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초롱꽃 - 목필균
끝없는 푸른 물결
투명한 하늘
울릉도가 고향인 섬초롱꽃
도심지 꽃밭에 피어났다.
하얗게 울리는 종소리
말없음표가 도막지며
고주파로 퍼진다.
하나아,
두울,
세엣,
오늘 앞에 어제가
오늘 뒤에 내일이
조롱조롱 매달린다.
♧ 초롱꽃이 피었네 - 양영길
지난 늦여름 친구네 집 뜨락에 있던 섬초롱꽃
꽃을 다 피워내고 지쳐 앉은 섬초롱꽃
한 포기만 달라고
딱 한 포기만 주라고 조르고 졸라도
말려버릴 거라고
죽어버릴 거라고
두 손을 내젓는 것을
더위에 지친 몸
양심을 안주 삼아 한 잔 술로 달래다가
술김에 슬쩍 뽑아다 심어놓은 섬초롱꽃
아하~ 살아 있었네 꽃이 피었네
오월의 이른 아침에 세 송이나 피었네
접어두었던 양심이 꽃으로 피었네
찰랑찰랑 종소리 울려오네
졸고 있는 양심을 깨우려는가
내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려는가
돌담에 앉은 텃새 한 마리
내 눈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리네
♧ 감포항에서 - 천봉현
아직 만선의 깃발 보이지 않았다
섬초롱꽃 흔든 해풍 선창 밖 떠돌고
등대 끝 갈매기 감아 올린 하늘
구름 몇 점 날리고 있었다
알전구 희미한 어물전 밖
손 흔들어 떠난 그림자 생각하며
나는 노을 속 그때를
타오르는 출렁임 앞에 내려놓았다
쓸쓸하다는 것은
피로한 마음 철썩이는
물결의 홰 맞으며
섬처럼 묵묵히 맞장구 쳐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 알고 있었지만
먼 기억 실은 뱃고동 소리와
젖은 눈의 기다림 속에서
해질녘 포구
비린 그림자 멸치 어군처럼 모여 들면
나는 또 서투른 어부 되어
만선의 추억 싣고 닻을 내리고 있었다
낮달 지난 얼굴 그물질하는 바다
시름에 겨운 사나이를
오래 붙박아 세워 두고 있었다
♧ 섬초롱 꽃네야 - 박이현
길을 물어
예까지 왔으니
눈이라도 한 번 맞춰주렴
적멸에까지 좆아온
끈질긴 그리움이다
잊고 지내려
무던히도 애썼는데
나도 모른다
왜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
널 보고 있으면
지금 막 돌고 있는
분주한 이 핏줄
이토록 사랑이 일어나는 봄 밤
결이 환한 네 꽃초롱 속에
나를 가두어 다오
♧ 都心에서 만난 섬초롱 - 김승기
뼈저린 사연이 있었겠지
누구의 손에 이끌렸는지 몰라도
꼭 정든 땅을 떠나야만 했는지
서울의 길모퉁이 콘크리트 담장 옆에서
땡볕 온몸으로 받으며
대낮에도 등을 켜야 하는 어둠을 품어 안고
억지웃음을 피워야 했는지
수없이 날아와 박히는 낯선 시선들 속에
한 번쯤은 정다운 눈길이 있었을까
어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화안히 불을 밝히고 있을까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
밤이 깊은데,
너를 바라보는 내 가슴이 따뜻해지네
왜 이리도 그리운 걸까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지만,
돌아가도 어제의 고향이 아니련만,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미련이 남은 걸까
그래, 살아가는데 어찌 이곳저곳을 가리겠느냐
메마른 땅도 정 붙이고 살면
그게 고향이 되는 것을
내 집이 되는 것을
都心의 아스팔트길
콘크리트 담장 옆에 터 잡은
섬초롱
쏟아지는 불볕햇살 아랑곳없이
오늘도 활기차게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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