있다
실날 같은 목숨 물 속에다 감추고
바람 몰아칠 때마다 생사가 서로 갈마드는
물 위에 유배된 형벌이다
덧없고 힘든 길
외로움만 푸르게 돋아나며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삶인 줄 알았다
알았다, 근데 오늘 아침 부레옥잠
어질증 나게 눈부신 꽃 활짝 내고 말았다
간밤 열대야를 뜬눈으로 지새우다
아무래도 못 참고 피어 버린 듯
울멍진 몸에 몰래몰래 가무리고 다녔던
가슴패기 터지며 나온 연보랏빛 그리움
한없이 불서러운 풀풀한 그리움
아 저, 환장할,
내 안에 바글대는 꽃망울을 건드리는,
♧ 도장골 이야기 - 김신용
-부레옥잠
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 그대 곁에 있으면 - 강희정
곁에 있으면 사랑스러운 사람
멀리 있어도 그리운 사람으로 남고싶다
그대 사랑할 땐 불나방처럼 혼을 태워서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그대의 그림자 되어 그대의 노을이 되고싶다
그대와 별리가 있을 때는 같은 하늘아래 사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소라 산 넘어 가는 구름이 비되어 내릴 때
연못에 있는 부레옥잠 위에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볼떄
나 그대인줄 알리라
사랑하여서 나는 행복 하였네라
♧ 부레옥잠 - 김종제
어제 나에게 전화를 건
여인이 부레옥잠이라는 것을
자주 지나가는 어느 집 문밖에
오래된 돌확이 있어서
풍상을 다 겪은 듯
살 떨어져 나가고 뼈 부서지고
쓸모없이 버려진
세상의 번뇌 다 품고 있는데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
장마 그친 날에
부레옥잠 한 뿌리 사다 넣었다
햇볕 쨍쨍한 날 하도 많아
축 늘어져 있기라도 하면
물 한 주전자 들고 나가
온몸에 시원하게 뿌려주었더니
어느 틈에 돌확을 확 덮었다
고마워라 부레옥잠
오늘 아침 자주색꽃 예쁜 꽃이
내가 사랑하는 그녀다
길 지나가는 누가 그 꽃 꺾어갈까
마음 놓지 못하였더니
문득 전화가 왔다
누구세요, 아무 말 없는 것이
부레옥잠 그녀다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길고 검은 머리 따서 올리고
푸른 비단 옷 입은 것이
필시 먼 조선에 내가 만나서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여인네다
♧ 부레옥잠을 심어두고 - 제산 김 대식
항아리에 부레옥잠을 심어두고
상한 마음 우울할 땐 꽃을 봅니다.
날마다 꽃망울을 바라보며
꽃이 피는 날을 기다립니다.
파랗게 꽃잎이 피어나던 날
꽃잎이 하늘처럼 열리던 날엔
하늘도 파랗게 내려와서는
항아리 물속으로 앉았습니다.
파랗게 피어나는 꽃잎을 보면
우울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해맑은 하늘빛 꽃잎처럼
어느새 꽃잎 같은 마음 됩니다.
우울하던 마음도 파란 꽃처럼
물속에 어리는 하늘빛처럼
푸르게 맑아진 마음 됩니다.
하늘처럼 맑아진 기분 됩니다.
♧ 문득 - 최남균
그대
빈 집에 등불이 켜있거든
내 그림자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한번쯤 지켜봐주세요
그대
창문에 바람소리 들리거든
내 보고 싶은 마음 문가에 머물고 있는지
살짝만 창문을 열어주세요
그대 바라보는 하늘에 구름도
그대가 느끼는 가을바람도
나를 대신하였음을
수면에 떠 있는 부레옥잠
문득
꽃이 부풀어 오르듯
당신 생각에 몰입하여 만들어낸
나의 간절한 개화(開花)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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