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 제4호와 수련

김창집 2015. 7. 7. 00:02

 

제주불교문인협회에서

‘혜향(慧香)’ 제4호를 냈다.

 

‘다시 듣고 싶은 법문’으로

성철 스님의 ‘마음의 눈을 뜹시다’를,

 

‘제주고승열전’은

제주 불교의 큰 빛 ‘동산대종사’의 행장을,

 

초대작품으로는

김영재 박기섭 하순희의 시와

이철호의 수필을,

 

그리고 회원들의 작품과

시몽 스님의 선시 감상과 해설,

사찰탐방 순례 등을 실었다.

 

시 몇 편을 옮겨

요즘 한 창 피어나는 수련과 같이 올린다.  

 

 

♧ 마음 - 김영재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족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 비의 저녁 - 박기섭

 

햇연꽃 불 켜든 일은

햇연꽃 저만이 알고

 

들오리 길 떠난 일은

들오리 저만이 알지

 

늦도록 못둑에 붐비는

비의 속내는 누가 알꼬?

   

 

♧ 김영갑* - 하순희

 

서귀포 바다같이 풋풋한 스물다섯

유채꽃 바람결에 한 생애 물이 들어

눈물 뼈, 돌팎에 남은

영혼의 천연 소금

 

돌담장같은 그리움 한우물 다 길어올려

동백꽃처럼 뜨겁고 선혈처럼 붉은 열정

원없이 텅빈 충만으로

치열하게 소진시켜

 

노래하는 산하에 접신된 필름마다

바라보다 흐르다 꿈꾸던 감나무 아래

또 다른 사랑으로 와

수선화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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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1957~2005) : 충남 부여 출생, 스물다섯 살에 제주에 반해 물질을 떠난 궁핍 속에 23여 년 오로지 제주사진을 찍다 초등학교 폐교를 개조한 서귀포시 두모악 갤러리의 감나무 아래 모든 혼을 두고 잠들었다.

 

 

♧ 오름에서 울음을 캐다 - 김성주

 

마음이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일 때

상여 오르는 고갯길

패랭이꽃 벗삼아 가다보면

어느새 오름에 올라

포근해서 슬픈 젖무덤에 안기네

 

들꽃향기며 나비의 춤사위며

허공의 새소리도 새소리지만

언제나 나의 갈증은

바위틈 샘물을 찾는 것이네

 

꽃 진 자리를 어슬렁거리며 귀기울이면

들려,

또렷이 들려

저기,

바위 밑

샘물소리

 

왜, 오름은

어둠 깊이 눈물을 묻어 놓는 걸까

 

마음이 흔들리는 빈 대궁일 때

먼 마실 간 어머니, 마중으로

오름을 오르는 것이네

 

젖을 물고 싶은 날이네

   

 

♧ 예순아홉 살의 봄 - 김용길

 

비 온 뒤 햇살이 무량無量하다

마당귀에 떨어진 꽃잎들

줍다 말고

청청靑靑 그늘 드리우는 나무

가만히 흔들어 본다

따뜻한 바람이 가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내년 봄에도 저 가지에

꽃물 흐를 것인가

 

넘어가는 나잇살 헤아리다 말고

예순 숫자(6)와

아홉 숫자(9)가

서로 맞물려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얼마나 오래 버틸까

거꾸로 매달리는 나잇살

꽃물 적시는 가슴

가만히 쓸어본다.

   

 

♧ 觀音溪谷관음계곡 2 - 문태길

 

개울은 쉬임 없이

어디로 흘러가나

 

울창했던 잎새들도

어디론가 떠난 자리

 

수석을

줍는 아낙네

신비경을 일깨운다

 

조약돌도 주우면서

관음을 찾노라면

 

정화수 한 그릇에

떠 흐르는 보살님 미소

 

한 생을

설렌 가슴에

노을로만 와 앉는다.

   

 

♧ 아라한(arahan) - 양태영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마음 밭에 정착하여

깨달아 마음(心)이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아라한에 불국정토 아니더냐!

달은 밝아 고요하고

구름은 흩어지니

사방이 다 문이로구나!

변한다는 것은 고통이 씨앗이거늘

한 세상 마음 비워 청정하니

마음밭 터전 일군 곳

여기가 아라한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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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arahan) : 완전한 행복

 

 

♧ 갯바위 - 오영호

 

한겨울

햇살 좋아

바닷가로 나온 오후

 

파도를

맞받아치는

갯바위를 보아라

 

침묵의

단단함으로

틀어막은 입과 귀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