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새해 오름과 숲 기행

김창집 2016. 1. 4. 10:32

 * 2일 아침 바농오름에서 본 한라산과 오름

 

1월 1일은 해를 보러 서우봉을 다녀와서

오름에 올랐달 것이 없었지만,

2일은 오름 3기생들하고

바농오름, 족은지그리, 지그리를 거쳐

민오름까지 실컷 돌아다녔고,

3일은 오름오름회 회원들과

부대악, 부소악, 그리고 가메옥을 다녀왔다.

 

올해는 눈이 없는 편이라

마른 숲과 잎이 떨어진 곶자왈

그리고 삼나무나 편백, 소나무가 우거진 오름길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정취가 숨어 있었다.

 

다행히도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가 없는 곳이어서

거리낌 없이 자연이 허여하는 대로 호흡하면서

연초에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맘껏 충전하였다.

 

어제 아침은 미세먼지인지 대기가 뿌옇더니

10시쯤 되어가면서 차차 밝아져

나중엔 겨울 날씨치고는 꽤 괜찮은 날씨로 변했다.

 

부대악 능선은 이상하리만치

참식나무, 새덕이가 왁자지껄 모여 있고

거기다가 생달나무까지 더해

기후관계로 소나무와 삼나무가 사라진다 해도

온 산이 파랗게 변할 것임을 느끼게 했다.

 

원래 부소악 능선엔 자생하는

제법 큰 붓순나무 몇 그루가 있는 걸 봤지만

가메옥 분화구쪽 소가 뚫어놓은 길로 들어간 곳에도

붓순나무 군락이 있었고, 나오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붓순나무 꽃 세 송이 만나

올 연초 연3일 산행의 선물로 받은 셈이다.

 

 

♧ 겨울숲에서 - 김선태

 

겨울숲에 가 보았다

겨울숲으로 가서 맨몸으로 서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무성했던 꿈의 마지막 한 잎마저 떨궈버리고

다만 빈손으로 떨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모두가 떠나버렸다

노래하던 새들, 뛰놀던 산토끼, 다람쥐의 자유도

모두가 찬바람에 내몰려 계곡으로 쫓겨갔는지

밤이면 부엉이 울음소리만 이따금씩 무거운 정적을

깨뜨릴 뿐

 

남은 숲속의 무엇을 더 데려가려는지

칼 든 바람들이 우 - 우 몰려다니고

날마다 차디찬 예감의 눈발은 숲을 덮어

산짐승들이 다니는 작은 길들을 지워버렸다

 

겨울숲에 가 보았다

겨울숲으로 가서 모질게 기다리는 나무들을 보았다

서릿발이 터지는 아침이면 서로의 뿌리를 다독이며

다만 기약처럼 머물러 서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 족은지그리로 가는 도중에 만난 송악 옷을 입은 나무와 종가시나무 숲 

 

♧ 가을 숲에서 겨울 숲까지의 술 - 박남준

 

이제 곧 추위가 시작되고 긴 겨울이 오리라. 단풍의

숲은 어느덧 가고 사랑을 위해 온통 내달려갔던 지난

일들은 더러는 쓸쓸한 술잔이 되어 쓰러져갔다. 더러는

나락으로 자폐 되었으며 역류하며 일그러져 갔다.

 

그리하여 춥고도 어둡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햇빛의

문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까. 뜨겁게 타오르던

나무들은 땅속 깊이 슬픔의 뿌리를 더욱 내렸는지,

살아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작인데 상처는 뒤틀린

채 몽유의 길로 헤매이고, 겨울숲에 누워 나는 술에

빠져 있다. 바람의 숲이여 마지막 불꽃이여, 설레이는

술잔 기울이며 단풍으로 붉겠다던 시절이 옛날이었는지.

   

 

♧ 겨울숲 - 신경림

 

굴참나무 허리에 반쯤 박히기도 하고

물푸레나무를 떠받치기도 하면서

엎드려 있는 나무가 아니면

겨울숲은 얼마나 싱거울까

산짐승들이나 나무꾼들 발에 채여

이리저리 나뒹굴다가

묵밭에 가서 처박힌 돌멩이들이 아니면

또 겨울숲은 얼마나 쓸쓸할까

나뭇가지에 걸린 하얀 낮달도

낮달이 들려주는 얘기와 노래도

한없이 시시하고 맥없을 게다

골짜기 낮은 곳 구석진 곳만을 찾아

잦아들 듯 흐르는 실개천이 아니면

겨울숲은 얼마나 메마를까

바위틈에 돌 틈에 언덕배기에

모진 바람 온몸으로 맞받으며

눕고 일어서며 버티는 마른 풀이 아니면

또 겨울숲은 얼마나 허전할까

 

* 오름 속 송악과 곶자왈을 거쳐 바농오름으로 돌아오는 길

 

♧ 파탈(fatale), 혹은 파탈(擺脫) - 김종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되는 것

발가벗겨진 채

내동댕이쳐진 육신이 되는 것

욕欲이나 망望만 남아있는

짐승 같은

숙명적인 겨울산이 되는 것

운명적인 겨울숲이 되는 것

껍질이라고 하는 것을 벗겨내고

허물이라고 하는 것을 버리고

자궁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하여 몸과 몸을 부딪혀

육신과 육신을 깨뜨려

지상에서 최후의 풍경이 되는 것

겨울나무는 모두 무기를 들었다

끝이 날카로운 창이다

날이 선 칼이다

몸에서 살을 버리는 것

살에서 피를 버리는 것

피에서 색을 버리는 것

몸이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겨울나무는 강하다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물길 같은 것

순식간에 번져가는 불길 같은 것

파괴 같은, 파멸 같은 것

스스로의 몸에서 벗어난

겨울나무는 파탈 같은 것

 

 

* 부소악 가는 길과 동쪽으로 도는 삼나무 숲길

 

♧ 겨울숲에는 소리가 있다 - 이지엽

 

굶주린 박새 한 마리가

애벌레 집을 열심히 쪼고 있다

쌍살벌들도 집을 비우고 떠나갔는데

숭숭 뚫린 구멍들만 옹기종기

먼 바다로 길을 트고 있다.

 

누가 저렇게 한 세상 조용히 내려놓고 있나

한 종지의 銀泥은니로 번지는 백양사 저녁 예불소리

 

빈산에 사흘 동안 눈이 내리고 눈이 녹고

낙엽은 썩어가겠지만

갈참나무는 다 죽은 이파리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제가 내는 신음 소리를 귀 세워 듣고 있다

죽지 마 죽지 마라, 고 낮게 웅얼거리며

검은 땅 속을 흐르는 물소리

마른 뿌리를 적시기도 하면서

 

오래되어 군데군데 활자가 지워진

무명시집만큼 헐거워진 영혼들아

겨울숲으로 가보아라

바람 지난 자리

연달아 새로 고이는 노란 불빛들의 소리가 산다.

그 소리, 얼음장 밑이라도 푸릇푸릇 새순으로 돋아나느니

 

 

                                                * 가메옥 서쪽 봉우리와 뒤로 보이는 거문오름 능선

 

♧ 겨울숲의 사랑 - 김찬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 왔던

강가였지만

함박눈 내리고

당신 가슴 두텁게 얼어붙기 전에는

그 강 건널 수 없습니다.

저기 강물에 나목 그려 넣으며

깊은숨으로 가라앉은 그 숲에

차가운 겨울 빛 자욱이 내리고

짝 잃은 새들이 슬픈 몸짓으로 날아오르면

나는 건너지 못하는 강에 얼굴 묻고

저문 강에 잠겨 떨고 있는

겨울 숲 울음 듣습니다.

겨울에 헤어진 나의 시린 사랑은

건널 수 없는 강 저편 겨울 숲에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는

흰 눈에 덮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매운 강물 얼어도

그 강 건너지 못하는

나의 아픔을 당신에게

정녕 말하지 않으렵니다

 

* 가메옥 분화구 안에는 붓순나무를 비롯,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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