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들여 놓았는지
오로지 생존 본능을 쫓는 갈매기 떼,
새우깡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강화도 석모도에 갈 때나
부산 오륙도를 도는 배 위에서나
우도 가는 카페리 위에서나 마찬가지
여수 오동도 뱃길에서도 그랬다.
바다 위를 나르며
물 속의 미동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
그 날카롭던 부리와 발톱은 어디 두고
이리 부끄러운 나랫짓을 하는지.
갯녹음이나 적조현상, 오염 등으로
점점 줄어드는 바닷물고기 때문에
이제 갈매기는 그렇게 진화하는가?
♧ 갈매기 우는 바다 앞에 서면 - 김명석
마음의 창을 닫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아득히 먼 곳에서 밀려오는
또 다른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는 바다 앞에 선다.
잔잔함 속에서 포말을 일으켜 보았던 이야기의 바다에는
싱겁게 끝나버린 역사가 앙상한 갈비뼈를 들추며
침몰되어 갔고, 여린 빛을 긁어모아 엽서를 메우고
돌아앉은 밤에는 기침만이
삶의 방향을 지시하여 주었다.
쓸쓸함만으로 도배된 하루를 생각하며
날카로운 갈매기소리를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이고
나를 찾았을 때, 나는 이미 결정되어버린 듯한
돌아올 수 없는 海路에서
공포와 절망과 아쉬웠던 지난날의 뜨거운 사랑을
주워 올린다. 조약돌 하나 조약돌 둘 셋
아니지 아니지, 더 이상 내가 아니지.
누군가를 위해서, 때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벼랑에 서고,
수평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전음에
나약해진 숨소리는 조용히 사라져갔어 별이 뜰 무렵.
혼자야, 갈매기 우는 바다 앞에 서면 나는
♧ 갈매기(143) - 손정모
새된 소리로 내닫는
바람 소리에
귀먹고
서슬 퍼런 빛살에
눈 짓무를지라도
반짝이는 수면 가득
동심원을 일구며
하나 둘
무리를 지어
허공으로 치솟는다
지치도록 매달리는 물안개
시큰거리는 날개로
마구 흩뜨려보지만
용오름이 치솟듯
기류마저 달려든다.
몇 마리 물고기면
족한 뱃속이건만
바람마저 채워 물며
벽공을 눈발같이
흘러가는 갈매기 떼.
♧ 갈매기 - 박인걸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새
운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륙을 동경할 틈도 없다.
바다 위를 쏘다니며
물결에 얼 비취는 먹이를 건지려
떨어질 듯 아픈 날개를 저을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와도
노숙자가 되기 싫어
발갛게 언 발을 녹일 수 없다.
입 벌리고 달려드는
거친 파도에 위기를 느껴도
어둠이 바다에 섞일 때까지
위험한 질주를 계속한다.
이정표 없는 바다에서
유희(遊戱)가 아닌 생존을 위해
고독한 하루를 몸부림치는
갈매기의 영혼이 가엽다.
♧ 갈매기는 앉는 법을 모른다 - 김성환
정말이지, 반짝이는 생명이고 싶다
파도 한 칸 한 칸마다를 건너뛰며
부상하는 이 순간,
일렁이는 어둠에 온몸 하얗게 닦아
이젠 안간힘 쓰며 날지 않아도 좋겠지
좀 더 높은 곳에 도달하여
먹이의 사슬을 내려다보면
훌륭한 양식은 깊은 수심에 은폐되어 있고
솟아오른 힘보다 가중의 힘으로 떨어지며 자맥질
(이건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
불균형한 표면에 내려 앉아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
왜소한 물갈퀴 필사적으로 젖지 않으면...?
안착은 추락보다 어렵고
추락은 상승보다 가혹한 형벌
새로이 솟을 깃털의 모반을 휘해
연약한 다리를 버둥거리며
(앉는 법을 허락치 않는 가증스런 것들에 반역함)
♧ 갈매기 날으는 바닷가 작은 섬 - (宵火)고은영
석모도 그 조그만 섬
바다와 대지의 경계를 허물고
잿빛 하늘이 안개와 함께
갯뻘에 나와 앉아
바다와 세상을 희롱 한다
경험은 얼마나
우리가 하찮음을 말해 주는가
인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음을
우리는 봐 왔는가
문명에 길든 갈매기들은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는다
인간이 찰라적 호기심에 열중 할수록
갈매기들은 문명의 맛을 알고
인간의 던져 준 새우깡에
서로를 할퀴고 있다
제 색을 잃어 가는 자연의 슬픔
촛점 잃은 갈매기들의 젖은 눈빛과 눈빛
물새들은 인간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행위에 관조하듯
허공에 걸려 있는 그들의 빛 잃은 눈에
초라한 물갈퀴 그 가는 다리에 걸린 절망
허물어져 가는 질서와
오늘의 허무로 비치는 서글픔이
언뜻 새로운 획을 그으며
석모도 작은 섬과 부둣가를
비와 함께 맴돌고 있다
♧ 갈매기 - 엄원태
갈매기들은 느린 날갯짓으로 허공을 유유하게 떠돈다. 때로는 날개를 편 채 가만히 공중에 떠 있다. 물속을 찬찬히 내려다볼 줄 아는 그 우아하기까지 한 유영은 맹금류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몸짓. 그러나 그것들이 연약한 날개로 견뎌왔을 비바람 폭풍우를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주어진 조건들을 간신히(!) 통과하기..... 갈매기들의 느린 날갯짓은 그들의 살아갈 터전이 더할 바 없이 거친 바다란 사실에 대한 증거 같은 것. 존재의 조건들이 부여하는 눈물겨운 습성들..... 그것들의 가엾도록 가벼워진 몸과 하염없이 비워져 갔을 뼛속.... 검은 폭풍우의 바다와 갈매기의 흰 배, 가뭇한 날개들은 저리 껴안아 미끄러지듯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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