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살아있는 날 중
제일 젊고 싱싱한 날이라는데,
괜히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듯한 느낌의
12월이 다가온다.
어제,
어느 모임의 한 여인은
딸을 시집보내는 경사를 맞았고,
그 모임의 그보다도 나이가 적은 한 여인은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서
회원들은 바로 결혼식 축하 피로연장에서
장례식장으로 조문 가야했다.
그렇게 조문을 하고 나서
그냥 집으로 올 수 없어
지인 몇 명이서 자리를 옮겨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쓸쓸한 밤을 보냈다.
해와 달과 날,
사람이 편하기 위해
구분지어 놓은 것이지만,
당연히 마지막 달을 보내면
자동으로 새로운 1월이 되는 거지만,
나이가 들어가는지
12월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는 것은
겨울이지만 이렇게 딸기가 열려 익어간다는 것,
어제 오전, 산행길에서 따먹었다는 것이다.
♧ 11월의 마지막 - 제산 김 대식
어둠을 타고 몰래 들어와
아침저녁으로 서성이던 겨울이
이제는 한낮에도 서성댄다.
그토록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가을이
무대를 거두고
머뭇거리던 가을은
떠날 채비를
바삐 하는데
매서운 삭풍이 휘몰아치며
마지막 낙엽마저 떨구고 만다.
갈 곳도 없이 무작정 내몰린 낙엽이
후미진 구석으로 몰려서 노숙을 하고
미련 남은 가을이 낙엽에 숨는데
잠자던 서릿발이 일어나
숨은 가을마저
가라 한다.
♧ 11월의 마지막 날 - 진장춘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첫눈이 내리다가 비로 바뀌고
다시 비가 눈으로 바뀌곤 한다.
가을과 겨울이 시간의 영역을 다툰다.
단풍나무는 화려한 가을 송별회를 하고
눈바람은 낙엽을 휩쓸며 겨울의 환영회를 벌인다.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위풍당당한 겨울에 가냘픈 가을은 당할 수 없다.
젊은이들도 첫눈을 반기며 만남을 약속한다.
가을은 울며 남으로 떠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내년에 오리라.
계절의 쳇바퀴는 누가 돌리나?
추동춘하 추동춘하 추동춘하…
계절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세월은 간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가고 만물도 흐른다.
♧ 십일월의 나목(裸木)들 - 박인걸
동장군(冬將軍)이 온다는 정보에
숨고, 떠나고, 도망치고
온기 잃은 햇살마저
바위틈에서 서성거린다.
누덕누덕 입었던 겉옷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알몸을 드러낸 나무들만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다.
샅바를 움켜잡은 씨름선수처럼
온 몸을 조여드는 혹한이라도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
하늘 향해 고함을 지른다.
비겁한 것들은 떠나고
연약한 자들은 포기해도
십이월로 힘차게 걸어 들어가는
나목들의 의지가 용사 같다.
♧ 11월의 거리에서 - 김정호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안개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살도
화장발이 서지 않은 맨살이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까마귀도 허기져 비틀거린다
지난 가을 도심의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은 은행잎도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 못해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고
바람의 흔적만 얹혀 있다
무겁게 내려앉은 거리 위를 지나는
고급승용차 안 중년의 여자
값비싼 모피로 온몸을 치장하고
칼자국 베어 있는 높은 콧대
풍문으로만 나이를 들어본다
겨울바람만큼 가난한 도심 속 거리에
쓸쓸함이 밤안개를 몰고 오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더 낮게 살아야 할 삶이 있어
차마 이 낯선 거리를 떠나지 못한다
♧ 11월을 보내며 - 정아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늘 목에 가시 되어
남아 있는 가을
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덩달아 통곡을 하게 하고
어디쯤 오고 있는지
내 아픈 겨울
힘들게 오르는 가파른 언덕 길
늦은 가을 국화 한 송이
눈물새 울음 배어 목이 쉬는데
어느 시간 속에 건 찾아내어
함께 있자 한다
함께 있자 한다
♧ 11월의 편지 - 목필균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나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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