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최기종 시집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김창집 2015. 7. 11. 16:26

 

  * 사진은 우도 해안가에 쌓아 놓은 돌들

 

최기종 선생님이

시집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를 냈다.

 

학교에서 33년 동안 근무하면서 쓴

교단의 일기라고나 할까.

 

선생님은 시인의 말에서

“이 시집은 전교조 교사로 살아왔던 교단의 기록”이라 전제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타파하고

교육 민주화를 염원했던 시대의 에너지였고

학교를 학교답게 하고자 했던 검붉은 지층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는 불야성이고

아이들은 대학 가는 동아줄에만 매달려 있다”면서

“이 시집이 이루지 못한 자의 풀씨였으면 한다.

힘써 이루려는 자의 노래였으면 한다.

꿈꾸는 선생님들에게,

깨어 있는 학부모들에게,

별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했다. 값 8000원, ‘삶창’ 발간.

   

 

♧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학교에서 고래는 사라졌을까?

고래를 찾는 아이들의 눈들이

외눈박이 집어등이 되어서

장생포구를 환하게 밝혔지만

어디에고 고래는 보이지 않는다.

고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른들이 마구 포획해서 씨를 말렸다고도 하고

크릴새우를 따라서 남극으로 갔다고도 했으나

아이들은 고래를 기다렸다.

 

학교에서 고래는 사라졌을까?

고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들이

청어 떼가 되어서

저 멀리 수평선까지 넘나들었지만

고래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은 고래를 탈 수 없을까?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는데

아이들의 난바다에는

물을 품는 고래가 있다는데

어디에고 고래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고 그리운 남방은 보이지 않는다.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이

고래 소리를 타전한다. 

 

 

♧ 은어 떼

 

아이들을 은어 떼로 여겼더니

내린천에서 퍼덕거리는 은비늘로 여겼더니

내 썩은 가슴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내가 강물이라고

아이들의 여린 등을 밀어주는

내가 잔잔한 강물이라고 다짐했더니

아이들의 등에서 지느러미가 자라났다.

이렇게도 빠른 불씨가 있을까

내가 강물이고 아이들이 은어 떼라고

두 손 모아 기도했더니

내 덧난 생채기 아물고

아이들이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내린천이 봄물처럼 불어나고

아이들이 거친 바다를 꿈꾸었다.

아이들을 은어 떼라고

내가 강물이라고 여겼더니

하늘과 땅이 백지장 하나 차이였다.

   

 

♧ 분필

 

비 오는 날이면

분필이 잘도 부러진다

눌러 쓰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분필은 조심스런 존재다.

 

분필의 생애는 짧지만

그 쓰임에 따라서

수명이 길어지기도 한다.

딸각발이 딸각딸각 걸어가듯이

써레질 논에 모 심어 나가듯이

분필은 몸보시로 길을 낸다.

 

분필은 백악질 어둠이지만

미망을 깨치고 파안을 만나서

창공을 나는 새가 되기도 한다.

청靑바다에서 나비가 춤추듯이

벌겋게 참꽃이 피어나듯이

분필은 침묵에다 빛을 뿌린다.

 

봄날, 졸음이 오면

분필의 행각은 더욱 조심스럽다.

동銅이 청동경으로

지난 세기의 환영들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뚝 부러져서

날으는 화살이 되기도 한다.

 

 

♧ 사과도 노동한다

 

사과 한 입 물었더니

몸이 움찔한다.

그것, 머리가 기억하기 전에

몸이 먼저 ‘딩’하고 운다.

스펀지처럼 온몸이 벌겋게 물든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낸 농사다.

혹한도

봄날 아픔도

여름 땡볕도

가뭄도 태풍도 모두 몸으로 받아서

노동이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이건 기름밥이다.

노동이 지어낸 향기다.

   

 

♧ 물에 빠진 아이들

 

아이들이

물을 좋아하다 보니

물에서 살고 물에서 죽기를 원하니

나는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서

게임에 빠지고 금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나는 녹음기처럼 되뇌인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가라앉고 하니

나는 나비처럼 날갯짓만 한다.

 

아이들이

타워 조명을 좋아하다 보니

등롱의 하루살이처럼

골리앗 속으로 빠져 들어가니

나는 이 크레인을 떠나지 못하는가?

 

 

♧ 선생도 사람이다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미워질 때가 있다.

가르치다 보면

울화가 치밀고 작아져서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것만 아픈 줄 알았는데

잡아 앉히고 가르치는 게 더 아플 줄이야

지적하고 톤을 높이는 게 더 아플 줄이야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제

비틀거리는 아틀라스 거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처럼

교탁을 내리치면서 떠들지 말라고 졸지 말라고 지각하지 말라고

일방통행 명령어만 남발해야 하니

이렇게 고무줄만 팽팽하게 붙잡고 있어야 하니

한 달이 아득하고 하루가 멀기만 하다.

선생도 사람이다.

어제의 교실에서

내일의 깃발을 올려야 하는

이 땅의 선생들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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