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그 맑은 날
한라산 사라오름에 올라
눈꽃을 실컷 즐기고 온 다음 날부터
며칠 동안 폭설과 혹한이 몰려와
섬을 꼭꼭 닫아버렸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내가 아는 몇몇 집에서도
수도가 얼어버려
불편을 겪었다.
허나 그건 약과였다.
제주에 발 묶인 6만의 관광객
사흘 동안 공항과 숙소를 오가며
또는 공항 대합실에서 뒹굴며 추위와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추운 겨울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끝나듯이
다행히 어제 오후부터 바다와 하늘길이 열려
내일 오전이면 모두 그리운 집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 이번 겨울 12월, 1월이
순조롭게 지나간다 했더니
자연은 우리에게 시련과 큰 깨우침을 주었다.
아!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그립다.
한라산에 털진달래 피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 진달래꽃 - 윤꽃님
지난주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다
온순하고 침착하고
가장 일상적이었다
평범한 삶만이 오래 살 수 있다고
느린 사랑만이 길게 갈 수 있다고
잘 버텨왔었다
겨울의 삭막함이 능력인 오늘
메마른 공기 속에서
봄의 열정이 잠시 한눈팔았다
실낙원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낭만성을 실토해 버렸다
봄은 역시 봄이다
시대가 어떻든 봄이면 늘
누군가는 봄바람에 발열되어
울컥 각혈하며 상사병을 앓는다
♧ 진달래꽃 - 김경숙
한라에서
백두까지
봄마다
앓는 홍역
열꽃 피워
가슴 태우는
이루지 못한
애닯은 사랑
♧ 진달래꽃 - 김덕성
봄이 곱게
피어오르는 꽃불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인다
겨우 내
꼭꼭 숨어
칼바람에 견디며
그리움으로 타는 불꽃
언제나 올까
손꼽아 기다리던
그리운 고운 님
정말 반갑구려!
진홍 꽃잎
하나 둘 피어오르더니
어느새 계곡을 점령해 버린
그리움으로 만난
미의 천사
♧ 진달래(27) - 손정모
물안개 머리 풀어
떠도는 물에
살짝 비친
연분홍 고운 꽃송이
만지면 스러질 듯
가녀린 꽃잎
하늘 향해
살며시 미소짓는데
그리움 찾아 나선
종달새 울음
마른 가지
흔들어 홍조를 띠네.
♧ 진달래 - 정지용
한골에서 비를 보고 한골에서 바람을 보다 한골에 그늘 딴골에 양지 따로 따로 갈어 밟다 무지개 해ㅅ살에 빗걸린 골 山벌떼 두름박 지어 위잉 위잉 두르는 골 雜木(잡목)수풀 누릇 붉읏 어우러진 속에 감초혀 낮잠 듭신 칙범 냄새 가장자리를 돌아 어마 어마 긔여 살어 나온 골 上峯(상봉)에 올라 별보다 깨끗한 돌을 드니 白樺(배화)가지 우에 하도 푸른 하늘...... 포르르 풀매...... 온산중 紅葉(홍련)이 수런수런 거린다 아래ㅅ절 불 켜지 않은 장방에 들어 목침을 달쿠어 발바닥 꼬아리를 슴슴 지지며 그제사 범의 욕을 그놈 저놈 하고 이내 누었다 바로 머리맡에 물소리 흘리며 어늬 한곬으로 빠져 나가다가 난데없는 철 아닌 진달래 꽃 사태를 만나 나는 萬身(만신)을 붉히고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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