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름에 오르다
그만 몇 분이 말벌에 쏘이고 말았다.
한 방만 쏘인 분도 있고
여러 방 쏘인 분도 있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 체질이 차이가 있어
그 반응 정도가 각각 달랐다.
몇 분은 간단한 약을 바르기도 하고
심한 분은 빨리 내려와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이제까지 그런 경험이 없는 터라
모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산에 가는 분들은
상비약으로 벌에 쏘였을 때
바르는 약도 추가로 준비해야 할 때다.
♧ 빈 집 - 송문헌
‘늦장마로 골 안 고추밭이 절단 나더니 오늘 장엔 물고추 시세마저 말이 아니었다’느니 ‘건너 마을 젊고 이뿐 덕칠이 마누라는 백중날 노래자랑에서 타온 김치 냉장고가 쓸데없어 광에 처박아 놓았다’느니 씨부렁씨부렁, 건조실에 담배 잎을 걸고 재느라 뒤늦게 모서리에 걸터앉아 목청을 높이더니 김씨, 들마루 끝에 누운 채 슬며시 잠이 들었다 누군가 집으로 들어가며 곡식들도 잠을 재워야한다며 보안등마저 모두 꺼버려 밤은 유령의 마을처럼 더 적막해졌다 허공엔 그 흔하던 개똥 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기우뚱해진 하현달과 숨었던 잔별들이 나도 나도 외장치며 뛰쳐나와 오작교 주변에 모여들었다 또 무슨 사연들을 밤새 은하수에 풀어 놓을 것인가 이십여 호 일가들이 모여 살던 고향마을 고향마을은 이제 모두 서먹한 타성 박이들이 차지했다 해 걸러 어쩌다 찾아 간 곳 밤이 너무 길어 주섬주섬 한 밤의 텅 빈 신작로를 되짚어 오르내리던 지난여름 그러나 이 장마가 그치고 백중 때가 되면 난 다시 길을 나서게 될 것이다 한 때는 남의 집 들여다보듯 넘겨만 보다 되돌아섰던 고향 빈 집을 찾아
♧ 바다, 그대에게 - 배교윤
북두칠성 환하게 빛나는
칠월 백중
만월(滿月)의 달빛 따라
검푸른 바다로 건너가는
그리움 있다
푸른 달빛을
명주 이불로 덮고
면사포 같은 파도를
자장가처럼
베고 자던 유년의
고향바다
척박한 땅
바다를 향한 채
피던 해당화
미역 냄새, 파래 냄새
염분 짙은 갯바람
그 모진 生
바람으로 일어서고
바람으로 잠들던
그대, 바다에게
오늘
빈 가슴으로 무너진다
♧ 도선장 불빛 아래 - 강형철
―군산에서
백중사리 둥근 달이
선창 횟집 전깃줄 사이로 떴다
부두를 넘쳐나던 뻘물은 저만치 물러갔다
바다 가운데로 흉흉한 소문처럼 물결이 달려간다
꼭 한번 손을 잡았던 여인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뜨거운 날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할 수 없는 곳을 통과하는 뻘물은 오늘로 서해로 흘러들고
건너편 장항의 불빛은 작은 품을 열어 안아주고 있다
포장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긴 로프에 매달려 고개를 처박고 있는 배의 안부를 물으니
껍딱은 뺑끼칠만 허믄 그만이라고
배들이 겉은 그래도 우리 속보다 훨씬 낫다며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묻는다
생합, 살 밑에 고인 조갯물 거기다
한 잔 소주면 좋겠다고 나는 더듬거린다.
물 젖은 도마 위에서 파는 숭숭 썰려 떨어지고
부두를 덮치던 파도는 어느새
백중사리 둥근 달을 데리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선다.
♧ 생굴 까먹는 모녀 - 김승해
홀로 늙는 엄마와 생굴 까먹는 일은
슬쩍 민망한 일이다
물이끼 따개비 다 들러붙은 굴 껍질 까면
함께 늙는 자개농 문짝같이
벌컥 열리는 저 살점의 비린 것,
환갑 넘은 울 엄마
푸짐한 젖통같이 뽀얗게 쏟아지는데
조갑지만 한 살림을 나고
지아비를 얻어서도 나는 몰랐다
엄마의 몸이 얼마나 비려 쓸쓸한 껍질인지
달디 단 살점의 무덤인지
거기 붙어 무성하게 자란 나는
또 얼마나 옥죄는 물풀의 뿌린지
몸 다른 새댁같이 달게 드시는 엄마와
생굴 까먹는 일은
엄마의 숨겨둔 연애담 들추는 것 같아
모른 척 피할 일이다
씽긋, 눈감을 일이다
백중사리의 뻘밭은,
둥근 엄마의 몸을 데리고 간다
아직은 환하다
♧ 음풍영월 - 진경옥
산청군 휴천면
백무동 계곡의 청정수가
경호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
잠든 수면 위로 파문을 그리며
쉴 새 없이 입질하는
피라미일까 은어일까 입 큰 메기일까
잠시 앉았던 백로가 날아가고
짙은 안개에 가린 백중달이 떴다
반딧불 따라 기슭으로 눈이 가자
취한 듯 휘어진 배롱나무
큰물의 흔적인 듯 비닐이며 옷가지가
붉은 배롱꽃을 가리듯 걸려 있다
둑이 터지고 성난 황톳물이
키 높이로 아우성쳤을 경호강
여태도 군데군데 누워 못 일어나는 벼들
떠내려 와 여기 저기 널린 세간들
시름겨운 어른들은 일찍 자리에 들었는지
요요(寥寥)히 깊고 있는 휴천면
늦은 배롱꽃이 일없이 지고 있다.
♧ 한진항 밤바다에서 - 강희창
전희인 듯 황혼이 부끄러워
어둠은 밀어처럼 덮어와서는
서로 사무치게 달구었다
불빛들은 수심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시촉수 돋워 가며
바다의 전율을 감지하고 있다
알몸을 리듬에 내맡긴 채
철썩임으로 접할 때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끈적한 해초내음,
때로는 거칠다가 잔잔하게
더 없이 황홀한 물안개가
피었다가 사라지는
아! 뜨겁고도 짭짤한 사랑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뒤척이더니 기어이
백중 지난 밤 항구 앞자락에
달덩이 하나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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