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조와 동백
오늘 아침
오랜만에 떠오른 햇살이
엄청 밝다.
그래서 그런지
폭설에 움추렸던 동백나무 다시 핀 꽃이
더욱 빛나 보인다.
책 사이 끼어 놓았던
‘제주작가’ 겨울호에서 시조를 꺼내
꽃과 함께 올린다.
♧ 늦가을 소묘 - 오영호
늦가을
우듬지에
반짝이는 단감 몇 개
날아든
직박구리 참새 오색딱따구리……
아무런 다툼도 없이
먹을 만큼
나눠 먹는
♧ 진눈깨비 - 장영춘
너 떠난 이 거리에
젖은 눈발 날리네
허공에 비잉 빙
정처 없이 떠도는
창밖에 은빛 날개짓
네 눈빛이
아프다
가물가물 지워진 길에
또 하나의 길을 내며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서성이다 뒤돌아선
골목길 목련 봉오리
가만 손을
내민다
♧ 녹는 달 - 이애자
달 하나가 입에서 입으로 공전을 한다
달의 몰락은
무근성 아이들의 즐거움
까르르 웃음에 융해된
어둔 날의
달달함
♧ 수평선 - 홍경희
하늘 바다 두 쪽 나도
끝끝내 놓지 않은
한통속 풍파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악물고 끌어당기는
거룩한 힘,
밥줄이다.
♧ 시어머니 첫 문장 - 김정숙
낫질 호미질로 육십 넘게 살아놓고
첫 손주 어깨너머 기역니은 훔치더니
줄 공책 첫 장을 펼쳐 묵은 씨앗 심는다.
아버지 김별별 어머니 현별별
오빠 동생 이름은 눈물 훌쩍 적시며
사삼에 풍지 박살난 가족들을 심는다.
♧ 겨울 텃밭 - 김연미
제2막 무대 앞에 관객들은 오지 않았다
흥밋거리 다 빠지고 에필로그만 남아 있는
저 남루 들깨나무가 겨울 텃밭을 지킨다
단 한번 클라이맥스 아직 남아 있을 거야
색바랜 배경처럼 조명조차 받을 일 없이
대사도 지문도 없는 조연들만 남더라도
겨울바람에 여무는 까만 뜻을 품었구나
생(生)의 마지막 장 빈 육신 내려놓다
불현 듯 깍지가 터진다, 봄의 씨앗 가득하다
♧ 딴생각 하는 거지? - 김영란
사랑의 유효기간은 어디 찍혀 있을까?
초스피드 요즘 사랑 쭉쭉 빨며 간보는 사랑 짜릿짜릿 입맞춤에 개구리 되고 달팽이 되고 사마귀 되고 나비 되고… 벼룩 되어 톡톡 튀는 사랑사랑 내 사랑이라니 참,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어화둥둥 우리 사랑, 죽네사네 사랑이라야 에휴, 유효기간 3년이라는데
3년에 0 하나 더 붙은 우리 사랑 그럼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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