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날인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우리는 선물을 사야 한다는 구실로
울릉도 호박엿공장으로 차를 돌리도록 했다.
공장 입구
이렇게 많은 호박들이 쌓여 있어서
단번에 엿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온 섬에서 생산된 호박들을
수매를 통해 전부 거둬들였다고 한다.
호박엿도 시식하고
호박잼, 호박조청도 맛을 보았는데
상품이 많이 계발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울릉도에는 농협 엿 가공공장을 비롯해
엿공장이 5군데나 있었다.
♧ 늙은 호박 - 이진규
사람이 떠난
텅 빈집 지붕 위에
달 하나 얹혀 있네
홀 지낸 늙은 할미 떠올리며
일찌감치 낮의 해를 밀어내고
하늘 무게에 푹푹 내려앉는 묵은 지붕 위에서
푸른 달이 차 오를수록 부풀어오르는 호박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며
팽팽히 당겨 채우던 할미 한숨소리가
지 속에서 새까맣게 타드는 줄도 모르고
할미랑 보내던 시간이 그리워
이 밤에도 달빛 아래 앉아
손 끝 마디마디 말아 쥔 할미 애타던 이야기들
지붕 위에 풀어놓으면
아직도 어디선가 톡하고 생생한 새론 기억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을 이어붙여 굳이 꽃으로 피우기에는
무서리가 내리는 갈 날엔 더더우기 슬픈 기억들만 떠오르더라
돌아서던 할미 등뒤로 희뜩희뜩 걸어서 가던 아들내외
北邙북망에 들菊국 향이 번져들 때까지는 걸음도 하지 안았었지
할미 얼굴에 드리운 슬픔 속에 늘 살던 할배의 근심이
그때부터 검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심히 바람이 잦던 날에는 해소기침 들썩이는 바람에
지붕 위에서 달을 보던 나는 다시는 달을 볼 수 없을 일이 생길 뻔했지
텅 빈집 지붕 위에
남모르게 옛 주인 그리워 부풀어 오른 호박
그리움에 지쳐 늙어 가는 갈 날밤
문딩이 같은 서울 어느 골목을 파고 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아들내외는
전원주택으로 꾸밀 무수히 많은 별 같은 생각의 꼬리만 물고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늙은 호박은 아직도 달만 바라만 보고
♧ 늙은 호박 속을 가르며 - 최영희
딸아이 해산 부종을 빼려
늙은 호박을 샀다
꼭지를 위로 두고
오분의 사쯤에 칼을 댔다
쩍-,
가르고 나니
벌건 피가 뭉쿨!
솟아오른다, 뜨겁다
한 움큼
물컹한
얽히고설킨 살점을 뜯어내며
어머니 그 속을 보았다
사리처럼
옹이 박힌
여자의
사랑 법
어머니…
늙은 어머니의 그 속을 보았다.
♧ 옛 호박은 지금 - 양전형
올망졸망 했었지
가는귀 먼 뒷집 할머니
뭐라구 뭐라구 할 때마다
하나 매달리고
둘 매달리고
가난만큼 매달려
울타리 한 번 건너가지 못하더니
싸락눈 내리는 날
씨알 털며 앉은 흙 묻은 검정 고무신
죽 끓는 소리 밉더니
아궁이 속 눈밝힌 떼가난
잉걸불로 뜨겁더니
지금은 울타리 밖
덩그렁도 하여라
세상 건너간 뒷집 할머니
이제 귀 트인 듯
♧ 늙은 호박 - 김지헌
늙은 호박을 보면 그 여자 생각난다
해마다 연년생으로 쑤욱 쑥 뽑아내느라
뱃가죽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여자
햇덩이 같은 아이를, 보름달 뜰 때마다
달덩이 같은 아이를 쑤욱 쑥 잘도 낳던 여자
해산의 붉은 비명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자식들은 뿔뿔이 집을 떠나가고
평생의 노동 끝에 남은 거라곤 흐물흐물 해진
내장과 거죽만 남은
사내 몸뚱이 하나뿐인데
마지막 생산을 끝내고 누군가 그녀의
달디단 속을 먹어 치워 줄 때까지
벌렁 누워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다
♧ 호박 - 최범영
오입쟁이 젊은 처자 올라타듯
한여름 담장 기어올라앉아
멀리서 날아온 벌에 붙어먹고
얼굴 두꺼운 아이를 낳으니
우린 호박이라 부른다
모두 의사 변호사
아니면 연예인한다 하니
낯 두꺼운 호박들, 그들이
이 나라를 떠받칠 수 있나
누가 뭐라하든
담너머고 맨 들판이고
기름진 땅의 상표를 받으려
또 원정출산하니
나는 호박 2세라 부르지
아무리 보아도
쇠가죽 낯짝의
호박을 키워내려
눈깔에 쌍심지 켠 세월이다
♧ 천재지변 - 박태언
-울릉도에 갇혀서
마음 떠난 사내를 붙잡고
파도와 태풍을 달래는 선녀 바위야
내 몸 여기 이렇게 두고
갈매기 날개에 홀린 마음
희고 고운 네 깃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
사내를 잊자 잊자하면서도
붙드는 네 애절한 마음
어선 가득 품어 안고 비눈물을 흘리는구나
태풍이 야단을 쳐도
전파타고 가는 마음은 벌써 육지로 가
살림을 하고 있단다
파도야 설치지 마라
태풍아 호령치지 마라
모든 것은 순리대로 머물고
그 순간을 즐겨 사랑하는 것으로 족하다
안달을 한다고 가던 님이 돌아 올까
떠난 기차가 되돌아 올까
다시 오는 정을 반기고
새로운 정겨움으로 다시 품는 울릉도야
육지에서 오는 뱃머리 흙 내움 가득하고 가는님
명이지나물에 호박엿 부지깽이나물
향기 가득 품어간다
그러나
오늘도 성우모텔에 몸이 묶였다
212호 누워서 빗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창문을 잡고 흔들고 있다
울릉 울릉 우르릉 꽝~~~~울릉도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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