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스승의 날 섬초롱꽃 피었네

김창집 2015. 5. 15. 00:28

 

♧ 섬초롱꽃 - 목필균

 

끝없는 푸른 물결

투명한 하늘

울릉도가 고향인 섬초롱꽃

도심지 꽃밭에 피어났다.

 

하얗게 울리는 종소리

말없음표가 도막지며

고주파로 퍼진다.

 

하나아,

두울,

세엣,

 

오늘 앞에 어제가

오늘 뒤에 내일이

조롱조롱 매달린다.

 

 

 

♧ 초롱꽃이 피었네 - 양영길

 

지난 늦여름 친구네 집 뜨락에 있던 섬초롱꽃

꽃을 다 피워내고 지쳐 앉은 섬초롱꽃

한 포기만 달라고

딱 한 포기만 주라고 조르고 졸라도

말려버릴 거라고

죽어버릴 거라고

두 손을 내젓는 것을

더위에 지친 몸

양심을 안주 삼아 한 잔 술로 달래다가

술김에 슬쩍 뽑아다 심어놓은 섬초롱꽃

아하~ 살아 있었네 꽃이 피었네

오월의 이른 아침에 세 송이나 피었네

접어두었던 양심이 꽃으로 피었네

찰랑찰랑 종소리 울려오네

졸고 있는 양심을 깨우려는가

내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려는가

돌담에 앉은 텃새 한 마리

내 눈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리네

   

 

♧ 감포항에서 - 천봉현

 

아직 만선의 깃발 보이지 않았다

섬초롱꽃 흔든 해풍 선창 밖 떠돌고

등대 끝 갈매기 감아 올린 하늘

구름 몇 점 날리고 있었다

알전구 희미한 어물전 밖

손 흔들어 떠난 그림자 생각하며

나는 노을 속 그때를

타오르는 출렁임 앞에 내려놓았다

쓸쓸하다는 것은

피로한 마음 철썩이는

물결의 홰 맞으며

섬처럼 묵묵히 맞장구 쳐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 알고 있었지만

먼 기억 실은 뱃고동 소리와

젖은 눈의 기다림 속에서

해질녘 포구

비린 그림자 멸치 어군처럼 모여 들면

나는 또 서투른 어부 되어

만선의 추억 싣고 닻을 내리고 있었다

낮달 지난 얼굴 그물질하는 바다

시름에 겨운 사나이를

오래 붙박아 세워 두고 있었다

 

 

 

♧ 섬초롱 꽃네야 - 박이현

 

 

길을 물어

예까지 왔으니

눈이라도 한 번 맞춰주렴

적멸에까지 좆아온

끈질긴 그리움이다

 

잊고 지내려

무던히도 애썼는데

나도 모른다

왜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

 

널 보고 있으면

지금 막 돌고 있는

분주한 이 핏줄

 

이토록 사랑이 일어나는 봄 밤

결이 환한 네 꽃초롱 속에

나를 가두어 다오

 

 

♧ 都心에서 만난 섬초롱 - 김승기

 

 

뼈저린 사연이 있었겠지

누구의 손에 이끌렸는지 몰라도

꼭 정든 땅을 떠나야만 했는지

서울의 길모퉁이 콘크리트 담장 옆에서

땡볕 온몸으로 받으며

대낮에도 등을 켜야 하는 어둠을 품어 안고

억지웃음을 피워야 했는지

 

수없이 날아와 박히는 낯선 시선들 속에

한 번쯤은 정다운 눈길이 있었을까

어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화안히 불을 밝히고 있을까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

밤이 깊은데,

너를 바라보는 내 가슴이 따뜻해지네

 

왜 이리도 그리운 걸까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지만,

돌아가도 어제의 고향이 아니련만,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미련이 남은 걸까

 

그래, 살아가는데 어찌 이곳저곳을 가리겠느냐

메마른 땅도 정 붙이고 살면

그게 고향이 되는 것을

내 집이 되는 것을

 

都心의 아스팔트길

콘크리트 담장 옆에 터 잡은

섬초롱

쏟아지는 불볕햇살 아랑곳없이

오늘도 활기차게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