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문인협회에서
‘혜향(慧香)’ 제4호를 냈다.
‘다시 듣고 싶은 법문’으로
성철 스님의 ‘마음의 눈을 뜹시다’를,
‘제주고승열전’은
제주 불교의 큰 빛 ‘동산대종사’의 행장을,
초대작품으로는
김영재 박기섭 하순희의 시와
이철호의 수필을,
그리고 회원들의 작품과
시몽 스님의 선시 감상과 해설,
사찰탐방 순례 등을 실었다.
시 몇 편을 옮겨
요즘 한 창 피어나는 수련과 같이 올린다.
♧ 마음 - 김영재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족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 비의 저녁 - 박기섭
햇연꽃 불 켜든 일은
햇연꽃 저만이 알고
들오리 길 떠난 일은
들오리 저만이 알지
늦도록 못둑에 붐비는
비의 속내는 누가 알꼬?
♧ 김영갑* - 하순희
서귀포 바다같이 풋풋한 스물다섯
유채꽃 바람결에 한 생애 물이 들어
눈물 뼈, 돌팎에 남은
영혼의 천연 소금
돌담장같은 그리움 한우물 다 길어올려
동백꽃처럼 뜨겁고 선혈처럼 붉은 열정
원없이 텅빈 충만으로
치열하게 소진시켜
노래하는 산하에 접신된 필름마다
바라보다 흐르다 꿈꾸던 감나무 아래
또 다른 사랑으로 와
수선화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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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1957~2005) : 충남 부여 출생, 스물다섯 살에 제주에 반해 물질을 떠난 궁핍 속에 23여 년 오로지 제주사진을 찍다 초등학교 폐교를 개조한 서귀포시 두모악 갤러리의 감나무 아래 모든 혼을 두고 잠들었다.
♧ 오름에서 울음을 캐다 - 김성주
마음이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일 때
상여 오르는 고갯길
패랭이꽃 벗삼아 가다보면
어느새 오름에 올라
포근해서 슬픈 젖무덤에 안기네
들꽃향기며 나비의 춤사위며
허공의 새소리도 새소리지만
언제나 나의 갈증은
바위틈 샘물을 찾는 것이네
꽃 진 자리를 어슬렁거리며 귀기울이면
들려,
또렷이 들려
저기,
바위 밑
샘물소리
왜, 오름은
어둠 깊이 눈물을 묻어 놓는 걸까
마음이 흔들리는 빈 대궁일 때
먼 마실 간 어머니, 마중으로
오름을 오르는 것이네
젖을 물고 싶은 날이네
♧ 예순아홉 살의 봄 - 김용길
비 온 뒤 햇살이 무량無量하다
마당귀에 떨어진 꽃잎들
줍다 말고
청청靑靑 그늘 드리우는 나무
가만히 흔들어 본다
따뜻한 바람이 가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내년 봄에도 저 가지에
꽃물 흐를 것인가
넘어가는 나잇살 헤아리다 말고
예순 숫자(6)와
아홉 숫자(9)가
서로 맞물려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얼마나 오래 버틸까
거꾸로 매달리는 나잇살
꽃물 적시는 가슴
가만히 쓸어본다.
♧ 觀音溪谷관음계곡 2 - 문태길
개울은 쉬임 없이
어디로 흘러가나
울창했던 잎새들도
어디론가 떠난 자리
수석을
줍는 아낙네
신비경을 일깨운다
조약돌도 주우면서
관음을 찾노라면
정화수 한 그릇에
떠 흐르는 보살님 미소
한 생을
설렌 가슴에
노을로만 와 앉는다.
♧ 아라한(arahan) - 양태영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마음 밭에 정착하여
깨달아 마음(心)이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아라한에 불국정토 아니더냐!
달은 밝아 고요하고
구름은 흩어지니
사방이 다 문이로구나!
변한다는 것은 고통이 씨앗이거늘
한 세상 마음 비워 청정하니
마음밭 터전 일군 곳
여기가 아라한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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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arahan) : 완전한 행복
♧ 갯바위 - 오영호
한겨울
햇살 좋아
바닷가로 나온 오후
파도를
맞받아치는
갯바위를 보아라
침묵의
단단함으로
틀어막은 입과 귀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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