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가을비 내리는 길

김창집 2015. 11. 25. 18:08

 

평범한 사람에게 내리는 가을비는

조금 불편하지만

어쩌면 낭만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농부에게는

단비가 될 수 있지만

 

제주의 수많은 감귤 농사짓는 농부들은

애가 탄다.

 

올 가을엔 어떻게 그리 비오는 날이 많은지

한 이틀쯤 맑은 뒤에라야 수확할 수 있는 감귤이어서

나무에 달린 채로 금방 썩어버릴 것 같아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이다.

 

미투리장수와 나막신장수 두 아들을 둔 부모가

걱정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는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날이다.

 

 

 

♧ 가을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 용혜원

 

가을에 축축하게 비 내릴 때마다

나무들은 알몸이 되고 싶은지

단풍 든 잎새들을 떨궈냈다

 

비 내리는 길 바라보고 있으면

고독 속에 신열을 앓던

외로움 덩어리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들이

흥건히 빗물에 젖고

한산해지는 저녁 무렵

가을 길을 걷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가을은 왜 우리 가슴에

짙게 머물다 가는가

 

세월 가듯 구름 가듯

모두가 떠나가야 하는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

 

가을비가 내리면

단풍으로 물든 이야기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가을 빗속을 걸어 들어가며

사랑하는 이와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걸으면

아픈 자국을 남겨놓고 떠나는

가을도 쓸쓸하지만은 않다

 

 

♧ 가을비 내리면 - (宵火)고은영

 

격정의 가지 끝

대롱대롱 매달려 울다가

추적대는 가을비 내리면

 

그대, 대답 한마디 없어

해답 없는 공허를 헛손질하고

의문 일어 쭉정이 된 들

 

용서의 약속을

부드러운 속살로 남겨

스스로 비워

계절을 등지겠습니다

   

 

♧ 가을비 내리는 날 - 최홍윤

 

가을비가 추적,

추적이는 날에는 비가 됩니다

꽃잎 지우던 봄비에 적시던 가슴을

가을비엔 두 손으로 쓸어내리기도 하고

비에 젖은 낙엽처럼 쓸쓸히 다가서는

이별이 서럽습니다.

 

아침나절에는 이슬비로 추적이다가

저물녘엔 이별을 재촉하듯

온통 몰아치다 싸늘하게 내리는 가을비,

이렇게 추적이는 가을날에는

비에 젖어 나도 세월 앞에

낙엽일 수밖에 없습니다.

 

 

♧ 가을비 내리던 날 - 이진선

 

마치 고즈넉한 산사의 저녁 같은

어스름한 오후,

초침이 더디게 간다

 

아파트가 잠을 잔다

산책로엔 바람만 힘없이 거닐 뿐

늘 거닐던 노파의 발자국 소리,

아이의 햇살 같은 웃음소리,

고요 속에 잠겼다

소소한 이슬비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가을을 만진다

텅 빈 놀이터, 홀로 우는 그네

가로등 불빛 끌어당긴다

 

축축하게 젖어드는

짓누르는 시간 속 삶의 무게

갈맷빛 나무 잎새들

삶에 순응하듯

움켜 쥔 미련

툭,

떨어진다

 

앞서가는 시간, 등 뒤로

기다림

남겨 놓는다  

 

 

♧ 가을비 - 목필균

 

때론 눈물나게

그리운 사람도 있으리라

 

비안개 산허리 끌어안고 울 때

바다가 바람 속에 잠들지 못할 때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싶은 노래

 

때론 온몸이 젖도록

기다리고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

   

 

♧ 가을비 - 최범영

 

철 없이 만나

내 스물의 나이를

눈물로 얼룩지게 하고

서로 상처만 안겨주고 떠난 길에

으슬으슬 내리는 가을밤 눈물

 

사랑했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울부짖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은

비 맞은 단풍처럼

또렷해만 지는 그리움

 

돌아서도 잊지 못하는

옛적의 나를 보듬고

모두가 자는 밤거리

하늘의 곡조에 맞추어

휘돌며 탱고를 춘다

 

잘 살겠지

잘 살고 있겠지

한번은 그리워 하겠지

뜨거운 눈물 흩뿌리며

싸늘하게 식은 대지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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