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숲에 들 수 있는 건
자연이 인간에 내린 축복이다.
초록 빛 경건한 성전에 들어
깊은 호흡을 하며
이런 나뭇잎을 볼 수 있다는 일은
또 얼마나한 즐거움인가.
지난 토요일
천아오름 수원지에서
한라산 둘레길 2코스에 들어가며
높은 나무숲을 아득하게 올려보다가
나만 볼 수 없어
몇 컷 잡아본 것이다.
♧ 숲에 관한 명상 - 이양우
마음속에 숲을 열어보자
거기 잔잔한 미소가 가득하고
눈을 열어 숲의 미소를 보자
그 안으로 생명의 숨소리가 있어라.
낮에는 그늘이 깔리고
저녁에는 달빛이 깔린다.
낮의 그늘을 보자
거기 빛의 미소가 있어라.
저녁의 달빛을 보자
거기 별들의 눈동자가 있다.
생명들은 이렇게 초연한 것이다.
가만히 귀를 기우려 보자
그 찬란한 숨결은 영혼의 미소이다.
누가 깨우쳐주고 일러주지 않아도
숲은 잠들고 눈을 떠
평화를 일궈낸다.
가만히 영혼의 미소를 보라.
서로 화음의 반주로 피를 섞는다.
숲의 정령들이 키워내는 들꽃을 보라
그리고 나무들을 보라
생성소멸의 더듬이로 다스리지 안는가,
밤에 아침에 한낮에 저녁을 구별하여
갖가지 짐승들과 새들은
저마다 오갈길을 찾아들지 않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나의 몸을 뉘울 곳은 어디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뿌리에서 실어오는
수액의 부지런한 자맥질을 보라.
오수를 털어낼 침묵의 빛 있지 않은가
그대여, 머지않아 삶의 인내가 무너지면
이곳에 고요의 무덤을 장식할
유일한 안식의 숲이 아니던가,
♧ 당신의 숲에 들어 - 박덕중
몸이 쑤시고 아플 때
달빛처럼 환한 당신의 숲을 연다
숲길 따라 걸어 갈수록
골짜기는 깊고
깊은 곳에 맑은 냇물이 흐르고
흐르는 물소리는 영혼을 씻어준다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소리
당신의 숲속은
황금빛 보다 더 빛나는 섬광으로 가득찬 곳
우리의 길이 되고
목숨이 되고
영원불멸의 말씀으로 채운 숲이거늘
당신의 숲은
나의 거처요
집이요
안식처임을 깨닫는다
당신과 항상 함께 함으로
세상 안에서 쓰러지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로 선다
♧ 빈숲에서 - 정영자
삼각산 산자락
나목이 하늘로 흐르는
세검정 바위 아래
잔디는
돌아올 봄 속에 꿈 가지고
살며
지나는 걸음이
왔다가는 자리에는
유정한 바람이 불어
버릴 것
모두 버린 나무는
깨끗하게 서 있다
누가
그들을 헐벗어 춥다고 말하나,
그리움마저
떠나 보낸
당당한 그리움의 끝에
꽃피는 봄이 오거니 ,
잠시
고개를 들어
빈숲을 바라보네
♧ 숲 - 김명석
당신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숨쉬며
청하늘을 동경합니다.
잔잔한 파도를 연상하며 편지를 씁니다.
멀고 먼 나라의 외나무다리에서
햇살 한 움큼 쥐고서 서로의 가슴에 뿌려봅니다.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빛이지만
그 빛은 살아 우리들의 혈관을 타고 돕니다.
혈관을 타고 돌면 지나치는 피톨마다
에머럴드빛 광채를 발합니다.
온 몸에서 향기로운 시간이 흐릅니다.
먼 곳에서 뻐꾸기 한 쌍 정답게 웁니다.
우리가 찾던 낙원은 이곳이었습니다.
♧ 숲 - 김용범
내가 아침마다 걷는 숲에는 여러 마리의 콩새와 음흉한 그늘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숲의 음흉한 그늘을 특히 사랑한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침묵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는 그 그늘에서 나는 자주 쉬곤 한다. 은밀하게 숲속의 그늘에서 나는 몇몇 도륙을 낼 인물들을 찾고 있다.
굴참나무와 갈참나무 그리고 작살나무로 무성한 숲에서 작살나무는 가장 왕성한 식생이다. 나는 작살나무 등걸에 날카로운 칼로 빗금을 그으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낸 몇몇 인물들을 작살낼 계획을 세운다. 밤을 새우고 난 다음날 아침의 작살나무는 유난히 살기등등하다.
♧ 여기는 숲이었네 - 김수우
이곳은 나무가 있던 자리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대와 만난 곳도 나무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불꺼진 쇼윈도 마네킹이 한밤내 바라보는 곳
햇살에 타버린 지렁이가 구두끈처럼 밟히는 곳
불구걸인이 겨울하늘 붙들고 앉아있던 곳
모두, 나무가 있던 자리입니다
서로 발걸음 돌리지 못해 머뭇거린 것도
뿌리내리다 걸린 귀앓이
속눈물로 씻으며, 하늘로 하늘로 번져가던
울울한 고요가 살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대도 한 그루 나무였음이, 그 모두
한 잎 한 잎 다가서던 숲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 숲 속에서 - 현상길
여기가
나 꿈꾸던 요람이라서
나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네
얻으려
하늘 멀리 손 내밀지 않는
수줍은 물푸레나무처럼
눈길 가득 푸르게
나무 닮은 꿈 높이고
찾으려
흙 속 깊이 발뻗지 않는
가녀린 토끼풀처럼
마음 한껏 가벼이
풀잎처럼 허리 굽히네
여기가
나 돌아갈 고향이라서
나 아무와도 함께 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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