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상수리나무는 12월이 되어서도
그 잎을 다 떨구지 못하고 있다.
하늬바람을 피해 있는 것들은
아직도 퍼렇다.
하긴 사람도 마찬가지일 터,
아직 겨울을 맞을 준비가 덜 된 사람은
이 상수리나무 잎사귀들처럼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호된 서리를 맞고서야
그 손을 놓으리라.
오늘부터는 날씨가 매우 춥다고 하니,
12월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그래
벌써 12월이 된 것이다.
♧ 12월의 기도 -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재 얼굴에 책임 질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 12월엔 - 이희숙
그리움이 얼마나 짙어
바다는 저토록 잉잉대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깊어
온 몸으로 뒤척이는지 묻지 마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사연들로 넘쳐나는 12월엔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어쩌다보니 사랑이더라는
낙서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되는 12월엔
♧ 12월의 詩 - 최홍윤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마워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보니
긴긴 밤에 회한도 깊네
나목은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늘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치네
세월 헤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백
세월이여, 나에게
한결같은 삶이게 해 주소서!
♧ 12월의 연가 - 오순화
추억이 고운 계절
아름드리 흐벅지던 단풍잎도
제 품에 안겼다
가을은 성큼성큼 걷다
앞서오는 초겨울 찬바람에
손사래 치며 뛰어간다
옛사랑 인사만 했는데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못다 부른 노래도 이제 그만
새하얀 첫눈이
소복소복 보듬어 주리라
12월에는
사랑과 욕망, 미움
품었던 꿈과 소망까지도
모두 사랑이란 이름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채울 수 있기에….
♧ 12월에 - 이지영
엘리뇨의 한파가 춤을 추고
도미노의 부도파장에
심장이 언다
사람들은 제각기
세기말의 어두워지는 모퉁이를
찌그러진 얼굴로 걷고 있고
외쳐대는 확성기에
선거공약 플래카드가 전선줄에 걸렸다
춥게 만드는 것들,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불사조 같은 삶을 살려고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
차가운 저녁바람이 되었다
울분의 독화살을 빼고 깊게 잠들어
이른 봄을 만나고 싶다
황량할수록 따뜻함을 찾는다
12월엔 따뜻한 친구가 그립다
추억 속의 그대와 함께하고 싶다
눈이 올 것 같다
함박눈이 내리는 포근함
그 따뜻함 속엔 그대가 있어…….
♧ 12월의 무언극(無言劇) - 김종제
새들이 숲을 버리고
일제히 비상한다
나무들도 거친 옷을 벗어버리고
뒤를 좇아 비상한다
깃든 자리를 흩으리지 않은 채
둥지속에 꽃 한 송이씩 물고
하늘의 어딘가로 푸드득 날아간다
몇몇 꽃들은 이미
세상의 절벽 끝까지 기어 올라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고
몇몇 나무의 가지들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발 디딘 곳으로부터
나를 풀쩍 뛰어 날아 오르는 것들
나무에게 있어서 푸르렀던 것들
꽃에게 있어서
희거나 검거나 붉거나 노랗거나
숲에게 있어서
날개를 펼쳐 보이며 날아가는 것들
세상이라는 무대에
몸을 펼쳐 보이는 짓이다
말 없이 행하는 저 고요한 면벽의
저것들을 소리 없는 언어라고 하자
저것들을 살아있는 말이라고 하자
이제 봄이 될 때까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두텁게 얼어붙은 언어가, 말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그 위로 고대에 사라진 상형문자들이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니
12월의
저 몸으로 쓰여진 글을 해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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