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늦더위와 누리장나무 꽃

김창집 2015. 8. 20. 10:20

 

엊저녁부터 비가 오면서

오늘 비 날씨가 된다는 예보는

형편없이 빗나가

어제 오전에 비가 조금 내리고는

오늘은 햇빛이 쨍쨍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굳이 일기예보를 탓할 필요도 없이

주변 어디쯤 비가 내리기 때문에

이곳이 이리 더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밤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벗고 있으면 으스스할 정도니

늦더위가 맞기는 하다.

 

그러나 저러나

내일부터 주말 3일 동안

모두 산행 일정이 잡혀 있는데

비가 온다니 걱정이다.

 

 

 

♧ 고향집 - 김영문

 

말복이 지난 어느 여름 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뙤약볕으로 끓은 듯

대지의 열기가 숨차 오른다.

 

마당에 펼쳐 놓은 멍석 위에는

빨간 고추가 양광에 움츠려들고

영글면 저절로 터져 버린

참깨 들깨를 수확하려고

또 다른 멍석위에 농심이 묶였다.

 

아침부터 들에 나가

논밭에서 김을 매고 와서는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나면

졸려오는 낮잠에

시원한 바람을 찾아서

사방 문이 활짝 열린다.

 

포플러 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도

한낮의 정적에 기가 질려서

소리를 지르다 말고

울음을 뚝- 그치니

자장가 삼아서 잠들었던 첫돌박이가

가만히 눈을 뜨고 배시시 웃는다.

 

내려 쬐는 늦여름 햇볕에

장독대의 간장 된장이 익어 가고

담장에 올려놓은 호박 넝쿨에

마디마디 호박이 열려서

알차게 영글어가는 한가한 시골집.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에

집을 지키는 삽살개마저도

그늘을 찾아서 코를 골고 있으니

찾아 온 길손을

누가 나가서 마중하려나.  

 

 

♧ 쓰르라미 - 정재영(小石)

 

잔치가 끝나가는

늦여름이 되면

톱질만 해대는

쓰러라미

 

홀로서

다가올 가을이

무엇인지를

머리 알고 있나 보다

 

늦더위로 밀쳐내도

다가오며 쳐들어오는

가을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알아차렸나 보다.

 

하루 종일 잘라내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나보다.

 

 

♧ 산이 눈물처럼 - 박종영

 

늦더위에 지친 하늘에서

자분자분 비가 내리더니

산이 눈물처럼 파랗습니다.

예전에 미처 느끼지 못한 애태움이 찡하던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혼탁한 세상 바라만 보다가 고운 얼굴 다 놓치고

이렇게 비가 와서 파란 들녘에 서면,

저절로 풋나락 냄새 가슴 가득 채워져

울렁거리던 뱃속이 하냥 대견스럽게

얼른 꺼지지 않습니다.

세월은 참 빠르고 야속도 합니다

저마다 숨기고 싶은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들춰내기라도 하듯,

누구나 남의 웃음 따라 하는 정이 있으므로

하얀 얼굴 다듬어 웃으라 합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마중하며

오늘은 논배미 여문 결실을 지키고 선

찬란한 허수아비와 밥 한 끼 같이하려는데

혼잡한 참새 떼가 낯익은 목소리로 날아와

슬쩍, 풍성한 초가을을 훔쳐 달아납니다.

 

 

♧ 즐거움은 피로를 구축한다 - 하영순

 

가을을 생각하기엔 아직

멀기만 한 늦더위

아스팔트 불기운을 가르며

핸들을 잡았다

 

KTX를 타면 한 시간 남직하면

될 거리

쉬다가 놀다가 보내는 시간

 

휴게소 마다 들러

비치파라솔 아래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그림을 감상하는 여유

그 여유가 좋아 국토의 하 반신을

씨줄로 역어본다

 

탁 트인 고속도로

겁 없이

페달을 밟으니 답답한 마음

물길처럼 뚫으며

과속도 풍류를 즐기는데 한 몫을 해 준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간다는

추풍령 고개에서

메밀국수에 줄줄이 시를 매달고

 

시 한수로 달래보는 나그네 길

세월 따라

바람 따라

풍류를 즐기며 달려라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가 아니더냐?

 

 

♧ 바람길 - 초월 윤갑수

 

숨 조이는 늦더위

기승을 부리건만

막다른 골목길에

바람이 인다.

 

구름은 덧없이

흘러 흘러가는데

 

코끝에 몽글몽글

맺힌 구슬땀

바람이 식혀준다.

 

왠지 모르게

솟아나는 그리움

옛 시절

바람길 따라 거닐던

산행이 그리워진다.

 

산허리를 지나칠 때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

바람길 따라 가는

구름도

인생도

 

그 길은

행복으로 가는 바람 길

나는 바람 길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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