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뒤처리는 그리 힘든 일은 없지만
그릇들을 정리하는 일이나 손님을 맞기 위해 집안을
치워 놓았던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일에 손이 많이 간다.
아버님 제사가 한여름이어서
더워서 여러 사람이 고생을 하는데
올해는 비가 계속 내려서 준비하며 문을 꼭꼭 닫아야 해서
집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그런 때문인지 음식이 상할까봐 거정했다.
물론 음식 준비하는 일이야
동서끼리 모여 담소하며 오전에 마쳐지지만
심부름할 아이들 하나도 없이 혼자 준비를 하고 정리를 하는
그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지도 거의 40년이 되어간다.
결혼 초기를 넘기면서부터
설과 여러 제사들을 어머님과 나누어 치르다
어머님이 연로하여 다 혼자 맡았다가
열 살 넘어 차이가 나는 동생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두 차례씩 나눠 주고
지제를 해서 이제 설과 아버님 제사 두 차례뿐이어도
그 많은 걸 척척 치러내던 집사람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나이 든 데다 직장이 있고
심부름 해줄 아이들이 이번에 곁에 하나도 없고 보니
나까지 비상이다.
제사를 핑계로 1년에 한 번
모처럼 가까운 친척과 형제들을 집안에 초대해
아버님을 회억(回憶)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일,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나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참마는 맛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덩굴풀로
뿌리는 긴 원뿔꼴의 살진 덩이로 길이가 2m에 달하고,
줄기는 가늘고 길게 덩굴져 뻗는다.
잎은 끝이 뾰족한 달걀꼴이고 마주나는데,
여름에 흰 꽃이 수상 꽃차례로 달리며
덩이뿌리는 약용하거나 식용한다.
함남과 중부 이남 및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요즘 들에서 많이 보이는 마꽃 사진과 함께
나이와 함께 시 속에 유난히 어머님이 드러나고
인생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 시작하는
참마 같은 시인 양전형의 시를 옮겨본다.
♧ 8월
덥다
가랑이 까발린 채 벌렁 누워
갖갖 오욕칠정 다 받아내던 길들이
불햇살에 뻘뻘 쫓긴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재게 달아난다
나만 두고 씨발, 좆같다
일찍 까진 길섶 코스모스도
하늘 향해 손살짓 한다
뜨겁다, 아무래도 이건
야반에 바람으로 가출한 어느 실성한 년
치맛자락 속에 숨기고 다니는 황무지 같다
이제는 썩어가는 내 오장육부 속에
언젠가 이글대던 철없는 장미꽃 같다
아니다 아니다
죽은 내 어미의 콩밭에서
자식들 생각으로 손이 싸던 살아생전 콩밭에서
목숨줄을 확확 다그치던 그 땡볕이다
내 어미를 데이게 하던 지랄이다
에이 씨팔, 눈물 난다
♧ 만남과 이별의 공식
만남은 ‘플러스’요
이별은 ‘마이너스’다
만남에 이별을 더하면 ‘제로’요
만남에 이별을 빼면 ‘둘’이다
그대여,
너 하나 나 하나
어디서든 늘 둘이어서
우리의 만남에 이별은 더하지 말자고
우리의 만남에 이별은 영원히 빼자고
했는데
만남과 이별은 서로 닿을 수 밖에 없구나
♧ 책과 여자
드믄 일로
서점에서 시집 한 권 샀다
내 집에 감금되어
각시처럼
나만 기다릴 운명의 책이다
생각해보니
도서관에 있는 책은 행복하다
이 사람 저 사람
수요자에 한 번씩 다 빌려주며
수많은 손가락과 타액에 몸 맡겨
한 겹씩 벗겨지는
회전율과 존재가치가 높을 책
어느 홍등가 유리가게
나란히 진열된 여자들이 떠오른다
그 몸
목차만 읽었는지
몇 페이지 혹은 행간도 다 읽었는지 모르는 사내가
바지춤 추스르고 사라지면
태연하게 다시 진열되는 여자들
책과 여자는 비슷하다
행간은 물론 영혼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있는 책은 행복하다?
♧ 돌팔매질
냇물에 무심코 돌을 던졌다
물이 깜짝 놀라더니
수차레 몸을 떨어댄다
돌을 맞고 많이 아픈모양이다
문득
돌을 물에 던지면 저승에 가서
눈썹으로 그 돌 도로 건져놔야 한다는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큰일이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돌 무심코 던져
기억도 없는 어느 물속에 혹은
어느 누구의 가슴에 저렇게
아픈 파문이 일게 하였는지
어떻게 다 건져내야 할지
♧ 길에서 늙기
자정 넘어 한 시
밤고양이처럼 어두운 곳 헤매다
일없이 탑동 방파제에 오른다
추억의 모퉁이마다 있는 소중한 것들 하나씩
가뭇한 물결에 풀어 철썩이게 하고 나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월의 덧없음을 조악거리는
가로수 그늘 따라
무근성 서사라 오라벌 지나
내 집이 기다리는 오일남로를 향하여
어슷어슷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 속으로 들어가본다
초라한 나의 소년이
아득한 옛날의 이 길들을 걷고 있는게 보이고
늘 앞서 걷고 있는 나의 청년도 보인다
불러 세울 수 없는 그들을 따라
비척이며 걷는다
참 많이도 걸어 다녔네
내 청춘의 절반쯤은 길에서 늙는다
♧ 섬
아내와 다퉜다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아무리 헤매어도
닿는 곳이 바닷가다
일렁이는 탑동 바다 앞에 섰다
오십여 년
바다와 대면하고 살았지만
바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었는데
마침내 오늘
바다의 말을 알아들었다
노여운 날에도 잔잔한 날에도
이곳에서 가만가만 살라 한다
내가 곧 섬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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