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8월 중순의 으아리 꽃

김창집 2014. 8. 18. 09:14

 

낮부터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를 듣고는

가까운 곳에 가서 얼른

숲을 걷고 오자는 계획을 세우고 찾은

제주 절물자연휴양림 옆

민오름 들머리길

벌써 이 으아리 꽃이 피어

카메라 가진 나를 붙잡는다.

 

그러고 보니

이제 8월도 하순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작년 같으면 폭염주의보와

열대야가 번갈아가며 한 달 내내 그칠 줄 몰랐는데

올해는 태풍이 번갈아 비를 몰아오며

장마 아닌 장마 날씨로

열대야가 별로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7월말 태백산과 청량산을 돌아올 때

도산서원을 들르고자 지나치던 안동댐에

물이 하나도 없어 놀랐는데,

한라산은 태풍이 지나가는 날 하루만도

1m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했다.

 

아니나 다를까

민오름에서 내려 사려니숲길에 이르렀을 때

후두두둑 비가 쏟아진다.

8월 중순 장맛비 같은 굵은 비가

   

 

 꽃의 몸 달 뜨다 - 이가을

 

   어긋나기 시작한 뼈들에 균열이 왔다 밤새 놓아주지 않는 통증 신열 가득한 이마 으아리꽃 수없이 까무러 졌다가 일어선다 먹장구름이 젖은 달의 얼굴을 가릴 때 꼭 그 때문에 통증이 덮쳐온 것은 아닐 텐데 몸 구석구석 통증의 흔적 역력하다 내 몸의 균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참을 수 없는 가려움들까지 붉은 점점이 발아하는 게 두견화 꽃씨 같아 어질 머리 내 몸에 새긴 꽃의 전문들 꽃의 말을 읽는다 길이 달랐던 입구 길을 잘못들은 뼈들 웅성거린다 소란스럽다 

 

 

♧ 여름비 - 김설하

 

머그잔 가득 뽑은 묽은 커피가 쿨렁대도록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내리자

투명 유리문을 메우고 허물며

빼곡하게 호러horror체를 쓰는 비의 낱말들

 

섬유 린스 냄새 폴폴 풍기는 커튼이 탐났을까

새로 장만한 인견 이불에 제멋대로 뒹굴고 싶은 걸까

낡은 벽지에 낙서라도 해볼 심산일까

그윽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감돌고

창가에 기대어 비의 언어와 조율하는 한나절

 

필사적으로 담벼락을 기어오르던

담쟁이 푸른 잎맥이 부르르 떨자

조롱조롱 달렸던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져서

물 비늘 일으키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길

봉숭아꽃 몇 잎도 동동 떠간다

 

우산 없이 뛰어가는 아이의 종아리가 찰방대고

제 발보다 큰 슬리퍼가 첨벙대는 골목

종일토록 비의 수다는 끊일 줄 모르고

정강이 당기도록 서성이며 엿듣는 하루

   

 

♧ 여름비 - 오순화

 

물안개 젖어드는 거리에

머언 기억의 편린들이 빗방울되어 내린다

 

아무말 없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빗방울 수만큼

하늘만큼 사랑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던 그대 향한 마음도

마른입술에 눈물만 고였었다

 

사랑해서 이별했다는 거짓말도

이별후에 사랑인줄 알았다는 후회도

때로는 알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

비오는 창가

비내리는 저녁

비를 마시는 바다

바다는 비를 마셔도 마셔도 젖지 않고

슬픈 눈물꽃으로 피어나는 물안개만 가득해라

 

바다 건너에

채마밭 들녘에도

추적이는 거리에도

불타는 정렬

사랑에 울다 웃다 사라져간 내 젊은 날

사랑해서 이별했다는 말도

이별후에 사랑인줄 알았다는 알수없는 얘기가

여름비 되어 내린다.

 

그때는 왜 가지말라는 말을 못했을까  

 

 

♧ 여름비 같은 너 - 架痕 김철현

 

지나치는 길손처럼 사랑도 그리움도 없이

얇은 옷깃 적시고 해 비칠 새라

짧은 꼬리 거두며 달아나는 여름비 같은 너

 

적셔진 마음만 애꿎은 애달픔에

뒤척여 잠 못 이루지만 갈라진 대지위로

숨어들듯 사라지는 너는 언제나 여름비

 

쉽게 왔다가 제 멋대로 사라지는

변덕스러운 너이지만 내 몸속에 들어와 앉아

떠나지 않는 익숙한 냄새가 아직도 너는 여름비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남은 열정 쏟아 붓더니

수리도 못가서 돌아 설 것을 다 말리우지도 못한 몸을

재차 눈물로 얼룩지게 하는 너는 여전한 여름비

  

 

 8월 장마 - 오보영

 

너한테만 내리는 게 아니란다

 

너만 위해 내리는 건 더더욱 아니란다

 

아직 날 기다리는

나무들 있단다

반겨하며 맞이해줄

들꽃이 있단다

 

조금은 네게

 

불편할지 몰라도

 

너한텐 다소

 

넘쳐날지 몰라도  

 

 

♧ 8월에는 - 이향아

 

8월에는 울타리를 헐어버리고

살진 여자처럼,

8월에는 앞가슴을 풀어제치고

헤픈 여자처럼,

정붙이고 살자고 한다.

짐꾸리고 떠나자고 한다.

 

떠날꺼나 나도

휘파람 풀잎같은 창공에 떠서

흙가루 반짝이는 신작로 지나

종일 미쳐 울먹이는 바다를 걸어

화려한 취기로

나도 갈꺼나

 

쑥대머리 헝클어진 정수리에서

해는 빗금을 쏟으며 떨어지고

열매들은 저마다 씨를 품고서

그래도 어떠랴 살부비며 큰다.

 

그럴꺼나 나도

초록 스카프 흔들며

목 매는 바람

세상이 떠나가게 소문 내고서

제 바닥에 굴을 파고

침몰할꺼나,

아, 숫제 없어져 버릴꺼나

나도, 8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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