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에는 연일 뜨거운 폭염과
열대야의 연속이었지만
중순이 되면서
더위가 주춤했던 올 8월.
그제 한라산 900~1000m 고지에 올라
8월의 숲을 촬영했습니다.
애석하게도 햇빛이 없어
싱그런 화상은 건지지 못했지만
짙은 여름의 숲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맨 아래의 산벚나무만이
색의 변화를 나타내며
9월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오늘 8월 마지막 날을 잘 보내시고
활동하기 좋은 새 9월 맞으시기 바랍니다.
♧ 8월이 가기 전에 - 오광수
8월이 다 가기 전에
조금 남아있는 젖은 가슴으로
따가운 후회를 해야겠다.
삶에 미련이 많은 만큼 당당하지를 못해서
지나온 길 부끄러움으로 온갖 멍이 들어 있는데도
어찌하지 못하고 또 달을 넘겨야 하느냐
나의 나약함이여
나의 비굴함이여
염천 더위에 널브러진 초라한 변명이여
등에 붙은 세 치 혀는 또 물 한 바가지를 구걸하고
소리 없는 고함은 허공에서 회색 웅덩이를 만드는데
땅을 밟았다는 두 발은 흐르는 물에 밀려 길을 잃고 있구나
8월이 간다
이 8월이 다 가기 전에
빈손이지만 솔직하게 펼쳐놓고
다가올 새날에는 지친 그늘에게 물 부어주고
허공의 회색 웅덩이는 기도로 불러다 메워가고
물빛에 흔들리는 눈빛이라면 발걸음을 멈추자
머지않아 젖어있는 이 가슴이 마른다 해도
잠든 아이 콧잔등에 땀 솟을까
애쓴 마음이라도 남아있으면 너무 고맙지 않은가!
♧ 8월에 - 박종영
하얀 길은 턱없이 지친 채
길 한편을 더운 바람에 내주고 먼지를 날린다
물기 끌어올리는 텃밭 감나무 한 그루,
번들번들한 잎 늘어뜨리고 고개를 조아린다
가슴 흔들며 떠가는 뭉게구름,
그 아래 가을 길을 열고 줄 서 있는 볏논의 질서가
파란 물길 내놓고 바람을 모은다
올해도 기어이 풍요는 올 것인가,
제비 한 쌍이 낮게 비행할 때마다
벼포기 흰불나방이 힘없이 사라진다
어디 그뿐이랴, 다랑이 논 물꼬에
풀대 물레방아 만들어 어둔 세월 돌게 하는
손자 돌 이의 복스런 손놀림이
보배스런 기운으로 눈에 잡힌다
하늬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카락과
논둑에 핀 코스모스 가는허리의 눈물이
지평선 하늘 끝에 매달리고,
바짓가랑이 밑으로 숭숭 지나가는
선선한 8월의 바람이 익숙한 웃음으로
한층 두께를 더하면서 푸른 들녘을 들쑤신다
입추 절기가 더딘 여름을 얼리며 속삭인다,
너도 어느 시절 울고 떠난 여인이 그리울 것이리라
♧ 8월이 가면 - 박상희
8월이 다가도록
아직 마음은 더워지지 않았다
흐린 날에는
홀로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빗방울 해가며 차를 마셨다.
어느 듯 8월은 문을 닫는데
아직도 이 마음 풋 잎으로
방황의 길을 멈추지 못하고
세상은 문을 열고 기다리는데
나는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숙제로
가슴엔 상처만 남기는지
바다에 가도 햇살은 돌아누워
흔한 낭만은 만날 수 없고
째깍 이는 시간의 발굽 소리만
파도 속에 밀려왔다 밀려간다.
♧ 8월. 2 - 안재동
너만큼 기나긴 시간 뜨거운 존재 없느니.
뉜들 그 뜨거움 함부로 삭힐 수 있으리.
사랑은 뜨거워야 좋다는데,
뜨거워서 오히려 미움받는 8월아.
너 때문에 사람들 몸부림치고 도망다니고
하루 빨리 사라지라며 짜증스러워 하지만
야속타 않고 그저, 어머니처럼
삼라森羅 생물체들 품속에 다정히 끌어안고
익힐 건 제대로 익혀내고
삭힐 건 또 제대로 삭혀내는 8월아.
때 되면 깊고 긴 어둠속으로 스스로 사라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아.
언젠가는 홀연히 가고 없을 너를 느끼며
내 깊은 곳 깃든, 갖은 찌끼조차
네 속에서 흔적 없이 삭혀버리고 싶다.
너로 인해 올해도 내가 잘 익는다 8월아.
♧ 떠도는 8월 - 노현숙
불타는 8월의 정부가
화상으로 남긴 흔적
빈 길목 너머 숨은 햇살
잠깐 머물다 간 빗살무늬 사이
그가 떠난 자리에
새들이 하늘을 난다
흘리고 던지고
외로이 타 들어가던
절정의 길목 언덕
뒹굴며 떨어지는
은행나무, 사시나무
이파리들도 서둘러 꿈틀댄다
세모난 달빛 아래 발끝 세우고
뼛속 깊이 고여 있는 8월 정부
다 지우고 지워도 오늘밤,
체온을 잃어버린 11월의 정부는
손끝조차 시린 정맥사이로
하얀 숨결이 얼룩져가고.
♧ 8월. 끝 날 - 장수남
시간과 시간사이
비가 내리고
질퍽한 계절은 아름다운
포옹이 있었다.
팔월 장대비가
새벽부터
끝자락 잡고 뜨거운 눈물
쏟아 붓는다.
마지막 작별인사
오후의 햇살이
저만치 눈을 감고 지그시
배웅하고 있었다.
보내야 할 시간들
떠나야 할 시간들
여름은 길고긴 아픔이었다.
가마솥 찜통더위 그리고
밤은 열대야
지금은 머리 숙인다.
계절의 감정 허공에
미안하다는 흑색문자 깊게
찍어 놓았다.
잘 가거라.
팔월. 너에겐 미움의
시간들. 계절의 아픔. 너는
알고 있을 거야. 여름 우리
뜨겁도록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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