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한라산 사라오름에 올라 보았던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눈꽃.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어둑한 눈발과 한파 속
벌써 추억이 돼버린 느낌이다.
너무 방심해 얼어버린 수도 때문에
아침이 개운치 못하다.
그래 사진이나 몇 장 꺼내
기분전환이라도 해야겠다.
♧ 눈꽃 - 오석만
사랑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매서운 눈보라가 없었다면
어찌 꽃으로 피어날 수 있겠는가
혹독한 외로움이 없었다면
어찌 아픔속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겠는가
추위와 바람이 없었다면
어찌 순백을 꽃 피울 수 있겠는가
부서진 유물속에 핀 꽃처럼
차가운 밤하늘에 핀 별처럼
어두운 숲속에 핀 반딧불처럼
그대는
부서질 듯 아름다운 사랑이어라
새하얀 별빛으로 피어나는 하늘이어라
고이 간직하고픈 반딧불이어라
♧ 눈꽃자리 하나 - 박종영
낮은 산의 오솔길이거나
빈 들녘이든 황량한 외길을 만들어 가고
또 다른 이승의 길 만들어
찬 바람에 얹혀 폴폴 흘러다니는
가벼운 순백의 날개
그 미량의 속삭임이
가느다란 눈물로 안길 때마다
검은 땅은 극명한 웃음을 감추며 촉촉한 입맞춤이다
들리는 듯 새록새록 첫 밤의 신음소리
백색의 여인과 우직한 땅의 교접을 엿듣는 우리
익숙한 그리움으로 청춘이 콩콩거리고
밟아 뽀드득 아프게 잉태되는 눈사람
지나온 흔적마다
가벼운 생명의 안간힘으로 피어나는
눈꽃자리 하나
♧ 추억의 눈꽃 - (宵火)고은영
그리움으로 내리던 눈의 추억이
유독 올 겨울엔 환합니다
생인손 앓듯 시시때때로
눈물로 멍울 지던 추억을 마주하면
떠나간 것들의 안부엔
건조한 바람 냄새 휘돌아 내리고
절망이 비둘기호 열차처럼 온 밤을 덜컹대며
끝없이 어둠의 선로를 달리던 길
내내 환희를 줏어 들창을 밝히던 눈꽃들이
까마귀 쪽 나무에 소복하던 고향 어귀
일출봉은 종일 푸른 파도를 읽고
눈꽃들이 하얀 여백을 그려 넣던 골목마다
까막눈이 아이들이 나무 팽이를 돌리고
눈만 쌓이면 세상 모르게 좋아라. 웃던
소싯적 까마득한 웃음소리들이
우울하고 시무룩해진 얼굴에
까르르 하늘하늘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 고사목에 매달린 눈꽃 - 손정모
앙상한 가지마다
켜켜히 쌓인 눈꽃들이
날 선 겨울 바람을
맞고 있다.
생각난 듯이
쏟아지는 햇살을 뚫고
안개가 골 바람을 타고
길을 연다.
냉동 상태로 달라붙은 눈꽃들
바람에 알몸둥이로 맞서보지만
비상의 꿈은
한결 어둡기만 하다.
충혈된 눈으로
바람이 불기만을 빌었었는데
골 바람이 파고들수록
외려 얼어붙기만 하다.
새벽 안개가 포근하게 내리덮여도
삭정이에 매달린 눈꽃은
싸늘한 유리 파편이다
바람이 지나는 자취마다
몸을 떨며
다리를 벌려 보지만
새의 체온마저도 박제가 된다.
다시 어둠이 밀려들 때까지도
바람은 험악한 인상으로
발길질을 해댔고
눈꽃들은 유리 파편이 되어
좌절된 비상의 꿈을
슬퍼하고 있다.
♧ 눈꽃 - 이현우
눈꽃이 피네.
잎새도 열매도 잃은 나목의 숲을 건너
닫힌 문이 열리네.
낮은 지붕 아래
사람들은 여전히 잠 못 들고
꺼져가는 불씨를 재로 덮는 밤
온기조차 식어버린 노변爐邊에 쌓여
칠흑漆黑을 밝혀주던
겨울 이야기
듣다가 잠시 멈춘 여울목에서
남몰래 참 아파한 언제였을까.
언 땅 아래 서로 만나 움을 틔우고
아득히 멀어져 간 발자국들이
가만가만 다가와 부르는 소리
들리네 어디선가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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