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연미 시조와 덜꿩나무

김창집 2014. 11. 5. 00:09

 

지난 일요일

머체 숲길에서 만난 덜꿩나무

 

계절을 일깨우는 듯

빨간 열매 달고 있다.

 

김연미 시조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의

시조 몇 편 골라 같이 싣는다.

   

 

♧ 아침 여섯 시

 

밤새 드리웠던 기다림이 흔들렸다

 

스물두 살 처녀의 젖봉오리 저 오름

 

꿈처럼 커튼 사이로 실루엣을 그리고

 

첫 경험이 붉은 건 수줍음 때문일까

 

천천히 얼굴 드는 이마가 눈이 부셔

 

새들은 하루를 물고 서쪽으로 떠난다

   

 

♧ 가뭄

 

하늘도 기어이 화를 내는 것일까

사대강 물줄기 권력 안에 갇히고

도막난 울음소리도 그쳐버린 이 땅에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다. 모질게 다문 입술

바득바득 돌아서서 바닥까지 내려가면

시커먼 치부들까지 부끄럼 없이 드러나고

 

한 방울 단비 같았던 양심들도 말라버린

낯 뜨거운 이 여름을 또박또박 증언하라

거북등 갑골문자가 현대사를 다시 쓴다.

   

 

♧ 산의 침묵

 

하늘도 나무도 길도 말끝을 흐리는 오후

순백의 표정을 띤 눈발도 굵어지면

정체된 도로의 맥박

붉은 신호를 보낸다

 

절대로 꺾이지 마라 깜빡깜빡 깜빡깜빡

뒤틀린 언어에 묻혀 색깔을 놓치고도

저 홀로 당당하거라

오래된 나무들아

 

길조차 표정을 지운 일자형의 세상에서

이 겨울 산의 침묵 내안에서 깊어지고

진실의 중심을 찾는

전조등이 바쁘다. 

 

 

♧ 봄 봄

 

장편소설 줄거리 잡고

겨우내 고심하던

 

벚나무 가지가지

에피소드 피어난다.

 

하얗게

명작 한 편이

 

완성되는

이 봄날. 

 

 

♧ 벽을 깨는 봄

 

봄이 쓰는 에세이

초고를 잡을 무렵

콘크리트 벽을 타는 실금 하나 보인다

 

금이 간

시간을 따라

슬픔들도 고이고

 

건조체 외길 따라 얼음살도 박혔을

깍지 낀 고집들이

만연체로 풀어질 때

 

내 안의

작은 길 하나

벽을 깨고 있었다.

   

 

♧ 노을 2

 

네로의 즉흥시마다

아우성이 검붉다

 

삭제된 소리 너머

불에 타는 저 도시

 

또다시

눈을 감는다

 

페이드아웃(fade-out)

 

암전(暗轉)  

 

 

♧ 겨울비

 

화살을 맞고 나서야

과녁인 줄 알았어요

 

오래된 연못 위로

빗방울 떨어진다

 

양심의

정곡을 찌르는

 

저 차가운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