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6호의 시와 등나무 꽃

김창집 2015. 5. 22. 19:42

 

어제는 애월읍 하귀 하나로마트에서 열린

‘애월문학’ 출판 모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문우들과

회포를 풀고, 늦게 돌아왔다.

 

애월문학 6호는

특집으로 홍기돈, 강방영의 평론

회원 25명의 시와 시조

회원 9명의 수필과

3편의 소설을 실었다.

 

그 중 우선 시 몇 편을 옮겨

등나무 꽃과 함께 올린다.

 

 

♧ 눈물로 피는 꽃 - 강원호

 

울음 끝에 울화 녹여내는 파도를 보라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바다를 보라지.

울화 녹여 눈물을 만들어내는 이여!

내 님도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았거니,

그대 그리는 꿈길 끝 간 세상에

눈물로 피운 꽃이 저렇던가 몰라.

 

울화 끝에 눈물 녹여내는 바다를 보라지.

   

 

♧ 접시꽃 - 고봉선

 

하얀 접시 빨간 접시 있는 접시 죄다 꺼내

7월의 태양이 정수리를 쪼아댈 때

말리고 다시 말린다, 뽀소송해질 때까지

 

가슴속 잠들었던 별빛들을 꺼내 놓고

배시시 웃음 한 조각 아무 일 없다는 듯

한가득 쌓아올린다 차곡차곡 접으며.

   

 

♧ 오름에서 울음을 캐다 - 김성주

 

마음이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일 때

상여 오르는 고갯길

패랭이꽃 벗삼아 가다보면

어느새 오름에 올라

포근해서 슬픈 젖무덤에 안기네

들꽃향기며 나비의 춤사위며

허공의 새소리도 새소리지만

언제나 나의 갈증은

바위틈 샘물을 찾는 것이네

 

꽃 진 자리를 어슬렁거리며 귀기울이면

들려,

또렷이 들려

저기,

바위 밑

샘물소리

 

왜, 오름은

어둠 깊이 눈물을 묻어 놓는 걸까

 

마음이 흔들리는 빈 대궁일 때

먼 마실간 어머니, 마중으로

오름을 오르는 것이네

 

젖을 물고 싶은 날이네

 

 

♧ 그리움의 길이 - 김영란

 

때로는 시인이었다가

 

때로는 철학자였던

 

밀물진 조간대에

 

홀로 선 왜가리

 

그 반경 뒤뚱거리다

 

목만 길어졌구나 

 

 

♧ 석굴암 오르는 길 - 김윤숙

 

서서히 솟아올라 또 한 채의 한라산

오래전 등짐 진 이 선택한 그 고행을

직립의 나뭇가지 하나 슬쩍 내려 받쳤으리

 

가쁜 숨길 등성마다 한 아름의 적송들

흐려진 시력 탓만은 결코 아닐 텐데

그 어딜 둘러보아도, 기도처 벼랑에 섰네

 

 

♧ 그리움 - 김종호

 

그리움 따라 걷다가

장미화원이 눈이 멈췄다.

 

아, 그 색과 향기

숨이 막힐 듯

가슴은 퉁퉁거리고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77세의 그리움은

끝내 만날 수 없었네.

 

먼먼 날에

불쑥 내밀고 간

장미 한 송이

 

세상에

단 한 송이.

 

 

♧ 늦눈마저 보내고 - 문순자

 

목질이 단단할수록 옹이가 깊이 박힌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그것이 눈이라는 걸

 

몸으로,

 

몸으로 말하는

 

갱년기 잣밤나무

   

 

♧ 패랭이꽃이었을 거야 - 양영길

 

패랭이꽃이었을 거야

바람은 없었고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던가

샘물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아니 노래 소리였는지도 몰라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어

내가 그녀의 심장소리를 엿듣고 있을 때

샘물은 아무도 모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

꽃망울로 터져 나오고 있었어

나는 그 때 수영을 하고 싶었을 거야

강을 건너고 싶었을까

패랭이꽃이 물위를 떠돌고 있었어

죽은 물고기도 떠돌고 있었어

멀리 바다가 보이는 길을 고개 숙여 걸을 때였던가

바람이 말을 걸었어

그건 말이야 앉은뱅이꽃인지도 몰라

그래, 내가 앉은자리가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