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미나리도 꽃이 핀다

김창집 2014. 8. 26. 07:43

 

물양귀비 왁자지껄 피어난 조그만 연못

한쪽 모퉁이에

돌미나리 뽀얗게 꽃을 피웠다.

 

간에 좋다하여

술꾼들이 좋아하는 저 돌미나리.

한 줄기 빼어 돌돌 말아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

상큼한 향기가 입안 한가득.

 

저 녀석이 뭐가 좋은지 몰라도

풍뎅이 같은 묘한 녀석들이 달라붙었다. 

 

 

♧ 미나리꽝 - 고경숙

 

별은 떴는가

어둠의 척추를 따라 밤의 몰이에 나서는 시각이면

식혜밥처럼 허연 우리는 어둠의 도화선이 된다

이순신, 변강쇠, 조용필....

유예된 명찰이 열려진 배꼽들의 뿌리를

집요하게 긁적이는 동안,

미나리대처럼 허리 약한 청춘들과

선 채로 잠들어 곧잘 넘어지는 맥주병을 비집고

부황 든 조명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겠다며

어제는 쓰러져도 좋았다

어쩌면, 더러운 미나리꽝에

역류하는 위산을 밤새워 게워내고

딱딱해진 간덩이 조금씩 뜯어내 버리는 것도

거룩한 창조일지 모른다

잊으라, 별이 지기 전에 허리를 펴고

울컥 올라오는 꽃대궁 속에서

허옇게 꽃물 익어갈 서러운 내일이여,

어둠은 약한 자들의 특권이거늘

꽝, 꽝 무너지고 희미하게 일어나리.

   

 

♧ 미나리 먹는 법 - 강세화

 

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소임은 각각이란다.

참말이나 거짓말이나 모두 힘들어

물웅덩이에 예사로 빠지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지키고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을 알아야 한다.

 

길 따라 다니다가 떠맡은 것이라도

언양 청정미나리는 생으로 씹어야 맛이다.

누가 어떤 시늉을 하더라도

내 맘이야 기울지 않는 내 맘이야

나는 이것을 그냥 막장에 먹을 것이다.

 

데치고 무치기는 이녁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물 끓는 냄비를 지키며

숨소리도 못내는 사람들이면 더욱

미나리를 먹는 법조차

제 각각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 미나리나물과 장모님 - 김동욱

 

 장모님을 뵐 때면 깔끔한 산소같은 미나리 냄새가 난다 만산에 진달래며 철쭉 피어오르던 어느 날 처음 인사차 처가댁을 갔을 때 장모님은 미나리 한 움큼으로 새콤달콤한 나물을 만드시어 일그러진 밥상에 올리시고는 치맛자락에 손을 닦으시며 아여 먹어 보랑께 맛이 고만이제! 아내 될 아가씨는 싱금생금 눈짓으로 어머니를 보았지만 나는 단숨에 밥 한 공기를 해 치우고는 마을 앞 미나리 밭으로 나가 오랜만에 청청한 숨을 들이마셨다

 십 년이 훌쩍 넘어 아내와 살아가며 땀내음 세상 타령에 찌들고 답답하여 가슴 턱턱 막혀 올 때면 장모님의 미나리나물 얻어먹으러 달려가고 싶지만 이젠 미나리도 없어지고 말았다 언제 부턴가 동구밖 훤히 차고 난 신작로가 야금야금 미나리 밭을 씹어 먹은 후 튼튼한 콘크리트가 되어 수년 만에 달려간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 돌미나리의 푸른 힘이 - 이솔

 

아버지는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돌미나리를 뜯어내고 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논두렁에서

돌미나리 어린잎을 뜯어내고 있다

아버지의 눈에 유난히 크게 보이는

돌미나리 어린잎이

살얼음 밑에서 뿌리까지 씻긴 채로

더욱 싱싱해 보인다

푸른 돌미나리가 아들의 몸 속에서

녹색의 생기가 되어,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난다, 다시 일어난다

아버지가 살려낸다

무릎뼈가 굳어서 펼 수 없어도

손이 곱고 아려와도

어린 돌미나리잎을 뜯어내고 있다

아버지는 울고 있는 줄도 모른다

건지산을 넘는 석양이 등줄기에

부드럽게 머물러 있다

   

 

♧ 미나리전 부치는 날 - 지철승

 

별미가 따로 있나

 

때맞게 내린 여우비 맞으며

담장 아래 애호박 하나

따서

밀가루 반죽에다

미나리를 집어 넣고

한 국자 올려 지지면

우리내 사랑보다 노릇하다, 익다

타지 않으려 속 뒤집어 보이는

그 맛에

손가락 데이는 줄 모르고

입에 넣기 바빠서

밖의 어둠조차 깨닫지 못한다

 

미나리전 구수한 내음

빗속을 유유히 지나

산등성이 하나를

꼴딱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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