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겨울호와 동백

김창집 2016. 2. 3. 09:57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조와 동백

 

오늘 아침

랜만에 떠오른 햇살이

엄청 밝다.

 

그래서 그런지  

폭설에 움추렸던 동백나무 다시 핀 꽃이

더욱 빛나 보인다.

 

책 사이 끼어 놓았던

‘제주작가’ 겨울호에서 시조를 꺼내

과 함께 올린다.  

 

 

♧ 늦가을 소묘 - 오영호

 

늦가을

 

우듬지에

 

반짝이는 단감 몇 개

 

날아든

 

직박구리 참새 오색딱따구리……

 

아무런 다툼도 없이

 

먹을 만큼

 

나눠 먹는

 

 

♧ 진눈깨비 - 장영춘

 

너 떠난 이 거리에

젖은 눈발 날리네

 

허공에 비잉 빙

정처 없이 떠도는

 

창밖에 은빛 날개짓

네 눈빛이

아프다

 

가물가물 지워진 길에

또 하나의 길을 내며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서성이다 뒤돌아선

 

골목길 목련 봉오리

가만 손을

내민다

 

 

♧ 녹는 달 - 이애자

 

달 하나가 입에서 입으로 공전을 한다

 

달의 몰락은

 

무근성 아이들의 즐거움

 

까르르 웃음에 융해된

 

어둔 날의

 

달달함

 

 

♧ 수평선 - 홍경희

 

하늘 바다 두 쪽 나도

끝끝내 놓지 않은

 

한통속 풍파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악물고 끌어당기는

거룩한 힘,

밥줄이다.

 

 

♧ 시어머니 첫 문장 - 김정숙

 

낫질 호미질로 육십 넘게 살아놓고

첫 손주 어깨너머 기역니은 훔치더니

줄 공책 첫 장을 펼쳐 묵은 씨앗 심는다.

 

아버지 김별별 어머니 현별별

오빠 동생 이름은 눈물 훌쩍 적시며

사삼에 풍지 박살난 가족들을 심는다.

 

 

♧ 겨울 텃밭 - 김연미

 

제2막 무대 앞에 관객들은 오지 않았다

흥밋거리 다 빠지고 에필로그만 남아 있는

저 남루 들깨나무가 겨울 텃밭을 지킨다

 

단 한번 클라이맥스 아직 남아 있을 거야

색바랜 배경처럼 조명조차 받을 일 없이

대사도 지문도 없는 조연들만 남더라도

 

겨울바람에 여무는 까만 뜻을 품었구나

생(生)의 마지막 장 빈 육신 내려놓다

불현 듯 깍지가 터진다, 봄의 씨앗 가득하다

   

 

♧ 딴생각 하는 거지? - 김영란

 

  사랑의 유효기간은 어디 찍혀 있을까?

 

  초스피드 요즘 사랑 쭉쭉 빨며 간보는 사랑 짜릿짜릿 입맞춤에 개구리 되고 달팽이 되고 사마귀 되고 나비 되고… 벼룩 되어 톡톡 튀는 사랑사랑 내 사랑이라니 참,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어화둥둥 우리 사랑, 죽네사네 사랑이라야 에휴, 유효기간 3년이라는데

 

  3년에 0 하나 더 붙은 우리 사랑 그럼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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