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鬼鄕)’ 후원자 시사회에 다녀왔다.
‘귀향(歸鄕)’ 아니고, ‘귀향(鬼鄕)’이어서
저 길림성 어느 산골짜기에서 일본군에게 시달리다 총에 맞아 죽은 영혼이
한 처녀에 빙의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과정을 통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타결(?)을 보아
또 가슴 아픈 상처를 들쑤셔 놓은 지 얼마 안된 때라
14년만에 5만여 명의 국내외 후원자의 후원에 의해 완성이 되어
돌리는 시사회여서 그런지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3월 중에 개봉이 된다는데
총선 때문에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5년을 결산하는 제주시조 제23호가 와 있어
시조 몇 편을 골라 요즘 한창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참식나무 열매 사진과 함께 올린다.
♧ 파도 - 강상돈
흰 이빨 드러내며 늦은 아침 먹는 파도
거센 숨결 내뿜다가 또 다시 내뿜으며
입가엔 흰 포말 물고 내게 달려들고 있어
생간에 왕소금 친 여름날의 연가처럼
등뼈가 휘어지며 울음 토하는 암초처럼
내겐 늘 물보라로 남아 폭발하는 힘이 있어
온 몸이 부서지는 저 완강한 무력 앞에
차마 고개 못 들어 참회하는 나에게
한 장의 하얀 엽서를 건네주는 노래 있어
♧ 너븐숭이 수선화 - 김연미
보채지도 울지도 않은 긴 침묵의 응어리
보리밥 얄팍히 담긴 사발 같은 무덤에
손뜨개 양말 한 켤레 눈물처럼 놓이고
젖 냄새 보다 먼저 꽃처럼 피 흐르던 계절
민가슴 너븐숭이에 작은 발을 묻었구나
쓰러진 엄마젖가슴 헤쳐 빨던 그 아기
순리대로 살아가는 북촌리 겨울과 봄
살 냄새 짙게 풍기며 양지쪽으로 앉을 때
수선화 한 겹 또 한 겹 응어리를 풀고 있다
♧ 왕고집 - 김영기
딱딱한
여름 풋감
제물에 풀죽듯이
당숙님
왕고집도
산수傘壽에 스러지니
말랑한
홍시 맛이네
떫고 떫던
그 말씀도,
♧ 가을, 비양도 - 김영란
비양도 서쪽 자락이 해오라기 깃털 같다
봉우리 흰 등대에 흰색 등 달아놓은
초가을 수채화 한 점이 수평선에 놓이고,
바닷길을 안다는 건 순명順命을 안다는 것
바다의 비밀을 캐다 모가지만 길어진
두 마리 해오라기가 짝을 짓고 오른다.
♧ 새야 - 김영숙
1
먹다 남은 거 나 거두마 먼저 말은 했지만
동박새 직박구리 멀리서 온 까치야
절반을, 나무의 반을 어찌 파투 낸다냐
2
가위질이 바빠요 무른 귤 떨구느라
비트박스 찌익 찍 저들끼리 신이 나
찜하고 보자는 걸까 찍고찍고 또 찍어
3
깔싸움이 대세야 입소문 무성해도
번지네 과수원 전설 ‘새 쫀 것은 맛있어’
쥔양반 그것도 몰라 겉과 속 같지 않은걸
4
까치밥 남기는 마음 이제 알 것도 같아
우뚝 선 가지 끝에 실한 열매 그냥 둔다
농바니* 급한 생각은 다시 가을에 가 있어.
---
* 농바니 : ‘농부’의 제주 말.
♧ 무두질 - 김윤숙
사방에 번진 얼룩 붉은 꽃을 피워내며
수 천 번 짓이겨진 저 슬픈 눈망울
야성을 내처 달리는 뒷모습이 어린다
뒤꿈치 굳은 맨발 푹푹 파져 일어서며
비린 숨 내뿜는 세상 전생을 무두질한
당신이 치대어 온 삶 그리움을 입힌다
♧ 장마 - 김진숙
산수국 꽃잎에 기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세상에 멍든 상처 하나쯤 숨겨 두고
한 번씩 숨넘어갈 듯 바다 향해 울었다
당신은 띄어쓰기도 없이 눅눅한 시를 쓰고
그만 꽃은 피어서 나는 울지 않아도 된다
불현듯 번지점프다 꽃잎 끝 눈물 한 방울.
♧ 사모곡 - 문태길
사라호 태풍도
빗겨 날은 머리카락
흙먼지 땀내음에
절어버린 갈적삼
어머님 고집 앞에선 대문도 멈춥니다.
어머님 그 인내심
가문의 거울 되어
외세에 열린 대문
하나둘 사라져도
우리집 돌기둥만은 우뚝우뚝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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