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찬 비바람에
이 녀석들 어찌 되었을까?
너무나 따뜻한 11월 날씨여서
제주 전역 중산간 오름 정상부에
보나마나 이렇게 난만히들 피었을 텐데….
이것은 지난 토요일(29일)
고근산 능선에 그리도 많이
곱게도 피어 있어 찍어 둔 것인데….
하수상한 세월이어서
사람이든 식물이든 그 어떤 것들이든
융통성 없이 고정한 놈들은 호되게 당하는 세상이어서
그런 세상이어서….
♧ 철없이 흐르는 사랑 - (宵火)고은영
잔잔한 오후가 눈뜨고 있다
철없는 사랑이면 어떠랴
그래도 늘 미안하기만 하여
염치없이 질겨지는 뻔뻔함조차
애틋한 사랑임을 가슴에 간직하고 흐르는 바람
맑은 이슬처럼 흐르는 피아노곡에 취하면
시들어 가던 선한 욕구(欲求) 들이
하나 둘 깨어나는 미세한 전율에
어지러움 가득한 시간에도
그대는 가슴에 채 곡이 쌓여가는 일이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일이다
적막하게 흔들리는 일이다
♧ 겨울에게 - 임영준
뼈저리게 느낀다
너무 나무라지 마라
모퉁이에 밀어 넣고
바늘로 찔러댄다고
껍질이 다 벗겨지고
허욕이 날아가겠나
철없이 쌓았던 미몽도
짙어진 입김에 실려
순식간에 사라지겠나
이리 비난치 않아도
언젠가는 모든 게 다
끝나버릴 걸 아는데
삭풍으로 저미고
가슴을 파내지 않아도
익히 알만큼 잘 아는데
자꾸만 몰아세운다고
있던 게 없던 게 되나
♧ 바람에게 꽃이 - 오보영
어찌됐던 넌
네게 필요해서 내게로 온 거고
잠시나마 난
너로 인해 적적함을 달랬으니
그것으로 족하단다
어차피 넌
진득하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못하고
어느 누구하고도 진솔하게
맘 한번 제대로 붙이지도 못하는
철없이 넘나드는 뜨내기라는 걸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네가 달라졌다고
네가 떠나갔다고
내 맘 그리 상하지도
허전하지도 않는다는 걸
좀 알고 오가면 좋겠구나
♧ 겨울 개나리 - 이계윤
무등산 바람 재에
철 그른 철없는 개나리
남도(南島)가 어떠냐 물으니
노란 살얼음 어린 미소로
지금 이 자리가 그 섬이라고
지켜야할 생명의 터, 떠날 수 없다고
폭설 내리는 날에도
가지 끝에 얼붙어서
처절하게 호흡을 다듬어 가는
진솔한 生의 웅변
온몸과 정성을 다 하여
피어린 영생의 길을 묵묵히 쫓아
하늘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고
게으르지 않게 순응해야 한다고
♧ 겨울 등반 1 - 강계순
풀뿌리에 고여 있는 몇 모금의 이슬
눈 먼 희망으로 허기를 달래고
빛나는 갈기 흔들어 바람을 가르면서
꿈의 두께만큼 깊이 굳어 온 살
철없이 성 내고 울먹이던 피 유순히 가라앉고
날개 떨어진 풍향계 하나 허섭쓰레기로 남아 있는
배낭 등에 걸치고
뒤돌아보면 아득히
등불 켜 놓고 도란거리는 집들
어릴 적 귀 익은 노래도 몇 마디
들리는 듯하다.
청청한 들판을 달려온 바람도
허리 굽히는 이 골짜기
등 넓은 바위들 사이로 설핏설핏 비추는 햇살
살 데이지 않을 만큼 따스하여
한 생애의 끝에 이르는 길 말갛게 밝히고 있으니
혼자 숨어서 고이는 그리움 때때로 열어보던
녹슨 은빛 열쇠
무겁게 지고 다니던 곡괭이와
허공 휘젓던 잠자리채 팽팽한 방패 모두
이쯤에서 벗어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옷 갈아입는다.
아는 별자리 이름 한 개씩 내려놓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몇 개의 등승이 향해
빈손으로 떠나는 겨울 등반.
♧ 예래바다에 묻다 - 김사인
눈감고 내 눈 속 희디흰 바다를 보네 설핏 붉어진 낯이 자랑이었나 그대 알몸은 그리워 이가 갈리더라 하면 믿어는 줄거나 부질 없이 부질 없이 손톱만 물어뜯었다 하면 믿어는 줄거나 내 늙음 수줍어 아닌 듯 지나가며 곁눈으로만 그댈 보느니 어쩔거나 그대 철없어 내 입안엔 신 살구 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서리치랴 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 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 상한 짐승처럼 나 속울음 삼켜 병만 깊어지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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